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도 해볼 만하다
남편과 나는 결혼하고 4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냈다. 전세계약이 만기가 되어 우리는 새 집을 찾아야 했다. 내 근무지는 광주, 남편 근무지는 전남이다. 남편이 출퇴근하는 것이 몸에 무리가 될까 걱정이 되어 이번에는 남편 직장 근처로 집을 얻었다. 시댁과도 꽤 가까운 거리였다.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아기를 키울 때에도 남편 직장 가까이, 시댁 가까이에서 키우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도 이삿집 위치를 정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8월 셋째 주, 아직 찜통더위가 남아있을 때, 우리는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생리 삼일째가 이삿날과 겹쳐 버렸다. 생리 삼일째에는 병원에 가서 시험관을 시작해야 한다. 시험관 시술을 할지 말지 많이 고민되었다. 남편은 이사하고 좀 더 쉰 후에 시험관 시술을 하자고 했고, 나는 올해 휴직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당장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난 이사하는 당일, 병원에 가서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이삿짐센터가 와서 짐을 옮기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병원으로 갔다. 시험관 시술 3차, 이번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장님을 만났다. 원장님께서 웃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저자극 요법이라 과배란 주사는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대신 반복 착상 검사를 하느라 피를 많이 뺐다. 피검사를 위해 피를 많이 빼로 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다시 옛날 집으로 와서 이삿짐을 다 옮긴 것을 확인하고 남편과 나는 새로 이사 가는 집으로 향했다.
문제는 이사하는 집이 우리 집 말고도 다른 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다리차는 한 군데밖에 못 주차하는데, 6층 이사하시는 집과 겹쳐버렸다. 결국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중간 시간이 붕 떠버렸다. 우리 부부는 열쇠를 받아 왔고 이사를 하시는 분들은 우선 엘리베이터로 짐을 옮기길 원하셨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새 집을 지키며 가구 배치를 말씀드려야 했다. 휴게소에서 이삿짐센터 분들은 식사를 하셨지만 우리는 식사를 하지 못해서 점심을 굶은 상태였다. 아침에 과배란 주사도 맞고 피도 많이 빼서 어지러운데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이사를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남편에게 화를 냈다.
[나] "여보, 나 아침부터 피검사한다고 피도 많이 빼고 어지러운데 점심도 못 먹었잖아요."
[남편] "그러게 내가 시험관 시술 이번에 하지 말자고 했잖아요."
남편의 말이 내 마음 깊이 비수와 같이 꽂혀버렸다. 나도 시험관 시술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닌데, 휴직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두른 건데 나의 선택을 존중받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기 갖고 싶은 건 사실 남편도 원하는 것이 아닌가? 왜 나 혼자 이렇게 애쓰는 거지?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남편도 밥도 못 먹고 이사하느라 이것저것 신경 써서 힘들 텐데. 내 건강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었다.
이렇게 울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뭐라도 먹어야 힘이 날 것 같아 잠깐 틈을 내어 남편과 편의점에 가서 바나나우유와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 음식이 들어가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난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을 내어 이곳저곳을 닦으며 이삿짐을 정리했다.
이삿짐 정리가 다 될 무렵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장어탕을 끓여놨으니 먹고 가라고 하셨다. 시댁에 가서 어머님께서 해 주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과 장어탕을 먹자 피곤한 몸도, 섭섭함으로 응어리졌던 마음도 녹기 시작했다. 맛있게 밥을 먹고 다시 집에 왔다. 이사한 집에서 첫날을 보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지 못한 채, 거실에서 자는데 풀벌레 소리가 참 예뻤다.
[나] "여보, 풀벌레 소리가 너무 좋다. 공기도 좋고 집에 바람도 잘 통해. 좋은 집에서 살게 되어 참 감사하다."
[남편] "그러게, 풀벌레 소리가 잘 들리네. 좋은 것 같아. 여보, 오늘 이사하느라 수고 많았네."
그렇게 우리는 수고한 서로를 토닥였다. 선택이 어렵고, 선택에 대한 책임도 어렵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가 보다. 머리 누일 집이 있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고, 예쁜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으니 시험관 시술도 힘을 내어 해 볼만하다. 내 옆에서 함께 수고한 남편이 다시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