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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Aug 03. 2023

Ditto

효구 비평




본 글은 계간 <현대수필> 2023년 봄호에 수록된 수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종류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듣는다. 클래식, 국악, 재즈, 힙합, R&B, K-pop, J-pop, 그냥 팝… 닥치는 대로 듣는다. 그중 요즘 나오는 여자 아이돌 그룹 앨범은 별나게 매력적이다. 좋은 곡들이 예의 그러하듯 시간이 갈수록 더 맘에 들고 자주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이유를 몇 가지 고민해봤는데 첫 번째로는 사람의 마음을 가로채는 소녀의 순수한 ‘발성’과 ‘기계음’을 요리조리 섞어 놓은 ‘멜로디’이며, 두 번째로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들어본 적이 없을 법한 창의적인 언어들로 구성한 ‘가사’, 마지막으로는 그 ‘멜로디’와 ‘가사’를 조화롭게 묶어내는 별난 ‘리듬’ 조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여자 아이돌 음악은 마치 ‘첫사랑’처럼 사람의 마음을 쾅쾅 흔들어 놓고 혼을 빼놓는다. 

  

   2022년에는 <뉴진스NewJeans>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다. 다양한 컨셉의 여자 아이돌 그룹들이 우후죽순 데뷔하고 그에 모자라지 않게 대중에게 사랑받는 와중이긴 하나, 이 그룹은 각별하게 ‘힙’하여 그간 가요계를 주름잡아왔던 여자 아이돌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K-Pop을 좋아하지 않았던 잠재 대중의 마음을 가로채며, K-Pop 애호가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든 성공 효과는 분명 기존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 가지는 클리셰를 깨고 대중이 바라던 일면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돌파해낸 사업적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간 엔터 산업에서 알아채지 못했으나, 민희진을 필두로 한 하이브에서 발견하고 공략한 이 틈새는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이 글을 완성한 날이 크리스마스이니까, 12월 셋째 주 무렵)에는 뉴진스가 <Ditto>라는 신곡을 내놓았다. 고심 끝에 내놓은 두 번째 앨범일 텐데,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싶어 여러 군데 뒤져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as has been said before’이란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도 몰리가 “사랑한다”는 말에 샘이 이 단어로 답한다.’고 하며, ‘홈쇼핑’이나 ‘만화 캐릭터’, ‘시리즈물’이나 ‘소프트웨어’ 이름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정보만 보더라도 ‘Ditto’가 일정 낭만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사회 전반에서 여러 의미를 포괄하여 활용 가능한 단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디’. ‘토’. 윗니 뒷면을 두 번 세게 혀를 부딪쳐 내는 이 단어의 말소리는 평범하지 않다. 뭐랄까. 영화 ‘시네마 천국’의 어린 남자 주인공 ‘토토’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라틴 어원이 주는 분위기가 이국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그런지 세련되면서도 귀엽다고 해야 할까. 라틴 발음으로 ‘디’, ‘토’, 혹은 ‘디’, ‘또’로 읽기도 하고, 북미 영어식 발음으로는 ‘디-로’로 발음이 가능한 것을 보니, 읽힘도 다양한 편이다. 여러모로 무슨 뜻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매력적이고 중독적인 이름 선정임이 분명하다. 


   최근 몇 편의 청탁받은 비평 글을 써보았으나 수필은 처음이다. 이 수필은 특별히 ‘신조어’에 관한 주제로 요청받았다. ‘신조어’라. 글 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재미있다고 여기는 편인데, ‘신조어’라 하니 과연 쓸 거리가 있을지 짐짓 망설여졌다.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야만 하는 비평문 대신 자유로운 형식의 수필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내가 신조어를 쓰는 일이 있었던가? 지인에게 물어보니 너 “킹 받는다”는 말 자주 쓰잖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내가 종종 쓰는 말이긴 해서 그런지 신조어라 하기에는 다소 시시하게 느껴졌다. 내가 자주 사용하면서도 ‘신조어’라고 느끼지 못한 것은 이 말이 내게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라 그저 익숙한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알잘딱깔센’이라든지, ‘낄끼빠빠’라든지, 기성세대에게 생소하고 사용하기 쉽지 않은 의미의 신조어가 그것을 주로 써왔던 주체 세대들에게는 매우 익숙해서 ‘신조어’로 인정하기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조어’에 대한 구분은 이토록 개별적인 편이다.


   ‘신조어’가 세간에 이슈화되는 이유는, 즉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언어를 받아들이는 수용受容의 입장에서 ‘신조어’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낯섦’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다. 기존의 것과 다른 영역에 대한 예민한 ‘시선’과 ‘반응’이다. 반대로 ‘신조어’를 지어내고 사용하는 창조創造자들은 주로 기성의 반대편에 서서 새로운 언어 구사의 시도를 한다. 이들은 기존 언어를 대체하는 무언가를 통해 ‘희소稀少’의 가치를 느낀다. 그 언어 자체가 새롭고 특이하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자도 희소해진다. 이렇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가 특별해지고 귀중해지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충만함을 느낀다. 이렇게 ‘신조어’ 사용 심리의 저변에는 귀엽게도 ‘사랑’받으면서 ‘특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시 ‘Ditto’로 돌아가서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Ditto’는 신조어인가? ‘Ditto’는 새로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어서 엄연히 말하자면 ‘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을 두 번째 앨범 타이틀로 선정한 기획자는 이 단어가 가진 ‘특별함’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뉴진스의 모습에 한껏 기대감을 가진 타겟층-주로 MZ세대-이 새로운 것, 혹은 새로운 ‘언어’를 인정하고 상용해나가는 심리의 저변을 이 기획자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새로운 단어 하나를 갓 창조해낸 어느 중학생의 마음과도 같다. 이것은 기획자가 곡명을 지어내는 과정에서의 고군분투와 일치한다. ‘언어’로서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 <Ditto>는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자리에서 변형되고 진화하면서 다정한 ‘언어’로 대중의 문화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선의善意로 만들어진 신조어는 귀엽고 매력적이다. 누구나 신조어를 만들 수 있으며, 혹자가 신조어를 쓰고 있자면, 스스로가 일류인 것처럼 느껴지고 어깨도 으쓱으쓱해진다(이런 경험이 없는 분들에겐 한번 신조어를 소리 내어 말해보길 제안 드린다). 이 글을 빌어 소망하자면, 웬만하면 새로운 언어의 탄생을 ‘취존’해주면 좋겠다. 


   살다 보면 마음은 딱딱해져만 간다. 쓰던 말만 계속 쓰게 되고,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커진다. 하지만 좀 덜 딱딱하고 점차 말랑해지는 것도 좋다. 말랑해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부드럽고 몽글몽글하고 따뜻하다. 나아가 혹자가 말랑해지려고 할 때 그가 자신이든, 타인이든 간에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를 좀 귀엽게 여겨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만물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니까. 


   그래서 어느 날 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받는다면, ‘Ditto’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아니면, ‘할많하않’ 내지는 ‘ㅂㅂㅂㄱ’도 괜찮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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