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4개월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하루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베트남과 작별할 마지막 날을 상상해보곤 했다.
하노이발, 인천행 항공기에 몸을 싣고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하면 멀어져 가는 하노이의 밤 풍경을 내려다보며 담담한 마음으로 베트남과 작별하는 모습을...
여느 해보다 유독 무더웠던 하노이의 여름!
40도를 오르내리던 날들, 내리쬐는 햇살과 땅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양산을 쓰고도 도저히 걷기 힘들어, 도로를 하나 건너는 아주 가까운 거리조차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 그런 날들이 많았다.
내가 하노이에 처음 왔던 2016년 여름도 무척 더웠는데, 2020년 올여름 또한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엄청난 더위라고 한다. 그러나 그 지독한 무더위도 7월이 되자 기세가 조금은 꺾인 듯했다. 한국 가면 왠지 힘들어하던 하노이의 이 무더위조차 그리울 것 같았다. 떠나려고 하니 사소한 하나하나도 특별하고 의미부여가 되는 모양이다.
드디어 출발 D-1,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날 밤은 남편, 딸, 나, 우리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것이었다. 남편은 직장 동료들과, 딸은 학교 친구들, 그리고 나는 친한 엄마들과 각자 송별 모임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마지막 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물들게 하리라... 그동안 소중한 인연을 맺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남편, 딸과 나는 아침부터 각자의 스케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평소 좋아하던 베트남 음식들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하루의 해가 저물어가던 오후 무렵엔 친구 2명과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휴대폰의 단톡 채팅방에는 오늘 마지막 송별모임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는 지인의 글이 올라오고 있어 마침 답글을 달고 있던 때, 남편으로부터의 전화가 카톡 대화창을 가로막고 나타났다.
최근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떠나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다 보니 물어보고 확인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이 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왠지 쫓기는 기분이 들면서 고요하던 내 마음에도 파문이 일곤 하였다.
그렇다! 한 달 전, 내가 브런치 글을 읽으며 가장 행복해하던 순간도 남편의 전화 한 통으로 와장창 무너져 내렸었다. 예정보다 한 달 정도 빨리 떠나게 되었으니 그렇게 알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던 그 전화!
그 이후부터였나 보다. 남편 이름이 전화기 화면에 뜰 때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게 된 것이.
한 달 동안 귀국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제 내일 출발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오늘 저녁 남편도 마지막 회식이 있다고 했으니 늦는다는 얘기겠지...' 하며 미소를 머금고 전화를 받았다.
어... 하며 말 꺼내기를 좀 주저하더니 내일 밤 우리가 타고 갈 아시아나 비행기가 취소되었는 소식을 먼저 전했다.
"내일 밤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지금? 이 시점에??"
내가 놀라서 남편의 말을 되풀이하는 걸 듣고 앞에 앉아있던 두 명의 친구들도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남편 말에 의하면 모레는 한국행 항공편이 아예 없고, 일요일도 취소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베트남에서 외국으로 나가면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한국을 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형편이었다. 우리처럼 완전히 베트남을 떠나 한국으로 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승객 부족으로 예정되어 있던 항공편의 취소가 잦다고 했다.
우리도 이미 초기에 예매했던 낮 출발 비행기가 2주 전 취소되어 3일 밤 비행기로 한차례 변경한 터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날씨 영향도 아니고, 승객 부족으로 하루 전에 운항이 취소되어 언제 확실히 뜰지 모르는 상황이라니!
남편은 다른 항공편을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겠다더니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전화를 했다.
"어제 베트남항공편이 한 차례 취소되어 오늘 밤엔 뜰 것 같다는데? 일단 오늘 밤 비행기로 변경하고 빨리 공항으로 가야겠어. 만약 또 취소되면 다시 돌아올 생각하고"
내일 밤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말보다 오늘 밤 당장 떠나야 한다는 말이 내겐 더 황당했다.
