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현명한 사람은 삶의 무게를 분산한다
독서와 생각1
와이프가 추천해준 책을 읽었다.
이런 제목을 가진 종류의 자기위로서? 같은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딱 1페이지를 읽었더니 완전 책의 매력에 빠져들어서 쭉쭉 읽어나갔다. 글이라는 게 진심이 담기면 너무 좋다. 글보다는 말, 말 보다는 진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글은 진심에 필적한다.
오늘도 역시 밑줄 쳐진 부분만 옮겨, 간단한 코멘트를 남긴다.
1. 이번 주가 그저 지난주와 같기만을 기대한다면 도전에 대한 회피이자 지나친 안주다.
인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것. 사람이라면 응당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지금의 이 인생이 안락하게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그렇게 살면 결국 썩게 된다. 니체적 모먼트. 동양철학을 베이스로 한 책임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옳은 생각은 궤를 같이 한다.
2. 논리에 설복당한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쉽게 움직이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해되지 않는 감동을 받은 사람은 눈물을 흘리더라도 눈물에 담긴 뜻을 알지 못한다.
이해되지 않는 그림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노래 앞에서, 눈물이 핑하고 돌 때가 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뭔가 설명이 필요하다. 결국에는 논리와 감동이 함꼐 있어야만 진심으로 동조할 수 있다는 그런 구절이었다.
3. 어찌 보면 현대인들에게 일주일이란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신나게 놀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책은 월화수목금토일 일주일을 소주제로 하여, 각 요일에 대한 마음의 변화에 대응하는 조언과 같은 말들로 글을 풀어나간다. 일주일의 흐름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라 생각했다.
4. 불금만을 기다리며 일로 평일을 불태우는 사람과 매일을 놀 듯이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 둘 중 어느 쪽의 삶이 더 효율적일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 매일이 즐겁다면, 매일의 삶에 중용을 찾을 수 있다면, 효율을 떠나 인생 중 행복한시간이 늘어나는 꼴이다. 월화수목금이 힘들고 토일만 행복하다면 인생의 5/7을 날리는 셈 아닌가
5. 하지만 왜 태어났고 왜 죽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왜 살며 왜 죽는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기
6. 정해진 정답을 찾아 방황하는 삶에는 비교와 경쟁만이 난무할 뿐이다. 결국 힘센 사람의 말과 행동이 정답 행세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나의 주장을 관철하려면 남의 답안을 깔아뭉개는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직장을 가지기 전까지, 딱 정해진 정답이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그래서 지금, 직장까지 가진 입장에서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당황스럽다. 그전에는 이게 정답이고 이게 해설이니, 거기에 맞추면 됐는데 이제는 정답이 없다. 승진과 명예, 금전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어디에 방점을 두고 어디에 비중을 맞춰야하는지 내가 결정해야한다. 내가 뭘 공부하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도 내가 정해야 한다. 이젠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다. 아직도 누군가가 정해주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노예의 삶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7. 세상에 달라지지 않는 절대적인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결국 달라져 변화하게 된다는 사실'뿐
그렇다. 절대적인 건 변한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북극성마냥 세상의 기준을 하나 삼고 살아가는 것도 나쁜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북극성도 내 의지와 달리, 타인의 의지 또는 사회의 의지로 인해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알아야 한다.
8.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믿고 나날이 같은 모습에만 머물며 불변하는 수건은 어느 순간 부식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것이다. 장자는 이런 변화가 추함의 대상이라고 하였다.
변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썩는다. 관계도, 돈도, 배움도 마찬가지다.
9. 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고 말로는 뜻을 다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뜻을 아랄아차리는 데 집중할 뿐, 자신의 뜻이 상대방에게 글이나 말로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글이나 말로 오롯이 전달하고자 헛되이 힘쓸 뿐, 상대방의 뜻을 알고자 하지는 않는다.
나의 오류. 대화할 때 진심을 알아채려고 노력하기. 진심을 서로 알 수 있다면 말과 글에서 오는 오해는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해 못하는 인간이 있다면, 가까이 할 이유가 없다.
