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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Jun 06. 2024

갈 길을 몰라 헤매다

간절한 꿈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어린 시절, 유학을 가는 것이 꿈이었다. 공부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적성에 맞았고, 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갈수록, 나의 꿈과 현실의 간극은 점점 벌어져간다.


20년 전, 수능시험은 나의 인생의 경로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해주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나와 우리 가정의 상황에서는 최선의, 최상의 선택이었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어린 시절 꿈을 안고 있지만, 이 또한 허황된 것일까? 어린 시절 누구나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꿈꾸며 공부하고 노력하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되고 싶은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꿈이 좌절된 뼈아픈 아픔을 누구나 안고 사는 것일까? 꿈이 어떠한 직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 힘든 것이다. 아니면, 현실의 고통을 '꿈'이라는 마취제로 위안을 삼는 것일까? 현실의 팍팍함 속에서, 내가 약점으로 여기는 인간관계의 최전선에 있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약점을 알기에, 더 열심히 내 자신을 채찍질하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애썼다. 그러나, 내게 돌아오는 보상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난 막연히 내가 결국에는 학자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어교육학과로 대학원 박사과정을 한 것도, 나중에 유학을 갔을 때에 연구를 하는 데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박사과정은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기회비용을 요구했다. 시작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여자나이 마흔

마흔이 되니, 내게 다가오는 세상의 색깔이 너무나 다르다. 삼십 대까지만 해도, 세상은 도전으로 가득 차 보이고, '이것을 해 봐야지!', '나는 할 수 있어!' '미래가 기대된다.'는 막연한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마흔으로 접어들면서, 내게 있는 결핍이 이미 커 보이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줄어들고,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는 행동력 또한 줄어든다. 무엇보다, 자녀가 없는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왠지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나 혼자만의 자격지심일 게다.


"자녀가 몇 살이에요?"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으레, 내 나이가 되면 있어야 하는 자녀의 부재가 가끔씩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면, 아직 자녀가 없고, 기다리고 있다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된다. 당당하지 못한 내가 답답하면서도, 이런 나의 상황이 속상하다.


한 동안 자녀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았다. 2년 전, 응급실에 드나들고 췌장염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을 가기까지, 나는 내 생명의 위협감을 느끼며 자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작년에 응급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고, 몸이 회복된다고 착각했다. 여전히 리파아제와 아밀라아제 수치는 기준치를 웃돌고 있었지만 말이다. "수치가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니 추적해 봅시다."의 의사 선생님의 말에서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는 말에 지나치게 안심했던 탓일까?


그러나, 새로운 직장 환경에서 내가 감당하기에는 많게 느껴지는 업무를 하며 과부하가 오는 듯했다. 결국, 며칠 전, 새벽 복통으로 응급실을 또다시 방문했다. 혼자 응급실로 가서 진통제와 수액, 위장약을 링거로 처방받고 누워있는데 눈물이 자꾸만 났다. 이렇게 팍팍하고 힘든 환경에서, 어떻게 임신이 가능할까? '시험관을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내게 주어진 환경은 왜 이리도 척박하고, 고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내 마음의 문제일까?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 가득한 내가 문제인 것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마흔에 응급실에 누워있는 난, 내 생명을 나도 보장하지 못한 채, 미래의 불확실함 속에 그저 통증이 가라앉음에 감사할 뿐이다.



유학은 가도 되지만, 이민은 안돼


미국의 아는 교수님과 통화를 했다.

"선생님, 이미 한국에서 박사학위도 있으시고, 요즘 유학을 가는 것이 많이 까다롭지 않아 졌어요. 선생님의 한국에서의 경력이 좋은 장점이 될 거예요. 요즘은 GRE도 선택적으로 보는 대학도 많아요. 토플 점수가 있으면, 서류 준비해서 바로 지원해 보세요. 유학 후, 한국에서는 직업을 구하기 어렵지만, 미국에서는 좋은 기회가 많이 있어요. 제 주변에서도 좋은 사례가 많아요. 고민하지 말고 시도하세요."


교수님의 말에 용기를 얻어 남편과 통화를 했다. 남편은 유학에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난 다시 꿈에 부풀었다. '그래, 얼른 토플을 보고 원서를 넣자.'


그런 후, 다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내가 유학을 가는 것에 긍정적이시고, 늘 꿈을 지지해 주시기 때문에 엄마도 당연히 도전해 보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나는 네가 유학을 가는 것은 찬성이야. 그렇지만 미국에서 사는 것은 반대야. 내가 아프거나, 내가 네 도움이 필요할 때, 네가 미국에 있으면 어떻게 하니? 주변에 자녀가 미국에 있어서 그런 사례도 보니까 안 좋더라. 유학은 가더라도 한국에 다시 돌아와야 해."


엄마와 통화를 한 후, 마음이 심란했다. 내가 만약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면, 과연 내가 학계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만약 교사로 다시 살아간다면 이미 에너지를 많이 소진한 상태에서, 과연 교사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부치는데.... 게다가 약 5년 정도의 시간 동안, 경제적으로도 더 준비가 되어야 하고,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를 공부로 보낸다면, 기회비용이 또다시 커져버릴 것이 아닌가?


내 욕심대로 살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나도 크다. 이미 내게 많은 자산이 있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내게 있는 비용은 많지 않고, 어떤 선택을 하든 리스크가 크다. 게다가 혹시나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며칠 전처럼 아프다면, 그 비싼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 자녀도, 유학도... 내가 바라던 간절한 꿈도... 그저, 눈물방울처럼 흘러내려, 공기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저, 난, 내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할 뿐이다. 내 바람도, 꿈도, 다... 부질없는 것일까? 현실에서 가능한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일까?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내가 현실에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버거운 환경 속에서 건강을 잘 지키며 감사로 인생을 해석하고 긍정을 유지하며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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