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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da Jun 26. 2023

불안과 우울의 쓸모

어쨌거나 평생 부대껴야 하는 것들

때때로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질 때가 있다. 어떤 문제들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나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듯하다. 험난한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고, 혼자 외딴섬에 표류된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 불안과 우울의 감정에 빠진 것이다.


불안과 우울은 나를 겁쟁이로 만들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며, 모든 것의 의미를 앗아가는 고약한 감정들이다. 그런 면에서 그냥 느끼지 않고 사는 편이 좋겠는데, 대체 무슨 쓸모가 있기에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의 평온한 일상을 뒤집어놓는 것일까? 좋은 감정만 골라서 누릴 수는 없는 걸까. 즐거움, 행복, 사랑, 감탄으로 가득 찬 매일을 보낸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텐데.


역설적이게도 불안과 우울의 쓸모는 '일상의 평온함을 뒤집어 놓는 것'에 있다. 긍정적인 감정만 느낀다면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안과 우울을 느낀다는 것은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과 우울을 느끼게 하는 원인인 스트레스는 확신, 제어, 그리고 예측 가능성의 부재를 인식함으로써 발생한다. 익숙한 일 또는 기존의 생각만 고수한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인 것이다. 불안과 우울에 빠진 사람들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 자신은 멈춰있거나, 뒤로 역행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과 정 반대되는 사실이다.


소설 데미안에서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유명한 문장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의 가운데에서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버둥거림은 전혀 무 쓸모 하지 않으며, 이 끝에는 새로운 당신이 있을 것이라고 응원하는 듯하다. 불안과 우울의 진짜 쓸모를 안다면, 그 고약한 감정에 잠깐 잠식되더라도 다시 생각을 전환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우울과 불안을 피할 수는 없어도 다룰 수는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실, 연속적인 부정적 사건을 겪는다면 문제는 매우 어려워진다. 불안과 우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일상이 무너져버릴 수 있다. 불안과 우울에 잠식되는 과정은 이렇다; 나쁜 사건을 겪고 우울함을 느낀다. 그때 과거에 나를 우울하게 했던 다른 사건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부정적인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스스로나 태초에 부정적인 사람이며, 앞으로도 계속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 사로잡힌다.


과하게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우리 뇌의 '기억의 맥락 의존성'에 의해 발생한다.

‘기억의 뇌 과학’의 저자 리사 제노바는 기억의 맥락 의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특정한 기억이 생성될 때와 동일한 조건, 즉 같은 맥락에 있을 때 더 쉽게 떠올린다고 한다. 일본 여행에서 많이 들었던 노래를 한국에서 다시 들으면 일본에서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그 예시이다. 감정도 맥락의 한 종류이다. 우울감에 빠졌을 때는 다른 우울한 사건이 쉽게 떠오른다.

'우울할 땐 뇌과학'의 저자 알렉스 코브는 우울함의 하강 나선(=잠식)의 심각한 문제로써,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우울한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에게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음, 만약이 아니라 '반드시' 나에게도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자. 살면서 한 번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연인과의 헤어짐, 연달은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취약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불안과 우울에 잠식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오만한 착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과 우울을 예상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상해야 한다는 것은, 불안과 우울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다. 적을 알아야 대비할 수 있다는 말처럼, 불안과 우울의 고약한 특성을 미리 파악한다면 칠흑 같은 어둠의 순간에도 희미한 변화의 빛을 읽을 수 있다. 어쨌거나 불안과 우울은 평생 함께하게 될 적이자, 나를 성장시키는 동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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