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결국 나는 서초구로 발길을 옮겼다.
이혼 후 10년 #6
갓 태어난 아들의 출생신고를 위해 남편은 그동안 미루던 혼인신고를 마침내 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싫든 좋든 법적인 부부가 되었고, 소중한 한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제대로 된 가정을 꾸려야 했다.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온전히 내 시간을 내어준 적이 있었던가?'
조리원에서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이 작은 생명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맞추며 제대로 된 하루를 선물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신혼집이 있던 동네는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지하철 7호선과 2호선이 멀지만 도보거리에 있어 나름 이동이 용이했고, 저렴한 재래시장도 인근에 있어 출산 휴가 동안 집에 머무르는 것이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복직 날짜가 다가올수록 앞으로 아기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이었다. 집 앞 구립어린이집은 인기 많아 대기가 길고 돌봄 시간도 짧아 내 상황엔 맞지 않았다. 그러다 점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재래시장 골목 어귀에서 <야간보육가능>이라고 크게 적힌 작은 어린이집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꽤 오래되고 좁아 보였지만,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아이를 봐준다는 원장의 말에 그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의 복직과 함께 이제 갓 3개월을 넘긴 우리 아들은 가장 일찍 등원하고 가장 늦게 가는 원아가 되었다.
"선생님! 저 이제 지하철에서 내렸어요. 곧 내려오시면 될 것 같아요!"
밤 11시,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선생님께 전화를 건 후 서둘러 뛰어갔다.
신호등 2개를 지나다 보면 어두운 거리 저쪽 끝에서 유모차를 밀며 밝은 얼굴로 걸어오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도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피곤함 대신 미안함이 가득 차 올랐다.
남편은 아침 7시에 출근해 회사에서 아침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를 보내고 데려오는 일은 대부분 내 몫이었다.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상황에 따라 제3세계 국가로 출장 가는 일도 잦아 나의 셋업 일정과 겹칠 때면 5시간 거리에 계신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차라리 이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
아들이 8개월쯤 되었을 때 대구에 장기 공연이 잡혔다. 셋업기간만 꼬박 한 달... 나는 여러 궁리 끝에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서 출퇴근하기로 결정했다. 운전을 못하던 그 시절 나는 대중교통으로 6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을 감내해야 했다.
새벽 1시... 무거운 발걸음으로 현관에 도착하면 아들은 해사한 웃음으로 나에게 기어와 안겼다.
같은 날 새벽 5시... 출근 준비를 하는 내 소리에 잠을 깬 아들은 시외버스정류장까지 따라 나와 한참 동안 손을 흔들어주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회사 일과 육아에 더욱 지쳐갔고, 남편은 소리 없이 거실에서 TV를 보며 잠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소리 없이 TV를 볼지언정 집안일을 돕지 않는 남편에게 불만이 쌓여갔고, 그가 부부관계를 요구할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찾아 거절하기 일쑤였다.
"거기는 누구랑 갔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해외 출장을 떠나 있던 남편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집에 와있었다.
얼마 전 지방 공연 숙소에서 가져온 세면도구 키트가 내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거실 소파 주위에는 콘○박스들이 흩어져 있었고, 남편은 수량이 맞지 않는다며 소리 높여 화를 냈다.
매일매일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나에게 남편의 이날 행동은 시발점이 되어... 결국 나는 서초구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