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a Sep 02. 2024

무의미의 의미

글쓰기에 대한 지극히 평범한 의견 하나

갑작스레 골절상을 당해 한달여를 입원했다가 간신히 퇴원했다. 오로지 나의 부주의로 인해 넘어졌을 뿐이어서 다른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데, 정강이뼈가 완전히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억울할 수도 없는 신세가 한탄스러운 것도 잠시. 다리를 다쳤을 뿐인데 온몸은 물론 마음에까지 무리가 간다는 생각, 그러니까 나라는 개체도  여러 부분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유기체'가 정말 맞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기묘했다.


라고 쓰고,


다친 일에서까지 의미를 찾으려는 내 시도가 조금은 가엾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쳐 쓴다.




오랜 벗과 나의 공통점 중 하나는 무슨 일에서건 의미를 찾으려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공부할 때는 물론이고 영화나 책을 볼 때, 심지어 멍때리며 쉬어야 할 때에도 그것의 의미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조금 놀랐지만 그보다 많이 서글펐다. 의미 없는 시간과 공간, 사건과 사람은 우리에게 결코 가치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일까?


의미 있는 공간에서 중요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귀중한 사건들로 나를 채워야 한다는 자기계발 강박이 현대인들에게 심어져있는 건, 그렇게 의미들로 무장해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더욱 많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견고하게 짜여진 현대 자본주의의 강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한동안 맑스를 읽으려고 했던 것인데... 예정에 없던 부상으로 나의 "무의미한 지적 여정"은 기어이 중단되고야 말았으니, 오호 통재라.




자본주의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만큼, 나의 의미는 물론이고 무의미까지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지를 한동안 고민해왔다. -비록 무의미를 '가치'의 영역으로 들여오는 것은 여전히 탐탁지 않지만, 무의미에게도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무의미의 무의미함을 진정으로 수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 이 탐탁찮음은 내려놓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다름아닌, 글쓰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여기서의 글쓰기는, 지극히 나의 경험만을 늘어놓는 일기만을 뜻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나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이렇게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놓으면, 이제 어떤 글을 쓰려고 그래?"라는 반려자의 반문으로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쯤에서 밝히자면 나의 -혼자만의- 첫 책 <우연히도 필연적으로 행복해지다>는 이제껏 나의 일생을 잘 축약한 "조아라 36세 인생 요약집"으로서는 제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책의 글들이 혼자만의 일기장이 아닌 출판된 책 속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그순간부터, 그 글은 더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됨을, 벗과의 대화에서 느끼게 되었다. 분명 내가 생각해서 내가 낳은 내 글이었으나, 그 글은 자신이 가닿은 벗의 심성과 사유와 맞물려 새로운 의미가 되어 내게 돌아온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혜연씨에게 가서 제 글이 더 자란 것 같아요"라는 내 말은 진심이었다.


해서 이제는 예전처럼 섣불리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무의미의 무료함을 풀어놓을 곳이 흰 종이 위 뿐이라 마음껏 휘갈겼던 그 무상함이 누군가에게 가서 어마어마한 가치가 되어 반짝거리는 것을 목도한 이후로, 제아무리 사소하고 비루할지라도 내 글쓰기는 반쯤은 공익적이거나, 혹은 새로운 의미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혼자만의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무의미가 더욱 소중해진다. 내 하찮은 무의미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닿을 누군가가 그 무의미를 의미롭게 만들어줄 것이란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전보다 더욱, 길가의 들꽃 같이 흔하고 뻔한 무의미에 귀기울이고, 주의를 집중하려고 한다. 자본주의적 의미만이 기승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런 무의미의 의미들로 가득찬 세상은 적어도,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 자본주의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나의 공부는 서투르고 사유는 얕아서 이 이상의 의미를 얹는 건 힘이 든다. 그럼에도 하나는 안다. 계량되거나 평가되지 않는,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아름답고 쓸모없"는 것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건 바꿔나가줄 것이라는 점을.

작가의 이전글 힘을 빼지 못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