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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Jul 04. 2021

아버지의 숲

OE 시집

아버지 퇴근하시고 작은 가방에 휴대용 라이트를 하나 가져오셨다 건전지 없이는 불이 켜지지 않는 후레시 아빠, 요새는 휴대폰으로도 불빛을 비출 수 있어요 아빠는 빛을 보고 싶어 두 번째 서랍을 열어 보거라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저 서랍장에 안에 있어 누군가 말한다 대사는 그렇게 시작된다 집안 곳곳을 수색하는 사내들이 집에 불을 지른다 안 돼 안 돼 이 집은 숲에 둘러싸여 있어 객석에서 탄식이 들려온다 폐건전지들이 바닥을 뒹군다 사내들은 구멍 난 바지 주머니에 수거하지 못한 폐건전지들을 집어넣는다


손등이 뜨거워져서 자꾸만 긁었다

불이 꺼지자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졌다 툭툭 어둠 속에서 떨어지고 구르는 소리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나타나자 어머니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조금만 기다려 곧 문을 열 거야

이것은 실화일까 극일까 나는 부러 묻지 않고 지켜 보았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흘러간다 어머니가 자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에게 작게 속삭였다 나무가 불에 타면 재로 변하나요? 아버지는 객석을 향해 휴대용 라이트를 비춘다 나는 어머니를 곁눈질한다 아버지는 무언가에 몰두한 듯 보이지만

집요하게 나는 묻는다 아빠, 우리가 잃어버린 물건이 있나요?


파도가 하얗게 녹아내리는 해변 앞에 옷걸이 하나


옷걸이에 걸린 옷이 팔랑 거린다 낄낄대는 숙녀의 몸짓처럼 구겨지고 숙여진다 햇빛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서랍에서 아버지는 작은 후레시를 꺼낸다 채비를 마친 나를 눈으로 확인하고 아버지는 마침내 문을 연다 내부에서 볼 수 없었던 바깥의 빛은 침입자처럼 우리를 덮친다 코 속을 가득 채웠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냄새 물속에서 춤추는 해초들


바람이 부는 해변을 우리는 걷는다 우리는 걷고 걷는다 우리는 지루함을 느낄 때까지 걷는다 바닥에는 거미들이 떼를 지어 빠르게 지나갔다 해가 지려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야 하는 걸까?

나는 검은 풀처럼 자라난 머리카락을 끈으로 세게 묶었다


우리는 숲을 향해 걸었다 아버지는 후레시를 키고 주변을 느리게 훑었다 동그란 후레시의 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숲에서 희미한 불빛이 가시처럼 뾰족하게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아버지의 두 눈동자 위로 반사된 불빛을 나는 보았다


그 때 나는 형제도 없이 혼자였다

어머니는 여전히 자고 있을 것이었다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아버지를 두고 천천히 바다를 향해 갔다 작은 돌멩이들 틈으로 스며들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작과 끝

둔덕을 타고 올라갔다가 다시 그것을 타고 내려오는


멀리서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뒤쫓아 오고 있었다


마냥 떨고 있기는 싫어서 해변  잔뜩 움켜쥐었다 


안 돼 이리 와 다급히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의 두 눈동자 위로 반사되는 불타는 숲

위태로운 나뭇가지 마디마디 반짝이는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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