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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Mar 02. 2024

마흔의 경계에서

나이를 먹는 게 두려워

"서서방 흰머리가 많이 늘어서 마음 아팠어. 너무 고민하지 말게. 뜻하는 일들 다 잘 될 거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말에, 내 마음도 속상했다. 결혼 8년 차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자녀가 없다. 남편은 삼 교대 근무가 피곤한지,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나 또한 직장일로 바쁘고 주말에 남편과 같이 지내는 집으로 오가며 일상에 부대꼈다. 결혼하며 주말부부로 살아오면서, 실제로 같이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삼 교대 근무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도 다니고, 추억도 쌓으며 재미있게 지낸 것 같다. 그러나 남편이 삼 교대 근무에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함께 할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남편은 휴가조차도 쓰기 어려웠고, 그 이후로 우리에게 여행은 1년에 한 번도 갈까 말까 한 일이 되었다. 남편의 삼 교대 근무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시험관 시술은, 결혼 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늘 외로웠고 홀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견뎌냈지만, 보상처럼 주어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자녀를 기다리면서, 늙어가는 신체에 대한 안타까움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직장에 가든, 교회를 가든, 길거리를 걷든, 내 또래의 부부와 그들의 아이들을 보는 것은 마음 한 구석의 슬픔을 휘젓는 일이다. SNS의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나, 여러 올라오는 사진의 자녀 모습, 단란해 보이는 가족모습은 내 마음을 더욱 가라앉게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자녀에 대한 갈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신없이 바쁘던 학교의 일상에서 벗어나 방학이 주어진 탓일 게다. 잠깐 인생을 되돌아보며 생각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게다. 시험관 시술로 쇠약해진 몸이 회복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게다.


"췌장에 염증 수치가 있어요. 황달도 있고. CT를 찍어봅시다."


2년 전 추석, 참지 못할 복통으로 응급실에 갔다. 먹을 것을 토해내며 아픈 배를 움켜쥐고 울었다. 날 응급실에 데리고 갔던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봤고, 의사는 건강검진을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건강검진, 위내시경부터 대장내시경까지 싹 했는데, 문제는 췌장 관련 혈액검사 수치였다. 그렇게 해서, CT를 찍고 대학병원부터 서울의 유명한 병원까지 다니며 문제의 원인을 찾고,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술을 먹는 것도 아니고, 담석 때문도 아닌데... 원인불명이네요."


시험관 시술의 '클로미펜' 부작용 중 하나로 '췌장염'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도, 서울의 유명한 의사 선생님도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 듯했다.


"그래도 수치가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니 추적해 봅시다."


마음으로는 생과 사를 오가며, 2년을 보냈다. 게다가 휴직 후 복직해서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2년의 난임 휴직 후의 허탈감, 예전보다 훨씬 약해진 몸, 모래알을 씹는 듯한 식사, 주변 사람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는 어리석은 생각들로 괴로웠다. 자취방으로 얻은 원룸은 방음에 취약했고, 새벽 3시 넘어서까지 시끄럽게 떠드는 소음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수구 냄새가 아래에서 올라오기도 해서, 집에 가는 것이 괴로웠다. 빈 방에 불을 켜고 집 안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방울을 뚝, 뚝, 흘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겹던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어."


지난달 만났던 선생님의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군가는 날 위해 기도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많이 회복된 것 같다. 밥알이 모래같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식사하는 것이 즐겁다. 밥도 훨씬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소화도 잘 되기 시작했다. 몸에 힘이 생기니, 마음에도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또다시 내면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너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어. 늦기 전에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목소리에 난 분노한다. 내가 아프면서까지 8번 시험관 시술했으면 충분한 거 아닌가? 도대체, 내가 얼마까지 아파야 시험관 시술을 그만할 수 있는 거야? 분노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도 우습다.


"입양을 해 보는 건 어때?"


난 입양을 할 만큼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입양을 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것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난 그럴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버겁게 느껴진다. 학교에서도 충분히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그 일 자체도 버거운데.......


'마흔'


마흔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진다. 마냥 젊은 나이도 아니고, 인생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나이다. 세파에 시달려 주름이 늘어나고, 흰머리가 파뿌리처럼 더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웃으며 내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애가 있어도 인생은 힘들고, 애가 없어도 인생은 힘들어. 애가 있어서 좋은 점도 있고, 힘든 점도 있다면, 애가 없어서 좋은 점도 있고 힘든 점도 있어. 어쨌든 인생은 힘들어. 하나님께서 감사하게 자녀를 허락하시면 잘 키우면 되는 것이고, 주시지 않을 때에는 그 장점을 보며 사는 거지."


엄마의 말을 되뇌어본다. 그래,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지. 장밋빛으로 인생을 보던 마냥 어린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도, 웃으며 유쾌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억지로 힘을 내어 웃어본다.


'그래, 인생이 내 맘 같지 않더라도, 인생은 소중한 거야.

힘들더라도, 거기에도 다 귀한 메시지가 있겠지.'


지쳐있는 내게 선물을 줘야겠다. 마트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참외도 사고, 산책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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