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쓸쓸함이 가득한 두 번째 독립
이혼 후 10년 #16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드디어 두번째 독립을 했다.
11월을 지나 12월...정릉의 초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나름 베란다 있던 아파트에서 몇 년을 살다가 다시 배고프게 지내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연극을 하느라 대학교1학년 성적이 좋지않았던 나는 기숙사에서 쫓겨나 동아리친구들과 내생애 처음 자취를 했다.
방문을 열면 해가 보이고, 방에 누우면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그런 집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하게 된 독립생활은 학창시절 의 설레임은 사라지고 찬바람만 가득안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첫째, 셋째 금요일에는 2박 3일 동안 아이들을 볼 수 있어 마음 속이 따뜻해져 왔다.
둘째 아이 출산 후 다시 시작한 운전...
"나중에 시집가서 남편이 어려우면 배추장사라도 할 수 있게 면허는 무조건 1종을 따야한다"
나의 첫 여름방학 때 운전을 가르쳐주시며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백수남편과 이혼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배추는 나를 필요가 없어도, 두명의 애들을 편하게 돌보려면 차가 꼭 필요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편에게 의지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혼을 결심하고 수중의 돈을 끌어 가장 먼저 차를 샀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끝내고 대학로에서 부리나케 강남으로 달려갔다. 다시 강북으로 오면 8시가 훌쩍 넘었다.
추운 겨울밤 차가운 빌라로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겨우 먹이고, 꼬질꼬질한 아이들을 씻기는 일이 큰 일이었다.
두 돌을 갓 넘긴 딸아이의 목욕시간!
갑자기 샤워기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물에 아이가 화들짝 놀랬다.
간만의 목욕에 웃음짓던 아이의 해맑던 얼굴은 찬물로 인해 이내 일그러졌다.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일요일이 아직 지나지 않은 토요일 아침에는 내 마음도 포근하다. 하지만, 일요일에는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에 아침부터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하루가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했다.
공연장에 데리고 가서 공연을 보든, 멀리 과천의 동물원을 가든, 북서울 미술관으로 가든... 그게 어디든 떠났다.
남들에겐 그저 쉬고 싶은 주말이지만, 나에게 아이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기에...
그래서 나에겐 지칠 여유가 없었다.
문득 예전에 첫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차량의 도착시간에 맞춰 전력질주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유모차경주대회에 나가시면 1등하시겠어요!"
나는 여전히 유모차 경주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유모차에서 진짜 자동차로 바뀌었을 뿐 나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여전히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어떻게든 아이들과 짧고 강렬한 추억을 쌓기 위해 달리는 것으로 목적만 달라졌을 뿐...
일요일 밤 8시...
예전에 살던 남편과 살던 아파트로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옆자리에 앉은 딸은 이별을 눈치챈 탓인지 아까부터 계속 내 오른팔을 쓰다듬으며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려있다. 그 모습이 너무 가여워 딸아이를 운전대 앞 내 품에 꼭 안고 곡예 운전을 시작한다.
전남편에게 아이들을 보내고 현관문이 닫혀도 나는 차마 집 앞을 떠나지 못한다.
한참 동안이나 서러운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현관문을 뚫고 들려오기 때문이다.
"엄마! 엄마! 엄마!..."라며 한참을 울어댄 후 체념하는 소리를 끝까지 듣게 된다.
당장이라도 벨을 누르고 뛰어 들어가고 싶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미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