10. 세상의 모든 병은 현명한 사람을 시샘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는 것에서 나온다. 세상의 모든 약은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고 선한 일을 즐기는 것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을 시샘하고 능력 있는사람을 질투함은 만병의 근원이며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고 선한일을 즐김은 세상에 제일가는 약이라 한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배우고, 능력있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 그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욕심내다가는 병만 생긴다.
11. 반드시 그래야 한다거나 반드시 그러지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면 점점 더 헤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흐르는대로, 편견없이, 열려있는 태도로, 다만 줏대있게
12. 현명한 사람은 삶의 무게를 분산한다. 이들은 내가 없으면 남도 없고 남이 없으면 나도 없음을 알기에 여유가 있을 땐 남을 돌아보고 여유가 없을 땐 도움을 요청한다.하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매몰된 사람은 온 세상의 짐을 혼자 떠맡으려 한다. 그러다 외로움과 과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잃어버린다.
내가 있기 위해서는 남이 있어야 한다. 나만의 세계가 있는 이유는 내 것이 아닌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존중하자. 그리고 나는 모든 걸 해낼 수 없는 인간이다. 겸손하자.
13.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분수에 맞는 높이를 설정하여 나를 보전한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닿지 못할 높이로 나를 쏘아 올리기를 반복한다.
나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것 또한 현명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전에는 포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다 각자가 쓰임이 다르기 때문일 뿐이다.
14. 사실 세상엔 별의별 이상한 사람이 많은게 아니라 별의별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일 뿐임을
민원을 상대할 때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 별의별 말이 많고, 의견이 많은데 특히 공공의 영역으로 민원을 넣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본인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경우가 많다. 그 얘기를 찬찬히 듣고 있다보면 알아서 누그러질 때가 많다. 해결은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이라도 내비치는 것. 보통은 본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5. 말을 아끼되 실천에 힘쓰는 일
말을 줄이고, 몸을 움직인다. 내게 필요하다.
16. 상호 신뢰는 때때로 도저히 안 될 것만 같은 일을 성사시킨다. 믿음 없이는 아주 작은 일조차 실현될 수 없다. 먼저 스스로를 믿고 나를 믿듯이 남을 믿어 주는 일. 남에게 받은 믿음으로 다시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는 일. 어쩌면 우리의 예민함은 세상을 향한 신뢰를 재정비하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바보처럼 서로를 믿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믿음이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서로를 믿는 세상은 다시 올 수 있을까? 내 옆의 사람도 못 믿는 사람이 태반인 사회에서, 남을 있는 그대로 믿어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상대의 마음을 곡해하지 않고 일단은 있는 그대로 봐준다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과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명확해 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의견을 나눌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17. 나이가 많으면서도 일의 경위와 본말을 뒤에 올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선배가 아니다. 사람으로서 선배가 될 수 없다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못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못한다면 그런 사람을 낡아빠진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야 한다. 앞으로 60년 방향점.
18. 이처럼 언제든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진다.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세상은 저절로 질서를 찾게 된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과, 쉽게 변한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기준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변해서는 안된다. 그럼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답하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각자 믿는 게 다르면 또 같이 이해할 여지가 부족해보이고, 그렇다고 같은 것을 믿는다면 이 세상은 무미건조할 것 같은데, 그 중간이 어디일까?
19. 우리가 진정해야할 일은 좋고 나쁘다면 끊임없이 사람들을 규정하는 대신 누가 됐든 그의 좋은 점은 골라서 따르고 좋지못한점은 고치는 것 아니겠느냐고, 먼저나의 생각과 행실을 살펴서 그의 좋은 점이 내게 없다면 좇아 배우고, 그의 미운 점이 내게도 있다면 어떻게든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일.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되는 길은 여기에 달려 있다.
머릿속에 항상 맴도는 격언 같은 게 있다. "남이 이래이래해서 싫다면, 그 모습이 내게도 있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20. 많은 분쟁을 잘 해결하는 것이 분쟁이 적은 것만 못하고 분쟁이 적도록 하는 것이 다툼이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게 공자가 내린 결론이었다.
