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진 Sep 25. 2024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

원효대사 해골물과 보이지 않는 도시


때는 통일 신라시대.


젊었던 원효대사는 촉망받는 유능한 신라의 승려였다.


현대에 유능한 인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듯, 원효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유학길은 만만치 않았다.


거센 풍랑과 파도를 넘어 당나라로 들어갔고, 거기서 입당을 위해 산을 오르다 그만 해가 지고 만다.


당시 산에는 온갖 맹수들이 살았으니, 원효는 빨리 하룻밤을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속을 헤매다 한 동굴로 들어가 잠을 청하게 된다.


하루 종일 산을 헤매어서 그런가 원효대사는 목이 말랐다.


"아...."


땅을 더듬거리던 원효대사는 웬 물이 담긴 바가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거기에 든 물을 들이켜곤 말했다.


"아! 이렇게 달고 시원할 수가!"


그렇게 다시 기분 좋게 잠이든 원효대사는 아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잠을 청했던 무덤은 파헤쳐진 무덤이었고,


그가 마셨던 바가지에 담긴 물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토를 하던 원효는 문뜩 '한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을 얻은 원효






대한민국에서 자란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불교계에서 유명한 경전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고 하는 '관점의 차이'에 갖다 붙여도 될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 가르침은 유효하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여행자와 지역 주민이 동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회사원과 예술가가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이 다르다.


나도 한낮 제조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회사원이다.


그런 나는 우리 동네를 설명할 때는 생활 반경 내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사거리에 마트가 있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지?"


이렇게 말하고는 태연하게 주차장을 찾고 장을 볼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의 시선은 나와 다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 - 임우진 지음」이라는 책에 나온 이야기이다.


서구의 공동묘지와 한국의 공동묘지는 분위기부터 다른 걸 알고 있는가?


*서구의 공동묘지


한국에서의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이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한 슬픔을 달래기 위해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장례식을 치루지만,


그뿐이다.


이미 화장터나 공동묘지는 기피시설이고, 공포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는 단골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더욱더 발길이 닿지 않는 장소가 되어버린 듯하다.


반면 서구에서는 다르다.


서구에서는 공동묘지를 공원의 형태로 짓는다.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뛰놀고 꽃도 놓고 갈 수 있게 최대한 아름답게 공원을 조성한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이 세상과 고립된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들르기만 하면 집 가까이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집 가까이에 공원태로 공동묘지를 짓는 것에 크게 반발이 없다.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다.


단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관점의 차이일 뿐.


그 차이가 우리에게는 더 많은 발전을 가져다 줄지 누가 아는가?


한 번쯤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운세가 100점이라 로또를 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