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샘 Jul 27. 2024

OO쌤은 몸이 약하니까

20대 때만 해도,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은 자신 있었다. 타인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밤잠을 줄여가며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렇게 고생, 고생, 고생한 결과 내게 남은 것은 만신창이가 된 몸이다.


능력을 갖추면 좀 더 편할 줄 알았던 직장이지만, 몸이 약해지니 직장에서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 교무실에서  에어컨 바람도 견디기가 힘들어 잠바를 둘러쓰고 일한다. 잠바를 껴 입을 때면, 부장님께서 "우리 시어머님처럼 OO쌤은 추위를 많이 타네요."라며 걱정하신다. 나 또한 내가 걱정스럽다.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약해진 것일까? 그런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가 원래부터 이렇게 몸이 약한 것이 아니었어요."


박사 과정을 시작하던 초기에만 해도, 10km 마라톤을 1시간 안에 완주할 정도로 체력이 좋았다. 근육질의 몸이었고, 볼도 통통하게 차 올라 귀여운 이미지였다. 그러나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살이 쭉쭉 빠졌다. 대학원 과제의 압박감과, 고학년 담임으로서 느끼는 생활지도의 부담감은 나를 극도의 환경으로 몰아갔다. 늘 시간에 쫓겼고, 삶은 고되었다.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한 복통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박사과정을 졸업을 했지만, 어떠한 보상도 없었다. 오히려 박사과정 중간에 유산을 겪어야 했고, 그 이후 임신이 되지 않아 2년 동안 시험관 시술을 하며 또다시 내 몸을 혹사해야만 했다. 그리고는 어떠한 휴식 기간도 없이 직장에 복직했고, 직장에서 적응하기 위해 나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어, 승진 점수와 관련 없는 학교로 옮겼는데 그 학교에서는 내가 예상치 못한 엄청난 업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에는 해 보지 않은 새로운 업무의 세계였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많은 업무를 떠맡고 꾸역꾸역 일을 하다 결국은 새벽에 응급실에 갔다. 그 이후로, 번아웃과 함께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다들 나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씁쓸한 감정이 든다.


박완서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젊은 적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어쩌면 나 또한, 내 두려움에, 내 욕심 때문에 내 몸을 혹사시킨 결과를 맞닿드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러한 번아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가 지나친 경쟁과 업무로 사람들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난 점점 지쳐간다.


"박사과정 하면서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바로 친정 아빠 간병하고, 시험관까지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남편의 말이 맞다. 난 쉼 없이 달렸다. 그러나, 이렇게 애씀을 직장의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체력이 약한, 몸이 약한 내 모습만 타인에게 비칠 뿐이다. 그동안 인생에서 나의 애씀에 대한 보상은 없이, 지쳐버린 나 자신을 안고 자취방에서 울고 있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


눈물의 일기장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끝이 없어 보이던 터널을 지나, 방학을 맞이했다. 드디어, 숨을 돌린다. 나에겐 쉼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갈 길을 몰라 헤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