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선약수 May 24. 2020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셨더라면  그나마 좋았겠다...

노무현 대통령님, 아빠, 그리고 담배

오늘은 고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11주기.


봉하마을에서는 코로나 19로 작은 추도식이 열렸다고 한다.

그분이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

대통령을 아프게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그 꿈이 실현되도록 노력을 하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2009년 5월 23일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담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토요일도 등교해서 오후까지 보충수업 및 자습을 하던 시절이다.

평소라면 학교로 출근했을 텐데, 그날은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기로 예약한 날이어서, 일찍 병원에 갔다가 출근할 계획이었다.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검사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데, TV 화면에 큰 글씨로 속보가 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위내시경 검사를 위한 호수가 입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저절로 침을 흘리고 눈물, 콧물도 흐르기 마련이다(마취가 싫어서 수면마취 없이 검사를 했다). 나는 뉴스를 접한 충격과 슬픔으로 눈코 입에서 분비되는 모든 액체들이 뒤섞여 엉망인 채로 헛구역질하듯 계속 기침을 해댔다. 검사하던 의사는 영문도 모르고 무척 곤혹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날은 그렇게 뒤죽박죽, 어이없는 순간과 함께 기억된다.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걸까...      


시민들의 끝없는 조문 행렬이 봉화마을로 이어질 때, 나도 학교 선생님 한 분과 그 행렬에 합류했었다.

긴 시간을 기다려 분향소의 영정 앞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놓았다. 그런데 그곳엔 국화꽃만 쌓인 것이 아니었다. 한편에 담배도 놓여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기 직전 담배를 찾았으나 피우지 못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유시민 전 장관이

“대통령이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셨더라면 그나마 좋았겠다”며 분향소에 담배를 올려놓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 담배...      


담배 한 대 피셨다고 운명을 달리 하진 않으셨겠지만, 회한 가득했을 그 외로운 마지막 순간에 작은 위로가 될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남은 자의 안타까움일 터이다.   

   


오래전에도 나는 비슷한 경험과 안타까움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큰집이 있던 경남 고성에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가셨다가, 한밤 중 마을 어귀의 횡단보도를 건너시다 과속으로 달리던 트럭에 치여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시골에 가려고 엄마와 집을 나서시던 아버지를 그날따라 현관 밖까지 나가 배웅했다.

담석증으로 개복수술을 하시고(복강경 수술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당시 개복수술을 하셨다), 집에서 쉬시다가 오랜만에 하는 바깥 외출이었기 때문이다.


2층 베란다에서 계단을 내려가시는 아버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대문을 나가시기 전 다시 계단으로 올라오셨다.

“아빠, 뭐 잊어버리신 거 있어요?”


아버지는 TV 위에 담배를 두고 그냥 나왔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수술 이후 좋아하시던 담배, 술을 절제하셔야 했다. 술은 안 먹어도 참겠는데 담배는 정말 참기 힘들다시며 조금씩 피우기를 시도하시던 즈음이었다.


아빠의 건강이 걱정되어 담배 피울 때마다 잔소리하곤 하던 딸의 눈치가 보였던지, 담배를 가지러 2층까지 올라오셨다가,

“그래.. 안 가져가는 게 낫겠지?”

멋쩍은 미소를 지으시며 다시 돌아 내려가셨다.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계단을 내려가시던 그 뒷모습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안방 TV 위에 놓인 담배와 라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져가시게 건네 드릴 것을... ’  

   

돌아가시던 날, 큰집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 늦은 밤에 길을 나섰다가 당한 사고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담배를 만류했던 나 자신이 더욱 원망스럽고 후회되었다.


‘만약 아빠가 담배를 가져가셨더라면 화나고 답답한 상황에서 담배 한 대 입에 물고 마음을 좀 진정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사고 트럭과 마주치는 그 시각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설령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아빠가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셨더라면 그나마 좋았겠다...’


나 또한 딱 그 마음이었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 11주기를 맞아 노무현재단에서 노 대통령의 마지막 육성이 담긴, 참모들과의 회의 마지막 부분 녹음을 공개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담배 하나 주게. 담배 한 개 주게.”     

지상에 기록된, 그래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지막 육성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기억하는 대통령의 마지막 말씀 또한,

“담배 한 대 주시게”이었다고 한다.


서거 이틀 전, 평소와 달리 비서진 사무실에 직접 들어오셔서 담배 한 대를 부탁하셔서 드렸더니 바로 나가지 않으시고 머뭇머뭇하시다가 비서진들도 한 번 둘러보시고 나가셨다고 한다.


내가 대통령님의 그 모습을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것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고 맞는 11번째 5월,

올해는 ‘담배 한 대’로 그분께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9년 만에 받은 '남사친'의 e-mail  답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