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34개월 된 호야와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용인에서 완도로 내려가는 데 5시간, 그곳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하는 데 3시간이 걸렸다. 제주도에 차를 가져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결론적으로 그렇게 한 것에 만족한다. 장거리 운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 그런지 막상 완도까지 가는 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제주로 가는 배에서 호야가 하도 돌아다니는 통에 쫓아다니느라 애를 먹긴 했다. 하지만 제주에 도착하면 무척 피곤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숙소에 도착해서도 컨디션이 좋았다. 아마 제주의 공기가 너무 좋아서 피곤하려던 몸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 같다.
제주에 도착할 때는 가족이 모두 차에 탄 채로 배에서 내렸다. 차바퀴가 제주도 땅에 닿고, 달린 지 3분이나 되었을까. 나는 '피가 당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하게 '피가 당긴다'는 느낌이었다. '와 제주도다' 하고 기뻐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곳 정말 좋다' 하고 몸속의 피가 팔딱거렸다.
나는 하늘이 넓게 보이는 곳을 정말 좋아한다. 높은 건물에 가려지는 것 없이, 하늘과 땅이 맞닿은 면이 넓게 펼쳐진 풍경을 사랑한다. 그런데 제주도는 온통 그런 모습이었다. 하늘과 닿아있는 건 무미건조한 건물이 아니었다. 눈 닿는 곳은 거의 자연이었다. 한라산 외에 높은 봉우리도 별로 없으니 머리 위로 넓은 하늘만 뻗어 있었다. 그리고 하늘은 용인에서 보던 회색빛이 아니라 파란색이었다(이제는 하늘이 파란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됐다).
그런 환경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선명히 알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새삼 알게 됐다.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그게 또 나를 황홀하게 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이 작아서 마음만 먹으면 자리를 옮기며 해가 지는 것을 44번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제주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동쪽에서 일출을 보고,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서쪽에서 일몰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인에 살 때는 자연으로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문만 열면 바로 자연이었다. 문만 열면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 풀냄새와 새소리가 밀려와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건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제일 생각나는 건 제주의 어느 유명한 명소보다, 혼자 아침에 숙소를 나서던 순간이다. 표선에서 묵던 날 제주의 일출을 보고 싶어서 혼자 표선 해수욕장으로 차를 타고 나갔다. 숙소와 바다는 차로 10분 거리였는데, 차에서 본 풍경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하늘은 떠오르는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쪽은 아직 밤인 듯 짙고 땅과 맞닿은 곳은 붉었다. 공기는 맑고 도로는 한적했다. 표선 해수욕장에 도착해 보석처럼 작게 떠오르는 해를 봤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밖에 없었다.
'이곳은 이게 너무 당연한 일상이구나.'
이렇게 일출을 보겠다고 유난을 떠는 내가 참 없어 보였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 이곳에서 살아야겠다. 그때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도 이런 호사를 누리며 살고 싶다. 제주는 매일 여행하듯 살고 싶은 내 꿈을 이뤄줄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