일이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게 좋은 관리이다. 위기 상황을 잘 이겨내는 관리는 그 다음이다. 위기 속의 영웅보다는 평안함 속의 영웅이 더 접대받는 세상이 오길
21. 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굳세고 강한 것도 물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이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점차 내 것으로 만들고, 점차 내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어 나가는 전략 혹은 꾸준함이 있다면 무엇인들 이길 수 없는 것이 없다.
22. 장자가 이야기하는 참된 앎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름을 추구하려는 태도에 있다. 장자는 앎보다는 모름을, 정답보다는 해답을 찾는 삶이야말로 진짜 앎으로 나아가는 삶임을 역설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한다.
23. 자신과 다투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스스로에 대한 믿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을 을 발판으로 남을 믿을 수 있고, 나와 남을 믿는 사람의 세상은'믿을 만한 곳'이 된다. 그런데 남과 나를 비교하는 사람은 점차로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믿지 못하면 남도 믿을 수 없으므로 이들이 사는 세상은 '믿을 놈 하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믿을 만한 세상에 사는 사람은 태연하지만 믿을 놈하나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은 교만해진다.
나에 대한 자신이 있다면 관대해 질 수 있고, 굳이 나를 뽐내려 하지 않는다. 나도 새로운 부서에 와서 했던 행동이 나를 증명하려는 행동은 없었는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결국 그 자리에 돌부처 같이 서서 버텨낸다면 기회는 내것인데,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것이다.
24. 우물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대문이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에게 진리에 대하여 얘기해도 알지못하는 것은 자신만의 옳다는 생각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25. 소인은 영예를 얻고자 애쓴다. 그러다 작은 영예라도 얻게 되면 더 큰 영예를 얻고자 더욱 힘을 기울인다. 또 소인은 비난을 피하고자 애쓴다. 그러자 작은 비난이라도 받게 되면 풀이 죽은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결국 소인은 점점 더 영예와 치욕에 좇기는 삶을살게 될 뿐이다.
나에 대한 반성
26. 예절이 지극한 사람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주인공이 바뀔 수 있음을 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 모두가 주인공임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차로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진다. 각자의 삶에서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의리가 지극한 사람은 내 일이 남의 일이 될 수도, 남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래서 나와 그 사건을 분리하지 않는다.
맞다. 모든 상황에서 내가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싶을텐데 내가 그 기회를 앗아가서도 안되고, 그럴 이유도 없다.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 예절일 수 있다.
27. 하루쯤 나의 삶에 지나친 예절과 과장된 의리가 없었는지 도아볼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의리를 싫어한다. 정작 의리를 입에 달고 사는 인간들 중 그걸 진심으로 지키는 인간은 본 적 없다. 본인의 이익이 먼저인게 사람의 당연한 생리인데, 그걸 의리라는 것으로 포장하려 하는 사람들이 싫다. 그렇다고 나만의 이익을 좇는 것이 옳으냐? 그건 아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것이라는 지극한 생각이 진심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8. 나의 길에는 확신을 남의 길에는 존중을
투자철학으로 삼아도 좋을 말이다.
29. 세상이라는 여관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
와이프가 밑줄친 부분이다. 삶에 여한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깨끗하게 쓰고 꺠끗하게 돌려주겠다는 뜻인가
30. 명이란 세상엔 사람의 힘만으로 어찌해볼수 없는 일도 있음을 알고, 분수껏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 쓰이지 않는다고 해서 쓰이지 않을 것은 아니다. 어디든 쓰임은 있다. 지금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조바심 낼 이유는 전혀 없다. 다 때가 있고, 장소가 있는 법. 준비를 잘 해두면 되는 것이다.
31. 대자연은 우리에게 형체를 지니게 하여 삶을 주어 우리를 수고롭게하고 늙게 하여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죽게 하여 우리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편안히 여기며 잘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이다.
책이 이 글을 마지막으로 갑자기 끝나버렸다. 갑자기 목숨이 뚝 끊긴 느낌이었지만 그것대로 좋았다. 오히려 결어가 없는 것이 인생같다고나 할까. 인생도 끝나는 순간 모든걸 다 정리하고 깔끔히하고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평소에 깔끔하게 정돈된 인생,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
한번 읽으면 계속 손이 가는 글 맛이었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슴슴한 배추국처럼 목넘김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