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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식한게 좋아 Aug 11. 2024

그해 여름

여름이주는 싱그러운 낭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언제나 지쳐버리했습니다. 타는 듯한 햇살에 숨이 턱턱 막히고, 끈적이는 습기마저도 일상 속 작은 여유를 앗아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여름의 한가운데,  그저 피곤과 불쾌함만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해 여름,  그토록 싫어했던 계절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도시의 복잡함을 잠시 벗어나고자 시골의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끌벅적한 일상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보았던 첫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물결이었습니다. 논과 밭,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산과 들판이 모두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땡볕 아래에서 작열하던 도시의 풍경과는 달리, 그곳의 초록은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고,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길 양옆으로는 나무들이 터널처럼 우거져 있었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듯 내려왔습니다. 햇볕이 직접 내리쬐는 것이 아니라, 잎사귀들이 필터처럼 부드럽게 걸러준 빛이어서인지, 따뜻하면서도 따갑지 않은 온화함이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무들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은 묵직하게 느껴졌던 더위를 순식간에 밀어내었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습니다. 매미 소리,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들의 속삭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까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한 편의 자연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했습니다. 그 소리들 속에서 나는 여름이 주는 싱그러운 낭만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숲을 빠져나오자, 넓게 펼쳐진 들판이  맞이했습니다. 그곳에는 끝없이 이어진 초록의 논과 밭이 있었고, 농부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산자락 아래로는 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야생화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습니다. 냇물로 다가가 맨발로 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차가운 물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와 온몸을 시원하게 해 주었고, 그 순간  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청량한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마을 어귀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붉게 물든 하늘과 푸르른 대지, 그리고 서서히 내려앉는 저녁의 고요함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저녁노을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쯤, 그 풍경 속에 서서 깊은숨을 내쉬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여름의 진정한 매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더운 계절이 아니라, 초록의 싱그러움과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후로 여름을 단지 덥고 지치는 계절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름이 주는 생명력과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낭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의 초록은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었고, 더위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싱그러운 아름다움은 일상에 작은 행복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제  매해 여름이 다가오면, 그 초록빛 풍경을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레곤 합니다.


그해 여름의 기억은 내게 가장 맑고도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지금도 마음 한편에 초록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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