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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da Jun 26. 2023

사바나 한복판의 사무실 (2)

공황장애가 가져온 변화들

작년 10월, 몽골여행을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인생 첫 발작을 겪은 이후, 불안은 내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발작 전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몸의 이상(예기불안), 숨 막히고 몸이 저려오는 순간 느꼈던 강렬한 공포(발작)는 ‘비행기’라는 장소의 특징들과 결합되어 내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그 후로 사람이 북적대고 폐쇄적인 장소라면 어디든 예기불안이 불쑥 나타나게 되었다. 공황장애가 생긴 것이다. 지극히도 평범했던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 용산 CGV, 롯데월드 몰, 사람들이 북적이는 성수동 거리가 어느 순간 사바나로 돌변했다.


세계에서 안전하기로 손에 꼽히는 도시 서울에 살며 사바나 한복판에 있는 듯한 공포를 느끼다니,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병에 걸리다니,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예기치 못한 공황발작을 겪고 나면, 다음날은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내 뇌는 뭐가 문제길래, 나에게 무슨 하자가 있길래, 마치 조립이 잘못된 장난감처럼 자꾸 고장이 나는지. 그런데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다. 예기치 못한 공황을 겪는 것도, 공황이 예상되는 장소에 가는 것도, 결국 피할 수 없는 일상이라 적응해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변화를 겪었지만.


첫 번째로 신체/심리적인 변화가 생겼다. 몸의 반응이 매우 예민해졌고, 공공장소에서 흉부 저림, 피부 따가움, 피로 등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공황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신체적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몸의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이런 예민함이 공황의 대표적인 증세라고 이야기하셨다.


두 번째는 생각의 변화다. 혼잡한 장소에 있으면 ’지금 공황이 온 다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된다. 그러다가 신체반응(예기불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아졌다. 인지행동치료를 하며 예기불안을 많이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동적인 생각의 재생은 막을 수 없었다. 다만, 초반에는 건강에 대한 걱정을 했다면, 요즈음에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발작을 겪을 때의 곤란함 /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세 번째는 의식적인 행동 변화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많고 폐쇄된 장소를 기피하게 되었다.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독립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커피를 매우 좋아하지만 끊(으려고 노력하)게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맞이한 나의 일상은 참 불편하고 힘들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만원 대중교통 피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리고 약속은 왜 다들 그렇게 사람 많은 곳으로 잡는지. 그중에서 가장 최악은 좋아하는 커피를 자유롭게 마시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불편이면 불평불만 가득한 투덜이가 될 법하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공황을 겪은 후 나는 더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이것이 공황에 의해 겪은 네 번째 변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나는 공황발작을 하는 순간에 생존을 위협하는 강렬한 공포를 느꼈고, 그와 동시에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발견했다.

나는 망가진 내 몸과 마음을 적극적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이 권장하는 이완 수축 운동을 할 목적으로 요가를 시작했으며, 9개월째 지속 중이다. 블로그도 시작했다. 내가 감탄하고 즐거웠던 일상을 기록하고,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둥둥 떠다니는 상념을 잡아 글로 해소한다.

행동만 변한 것이 아니다. 생각과 가치가 변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중해졌다.

멀리 있는 것을 쫓으면서 현재를 낭비하는 것은 바보 같다는 것을 체득했기에, 스스로를 스트레스 상황에 몰아넣는 습관을 버리고 현재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공황장애에 걸린 후 일상을 더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에도, 공황의 두려움은 존재한다. 예상치 못한 공황과 예상 가능한 공황의 공포가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 분명히 불편하지만, 마치 한 가지 감각기관을 잃고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뜨게 된 이야기처럼,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이 변화는 나에게 너무 소중하고 값진 것이라, 만약 누군가 이러한 변화와 공황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것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나의 대답은.. '절대 돌아가지 않아’ 다.


'공황장애 극복 설명서'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공황과 공포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내부의 경고 메시지다. 경고를 받아들여 삶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습득하면 당신은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공황은 내 삶에 온 저주가 아니라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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