지난여름부터 간간이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 모닝페이지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 나오는 것인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3페이지의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나는 <아티스트 웨이>는 읽지 않았지만(정확하게는 한 번 대출했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읽고 반납했다), 모닝페이지라는 것을 알게 되어 따라 하고 있다.
사실 내가 쓰는 것은 모닝페이지라고 보기 어렵다. 원래 모닝페이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페이지의 글'을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것인데, 나는 '하루 중 시간이 되는 때에' '1페이지의 글'을 쓰고 있다. 모닝페이지가 아니라 내맘대로페이지다.
그래도 쓰는 게 좋다는 걸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뭐가 좋으냐 하면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는 게 좋다. 아무 생각 없이, 생각나는 대로, 무엇이든 쓸 수 있어서 좋다. 말이 앞뒤가 안 맞아도 상관없고, 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저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다. 착한 척을 할 필요도 없고, 성실한 척을 할 필요도 없다. 욕을 써도 되고, 짜증을 부려도 된다. 했던 말을 또 해도 된다. 글을 못써도 된다. 모두 가능하다.
그렇게 한 쪽을 쓰고 나면 후련하다. 마음에 남아있던 찌꺼기를 종이 위에 글자로 뱉어낸 것처럼. 그렇게 쏟아내고 나면 마음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닝페이지(아니 내맘대로페이지)를 쓰는데,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써서 이런 결과를 내볼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볼까, 일목요연하게 써볼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글씨를 쓰는 손은 자꾸 멈췄고, 생각을 하느라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게 점점 부담스러워지면서 못쓰는 날이 늘어났다. '그냥 생각의 흐름대로 쓰면 된다'는데도.
'아니 이게 무슨 모닝페이지야.'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필터 없이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적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날부터는 다시 생각 없이 모닝페이지를 쓴다. '절대로 쓰는 동안 손을 멈추지 말 것'. 이게 모닝페이지를 쓰는 규칙이다.
'브런치도 생각이 너무 많아서 못쓰는 건 아닐까.'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브런치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어느 순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 더 좋은 글, 완성도 있는 글, 재미있는 글, 영감을 주는 글,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렸던 건 아닐까. 내 부족한 글을 보고 누군가 손가락질할까 봐, 누군가 실망할까 봐 겁이 났던 건 아닐까. 그렇게 온갖 부담을 느끼며 쓴 글이 너무 형편없는 글이라는 걸 마주하는 게 무서웠던 건 아닐까. 그래서 쓰지 못했던 게 아닐까.
매일 써야지, 열심히 써야지, 다짐만 숱하게 하고, 정작 글은 제대로 못쓰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났었다. 발로 걷어차면 딱 좋겠다 싶었다.
브런치 글도 모닝페이지처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닝페이지처럼 필터 없이 쓸 수는 없겠지만, 쓸데없는 생각이나 걱정을 걷어내기만 해도 글을 쓰기가 한결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글을 못쓰는 오백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뭔가 대단한 걸 쓰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었다는 걸.
'뭔가 대단한 생각을 하려고 하지 말자. 대단한 걸 쓰려고 하지 말자. 그럴수록 글은 더 진부해지는지도 몰라.'
백 줄의 글을 쓰면 그중에 한 문장이 나중에 사금처럼 남는 것 같다. 나머지는 보통의 글, 그리고 간혹 쓰레기가 섞여 있다. 쓰레기를 마주하는 게 무서워서 금을 채취하는 것을 멈추지는 말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