이미 저녁이 다 되었는데, 딸 친구, 내 친구들은 우리를 보낼 마지막 환송의 밤을 준비 중인데... 지금 바로 집으로 가서 한국 돌아갈 짐을 빨리 챙기라니!!
베트남을 떠날 시간이 두 달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한 달로 당겨지더니, 이제 내일 떠난다며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려던 차에 또 갑자기 지금 당장 떠나란다...!!!
한국으로 부치는 컨테이너 이삿짐은 이미 이틀 전 싸서 보냈다. 하노이에서 며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2주 격리하는 동안 필요한 짐들만 남겨둔 터라 사실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냉장고 음식 정리, 정수기를 비롯한 이웃에 주고 가기로 한 물품들 전달, 그리고 레지던스 옵션 물품 체크 작업 등 내일 오전으로 미뤄두었던 일들은 어찌할꼬.
일단 집으로 급히 돌아온 나는 마치 채권자들에 쫓겨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정신없이 짐을 챙겨 도망가는 빚쟁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떠오르는 대로 이것 챙겼다가 저것 정리하고, 급한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친구들과 마지막 저녁 약속을 잡고 들떠 있던 아이의 놀라고 당황하는 표정이란!
그러나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차분하게 설명해줄 마음의 여유가 내게 없었다. 오늘 밤 비행기를 놓치면 며칠 뒤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한국에서 계획되어 있던 모든 일정이 뒤틀려 버릴 테니 그건 더 큰 문제였다.
결국 내일 해야 할 일들은 남편 회사 직원이 모두 알아서 처리해주기로 하고 우리 짐만 대충 챙겨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처럼 헐레벌떡 공항 가는 차에 올라타야 했다.
그렇게 우리가 요란법석 떠날 채비를 하는 사이, 그날 밤 환송 파티를 생각하던 남편 직장 동료들, 딸의 친구들 그리고 나의 베트남 벗들이 우리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단지 하루 앞당겨졌을 뿐인 이별인데 우리가 떠날 것을 오늘 안 사람들처럼 그들은 그렇게 안타까워하며 작별을 슬퍼해주었다. 놀란 얼굴로 들어오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했다. 엄마들은 그래도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데 사춘기 소녀들의 작별은 정말 요란하고 별스러웠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도 별로 없이 조용히 학교만 오가던 둘째 아이였다. 하노이에 처음 와서 안 되는 영어 공부하고 국제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하노이의 생활이 너무나 행복했음을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다 같이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고, 나의 벗들에게도 눈물이 북받쳐올라 고맙다는 그 한마디 외에는 더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직장동료들은 차를 나눠 타고 공항까지 가서 수속 밟는 것을 도와주고, 출국장을 들어갈 때까지 함께 해주었다. 나로서는 남편이 그렇게 많은 직장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쉽지 않은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직장동료라기보다 전투를 함께 치른 전우들을 보는 것 같았다. 낯선 타국에서 함께 고생한 동료들이다 보니 전우애만큼이나 강한 유대감이 생기나 보다.
그동안 남편이 짊어졌을 부담감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남편이 베트남에서 쏟은 열정과 땀을 잘 알기에 출국장 앞에서 동료들을 향해 마지막 절을 할 때 마음이 벅차오르고 뭉클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딸아~ 아빠를 자랑스러워 하렴!!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발 게이트 앞에 앉아 정신없었던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돌아보았다.
'난 널 떠나기가 이리 아쉬운데 넌 날 꼭 이런 식으로 보내고 싶었던 거니??'
이제 베트남을 떠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풀리면서 어딘가를 향해 귀여운 투정이라도 부리고픈 마음이 생겼다.
난 정말이지,
이렇게 도망치듯 베트남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 이렇듯 강렬한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을 어찌 잊을까...
브런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이
2020년 7월 3일 23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이 순간,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의 활주로를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었을 텐데...
그러나 현실의 나는 한국에서 격리 1일 차 밤을 보내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으로 베트남과 작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