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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뒤처진 것 같을 때

by 햇살샘

그럴 때가 있다.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때.


나보다 한창 어린 친구들의 눈부신 '젊음'을 보며, '나는 젊을 때 무엇을 했나?' 돌아보곤 한다.

젊은 때, 나름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내 손에 잡히는 것이 많지 않을 때 절망하곤 한다.

나의 봄날은, 따스했던 봄날은 어디 가고, 왜 이리도 추운지.


젊을 때의 패기, 희망, 열정은 어디로 가고,

내 마음속엔 체념과 분노가 남아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지금쯤은 자녀들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이뤘으면 좋을 텐데, 마음같이 자녀는 생기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시험관 시술을 하며 몸이 더 망가졌는데, 무리하게 시험관 시술을 한 게 잘못이었던 것인가?

무리해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몸을 망쳤던 것, 그것이 잘못이었을까?

가고 싶은 유학을 밀어붙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 문제였던 것인가?


언제부턴가 인생의 실타리가 꼬여버린 듯한 때가 있다.

아무리 풀려고,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듯한 이 기분.


나의 인생의 태도가 문제라며,

좀 더 긍정적으로, 좀 더 건설적으로, 좀 더 밝게 살아보려고 하지만, 밝은 척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게 깔린다.


30대 초반만 해도, 정말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여행 다니며, 삶을 누릴 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주경야독으로 몸을 혹사하기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가 마흔이 넘어가니, 내 삶에 대한 회의가 찾아온다.


우연히 알게 된 김창열 화백의 작품이다.

김창열미술관 작품, 사진 출처: 서울신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3456854

물방울이 흘러온 자취, 마치 눈물과 같이 보이는 이 물방울에는 정화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내가 처음에 물방울을 택한 이유는 어쩌면 인간의 기억을 온전히 초토화하며 모든 고통, 이 견딜 수 없는 것들을 없애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즉, 물방울은 일종의 정화수이다."


어쩌면, 이 물방울처럼, 나의 과거의 회한을 씻어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김창열의 '회귀' 물방울 중(사진 출처: 한라일보 https://www.ihalla.com/read.php3?aid=1519635902587326036)


이 물방울을 가까이서 보면, 촛불이 켜져있다고 한다.


나의 슬픔, 격노, 결핍의 언어가 지나고 나면,

이러한 마음을 씻어내는 물방울이 지나고 가며,

그 물방울을 따라가다 보면, 촛불처럼 밝은 빛이 있겠지.


내가 걸어온 길이 어둡게만 느껴질 때, 눈물로 다시 길을 돌아본다. 그리고 거기에 가느다란 빛을 발견한다.


20대 때의 나를 돌아보면, 그때도 난 참 늦었다. 또래에 비해 결혼도 늦었고, 직장에 적응하는 것도 늦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지 않은가? 회사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지 않는가?


40대,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내게 있는 결핍이 나를 삼킬 것 같을 때에, 다시 촛불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를 꺼내 읽는다.



너의 때가 온다.

- 박노해


너는 작은 솔씨 하나지만

네 안에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들어잇다.


너는 작은 도토리알이지만

네 안에는 우람한 참나무가 들어있다.


너는 작은 보리 한 줌이지만

네 안에는 푸른 보리밭이 숨 쉬고 있다.


너는 지금 작지만

너는 이미 크다.




슬퍼하는 나, 작은 나, 느린 나를 안아준다.

그래, 나는 지금 작지만, 나는 이미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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