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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띠하고 책 읽는 엄마

2년전 그날도 책을 사랑했다

by 정희정

십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여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경험했다. 첫째 딸아이가 한살무렵 매서운 칼바람같은 한겨울 날씨에 발을 동동구르며 지하철에서 어린이집까지,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집까지 종종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그러던 딸아이가 지금 여덟살 초등학생이 되어 엄마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크나큰 웃음을 주는 보물이 되었다. 나의 딸들에게 엄마로서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읽는 습관이다.


빌게이츠가 말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마을 도서관이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나 역시 나의 딸들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인생의 고비고비를 만날때마다 책을 통해 혜안을 얻고, 지식보다는 지혜를 얻고, 채우기보다는 비움을 배우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엄마인 나는 너희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는다. 책은 마음의 소양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논문을 쓰기 위해, 내면의 성장을 위해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는다.


임신을 하게 되면 엄마들은 태교를 시작한다. 뱃속의 새로운 생명을 품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태교책을 집어든다. 엄마아빠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아기에게 전달하고, 사랑을 전한다. 하지만 막상 아기가 태어나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고 밤중 수유를 하다 보면 책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현실이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임신의 기쁨을 만끽하고, 사실 태교보다는 나의 내면의 성장을 위해 매일같이 집근처 작은 도서관을 방문했다. 책을 읽고 독서노트에 글을 남기고, 책을 빌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 출산하지 바로 전날까지 독서노트에 기록했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새벽에 이슬이 비추어 곧 분만을 짐작했던 나는 짐가방을 싸면서 책 두권도 함께 넣었다. 그 정도로 책을 늘 곁에 두고자 노력하고, 짬짬이 시간이 날때마다 한줄이라고 읽어내려갔다. 진통을 몸소 겪으며 자연분만을 하고 병실에서도 책을 들었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순간에도 태어난 딸아이와 첫째딸아이, 그리고 남편과의 미래를 꿈꾸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2박3일간의 병원생활을 하고, 퇴원하여 미리 예약해둔 산후조리원을 향했다. 아뿔싸. 그런데 원래 예정일보다 2주정도 먼저 출산을 하여 산후조리원에서 읽을 책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친정부모님도 첫째딸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구미에서 경기도 김포까지 올라오셨고, 첫째딸아이도 조리원에 왔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도 못했다. 창문을 통해 서로를 확인할 뿐.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과 감염위생을 위해 조리원은 엄격한 방문객(친정부모님이라 할지라도)은 면회가 금지된다. 산모의 잠깐의 외출도 하면 안된다.

결국그날 밤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애꿎은 TV채널만 이리저리 돌렸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결국 그다음날 남편과 상의후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내 마음껏 부모님과 아이를 볼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든든히 책장가득 꽂혀있는 책들이 내 마음의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몸조리를 위해서 조리원을 예약하였지만, 몸은 좀 힘들더라도 마음이 안정되는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날밤은 정말 오랜만의 (7년만의) 육아시작이라 정말 울기직전이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께서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주시고 할수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 힘든시기도 무사히 지나갔다.


생후40일경이 된 둘째 딸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서 책을 펴보았다. 책 속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을 걸어본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서운해할지도 모를 첫째를 생각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자기전 침대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다. 막막한 순간에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세가지는 감사하기, 웃는 것, 책 읽기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제일 잘 한 것이 있다면, 딸아이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준 일이다. 엄마 목소리를 듣고 책이야기를 듣고 잠이 든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 남편이 있다. 처음부터 육아가 쉽지 않았기에, 초보 엄마아빠이기에 갈등도 많았고, 육아로 인한 부부싸움도 잦았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육아관이나 상황이 다르기에 나의 남편 또한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이좋던 부부도 싸우게 되고 부딪히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나 역시 한창 아이가 말이 안통하고 고집이 생기던 무렵 남편과의 갈등이 많았었다. 그 사람을 바꾸려 애썻다. 내 육아관을 따르라고, 내 말이 옳다고 그에게 강요아닌 강요를 하곤 했다. 그 사람을 다그칠 수록 돌아오는건 매서운 눈빛과 부부싸움 뿐이었다.

그리고 막막하던 순간 나는 부부심리, 부부관련 책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자와 남자, 아내와 남편의 입장에서 조금씩 그 사람을 관찰하고, 내 의견을 지식하고 강요하기 보다는 그사람의 생각또한 존중하고 들어주기 시작했다. 말처럼 쉽지않았다. 육아와 집안일과 나 역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풀게 되었고, 그럴 때일수록 책을 통해 상황을 다시금 되새김질하고 나의 내면을 또한 살펴보게 되었다.


아이에게 책 읽어줘야 한다고 매일같이 강요하던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각자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남편은 둘째 딸아이에게 분유를 타서 먹여주고, 놀아주는 시간동안 나는 첫째 딸아이와 침대 머리맡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진다.


바깥활동 역시 싫어하는 남편이기에 배드민턴이나 산책 등등의 야외활동은 내가 담당하려고 한다. 대신 컴퓨터나 노래를 잘 알고 있는 남편이기에 딸아이에게 몸으로 놀아주는 일을 담당한다. 나는 최신 노래는 거의 모르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에게 요즘 노래좀 들어보라고 강요했다면 나 역시 싫었을 것이다. 이처럼 나 아닌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강요한다는 건 존중받지 못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엄마라는 위치는 가정의 중심이다. 엄마의 기분이 안좋다면 가정분위기도 좋지 않다. 가정의 중심이 엄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림자를 보고 자란다고 한다. 책 읽는 엄마 곁에 책 읽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당장에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TV가 재미있지만 꾸준히 책 읽고, 공부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는 책상옆에 같이 앉아 공부하지 않을까?

열 마디, 백 마디의 공부해라 라는 잔소리보다 몸소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책 읽는 모습을 한번 두번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 아닐 까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참 괜찮은 부모가 되고 싶다. 나의 딸들이 한살 한살 나이가 들어갈 때마다 지식보다는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엄마, 아빠와 함께라면 더욱 바랄 나위가 없겠지?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새롭고, 세상에는 참으로 책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에는 책에 큰 관심이 없었고, 만화책이나 연애소설에만 관심이 있었다. 근래에 들어 절박한 나의 상황에 맞물려 간절하게 책을 잡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책과 함께 나이들고 싶다. 2년전 36살 그 당시의 내가 소망하던 대로 나만의 책을 출간했다.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쓴 책으로 알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품위있고 멋쟁이 할머니가 되어 꼬마 손녀, 손자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은 바램이다.


나의 딸들이 살아가는 인생에 책이 버팀목이 되어 일희일비하지 않고, 깊은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그 전에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며 오늘도 책을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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