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마라톤 도전기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든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고지혈증 및 심혈관 검사 결과]
* 총 콜레스테롤 (*정상범위 0~200mg/dL) : 205
* 고밀도 콜레스테롤 (*정상범위 40~60mg/dL) : 53
* 저밀도 콜레스테롤 (*정상범위 100~129mg/dL): 1302
"이게.. 뭐지?"
나는 헬스장을 3년째 꾸준히 다니고 있었다. 주 3~4회, 빠지는 날이 거의 없었다.
중량도 꾸준히 늘었고, 몸도 나름 만들어졌다.
건강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정말로.
그런데 이 빨간 숫자는 뭐지?
의가 말했다.
"헬스도 좋은데... 유산소를 좀 하셔야 해요. 정기 검진 꾸준히 받으세요."
30대에 들어서 들은 말 중 제일 충격적이었다.
'유산소...?'
무릇 남성의 건강이라면 울퉁불퉁한 근육과 우람한 덩치 아니던가. 나는 그 말을 맹신했다. 근육을 키우는 게 건강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러닝머신은 패싱 한 채 중량 운동과 단백질 섭취만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심장은 달랐다.
내 심장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건강하지 않았다.
그렇게 2024년 1월,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50분 달리기, 할 수 있겠지?" 쇠질에 익숙한 나였다. 달리기 쯤이야.
첫날, 달리기 '시작' 버튼을 눌렀다.
10분이 지나자 숨이 찼다.
20분이 지나자 다리가 무거워졌다.
30분이 되기 전에 다리가 멈췄다.
50분?
30분도 못 뛰는 게 현실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속은 울렁거렸다.
한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지만, 나의 폐는 불타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스미스 머신 앞으로 달려가 스쿼트를 열심히 해야 하나 싶었다.
2024년 1월 06일 달리기 기록
* 시간 : 20분 41초
* 거리 : 3.00km
* 평균 페이스 : 6분 53초
달리기 앱 화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나는 달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이상했다.
3년 동안의 꾸준한 헬스로 중량에는 한계가 왔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려면 부상 위험이 컸다. 건강하자고 하는 운동에서 무리한 중량은 오히려 몸을 망칠 것 같았다. 그래 성취감은 사라졌다. 말 그대로 도파민의 고갈 상태였다.
그런데 달리기는 달랐다.
나의 헬린이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 맨몸 중량 스쿼트를 성공했을 때, 다음 주엔 더 높은 중량을 도전하던 그 떨림. 달리기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다.
부상을 걱정하지 않고 무한 중량을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었다.
무게를 더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더하는 것. 거리를 더하는 것.
30분이 한계라면, 35분을 목표로 뛰어보자.
35분을 뛸 수 있게 된다면, 부상 걱정 없이 40분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달리기 앱을 켰다.
건강과 성취감을 위해.
50분을 목표로.
2024년 그때, 나는 이런 글을 썼었다.
"러닝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으면 웃음이 나온다.
'나 정말 많이는 못 뛰었지만, 달리기를 즐겼구나'
달리면서 보이는 생생한 풍경과 주변 소리를 즐겼다.
30분이 50분이 되고, 50분이 10km가 되더니, 어느새 하프 마라톤을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42.195km의 풀마라톤을 뛸 수 있게 될 것을 상상했다.
그 성취감을 미리 즐겼다.
그러곤 생각했겠지.
멈추지 않으면 언젠간 도착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