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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스 Mar 08. 2023

멋있게 늙은 도시

 도시에 속도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서울은 과속 운전 중이다. 서울의 밤거리를 걷다가 고개를 들면 멈춰있는 것이 없다. 쌩하고 지나가는 자동차, 저 멀리 철교를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 시끌벅적한 술집, 그리고 늦은 저녁까지 불 켜진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장인들까지. 멈춰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심지어 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 오히려 서울은 밤이 더 바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나에게 정신없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개인적으로 서울의 안타까운 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색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건물의 나이가 현저히 적다. 아주 파릇파릇하고 창창한 친구라는 말씀. 그러나 서울의 건물들은 찬란히 빛날 젊은 나날들을 무색무취하게,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사각형의 밋밋한 콘크리트 건물이라 고유의 색깔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친구들에게 여유가 주어진다면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며 멋있게 늙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럴 여유는 없어 보인다.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금방 ‘리모델링’이라는 수술을 받고 심지어는 ‘철거’라는 이름의 사망선고를 받으니까. 모든 게 빠른 서울에서는 친절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나도 서울을 닮아버렸다. 어린 나이부터 주식을 시작하고 경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로는 돈을 벌 수 있는 각종 방법에 대해 찾아봤다. 친구들을 만나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한창 청춘을 즐길 나이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도 서울의 많은 건물들처럼 색깔 없는 주체가 됐다. 나도 사회에서 ‘리모델링’이나 ‘철거’를 당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도태되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서울처럼 빠름만을 추구하다 속세에 찌들어 나의 내면은 폭삭 늙어버렸다. 


 에든버러에 오니 서울의 모습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을 받았다. 에든버러의 풍경을 보고 소름이 돋았는데, 그 이유는 도시가 흡사 멈춰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차들이 끊임없이 빵빵거리고, 네온사인은 내 눈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에든버러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칼튼 힐’이라는 조그마한 언덕에 올라서 보니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칼튼 힐에서 바라본 에든버러의 풍경

 멀리 보이는 바다, 이름 모를 멋있는 언덕, 그리고 중세 시대쯤 만들었을 법한 웅장한 건물들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에든버러 시가지는 크게 올드 타운과 뉴타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뉴타운은 1767년부터 1850년까지 지어졌다고 한다. 신도시인데도 그렇게나 오래됐다니. 아마 몇 백 년 전 사람들도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봤을 거라 생각하니 반대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기분이었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면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분명 작은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모습이 매우 잘 간직되어 있다. 건물들은 모두 오래전에 지어졌으며 고층 빌딩은 있지도 않다. 길거리를 걸으면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 킬트를 입은 남자들이 백파이프 연주를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킬트를 입은 백파이프 연주가

 서울 한복판에서 한복 입으신 분이 가야금 연주를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21세기의 도시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는 게 놀라웠다. 전통과 개성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서울을 보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철이 들고 어른이 되면 어렸을 적의 개성은 사라지는 것 같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동화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개인은 점점 지워지는 셈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도시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현대 도시들은 마천루, 그리고 콘크리트 사각형 빌딩으로 범벅이 되어버려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 가게 간판에 쓰여 있는 문자의 차이를 제외하면 아시아의 많은 대도시들은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향했던 에든버러는 현대 도시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나이는 현대 도시들보다 많이 먹었다. 그럼에도 에든버러는 마음 한편 어딘가에 자신만의 진한 색을 잃지 않고 사는 듯했다. 자본주의에 휩쓸려 휘황찬란하고 고도화된 도시가 되지 않았어도 나는 누구보다도 멋지게 나이 든 에든버러가 더 좋았다.


 어디선가 에든버러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남들처럼 살지 않겠어. 나만의 개성을 가지고 살 거야!”

 개성이 넘치기에, 다른 도시들과는 차별화되었기에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이 머나먼 스코틀랜드까지 방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성이 넘치는 인생 선배 에든버러는 나에게 멋있게 늙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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