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나는 책을 내고 싶었다. 나의 책을 쓰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적긴 했다.(지금 다시보면 그글은 글이 아니었다. 끄적임, 끼적임이었다) 끼적거렸지만 생생한 그날의 일들이 생각난다. 그날의 느낌을 더듬어본다. 카페에서도 집에서도 글을 적기도 한다. 앞 뒤 따지고 재지 않고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혼자서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나의 말이, 글이 다독임이 될 수도 있고 일상의 흘러가는 이야기들이지만 조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란 시작에서였다. 그렇게 하나, 둘 나의 글을 쌓여갔다.
어느 날 카페에서 엄마와 통화를 했다. 바쁜 데 글까지 쓰기에 힘들지 않냐는 엄마의 말, 그리고 걱정.. 맏딸인 내가 경기도 김포에서 살면서 육아하고 일하느라 바쁜 걸 알기에 하는 말씀이었다. 책을 쓴다고 인생이 크게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글이 쓰고 싶었고 글이 마려웠다. 언젠가 한번은 내 책을 내는 것이 소원이었고 꿈이었다. 하지만 책을 쓴다고 무언가 획기적으로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내가 유명 방송인이 되거나 그런 일은 드물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건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욕망이자 꿈이지만, 책 하나로 그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엄마에게는 위로이자, 나의 꿈을 엮어 이야기 해 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싶다. 부모님 가까이서 살면 더 좋고 자주 만나뵐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자유로운 그런 일상의 생활을 꿈꾼다.
육아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혼자서 결정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내가 읊조리는 말이 있다. "쉽고, 편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장을 볼 때도 매일의 육아를 하는 동안에도 그 속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나만의 비법(?) 이 필요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쉽고 편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혼자서 결정해야 하고, 이럴 땐 어떻해야 하나? 망망대해에 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왜 아닐까? 나 혼자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도 결정할 일이 수두룩하고, 이 길 저 길 가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을. 거기다 엄마의 위치에서 아이의 안전과 일상을 책임을 지는 입장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어느 길이 아이의 입장에서 최선인지 고심하고 또 노력한다. 나 혼자의 생활이 아니기에, 가족의 안전과 안위가 나의 결정과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어떨 때는 강단있게 밀어붙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어느 경우는 살짝 간만 보듯이 여지를 두고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무뎌지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예민하다. 내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부분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 아이도 크고 나도 크는 것이겠지. 하영아, 이렇게 한 번 경험을 하고 나면 또 엄청 크겠다~ 했더니 엄마 나 더 크면 안되는데 한다. 자기는 키가 크다고 주위에서 자꾸 그런단다. 자기는 더 크는 건 싫다고 한다.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닌데. 아이는 또 한번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마음도 몸도 크게 성장할 거라 믿는다.
이제는 엄마의 결정보다는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을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의 일이 남은 것 같다. 아직 둘째는 손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첫째는 엄마의 지원과 말을 아끼되 묵묵히 지켜봐주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원을 다니는 것도, 스스로 공부계획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배려깊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엄마도 이런저런 일에 휘둘리고 매번 결정장애에, 매 순간이 시험의 연속이지만 이 또한 엄마통을 겪고 성장해가는 과정이리라 생각한다. 엄마통 한번 제대로 겪는다. 마흔을 앞 둔 요즘, 나의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조급히 하진 않을거다.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그러다보면 이 생각 저 생각도 하게 되고 또 어느 순간 또 글이 마려워지기 시작한다. 글이 쓰고 싶다. 지금도 그 순간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 글이 될 수 있고 쓰다보면 또 글이 좋아진다. 핸드폰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고 혼자 생각하며 끼적여두었던 내용을 본다. 딸아이가 그런다. 엄마, 나는 나와 대화하는 창이 없는데.. 카톡창을 보고 말한 것이다. 나와의 대화창에 나는 일적인 부분도 적어두고, 해야 할일, 생각나는 말들을 모조리 적어둔다. 그걸 보더니 자기는 자기와의 대화창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만들면 되지~" 생각은 벌떼같아서 이리 몰려다니다가 또 어느 순간 저리 몰려든다. 정신없는 일상 중에 내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 나와의 채팅이다.
마흔을 앞 둔 요즘, 나는 어떤 사람일지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일 지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다. 엘렌(Ellen) show를 본 이후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고 또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여성 코미디언이지만 당당히 엘렌쇼에서 사회자로 유머러스하고 신선한 진행을 하는 그 모습이 멋져보였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시원한 숏커트를 따라한다고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멀리서라도 동경하고 그리워하면 어느 순간 나 역시 닮아가지 않을 까 생각한다.
며칠 전 첫째 아이 발가락에 큰 상처가 생겨 노심초사 걱정한 나날이 있었다. 예민했던 내 모습을 기억해내며 친정 구미에 머물면서 며칠 간 떨어져있었다. 그 사이 나는 걱정을 덜었고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아이 역시도 매번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의 발을 보는 엄마와 잠시 거리를 두면서 안심했을 터였다. 내가 걱정을 하든 , 안 하든 새 살을 돋을 것이고 상처를 아물 것이었다. 딸과의 거리를 두니 스스로 조절하고 회복하는 시간도 되었다. 내가 너무 가까이서 조이고 간섭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너무 사소한 것에 애쓰지 않기를 다짐해본다.
엄마는 나를 낳았고 나는 그렇게 책을 낳았다. 일상의 모든 이야기를 글로 적어 스스로 치유하는 시간이었고 나의 잡생각을 글로 베푸는 시간이었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지쳐 있었다면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더욱 유머러스하고 재미나고 스윗하게 여물어가는 나이기를
글로 의미있는 책을 엮어 가치있는 인생을 지나가고 싶은 나이기를
여름이 떠나가라 우는 매미들처럼 그렇게 매일 하루를 열정을 바쳐 살아가고 성장하는 나이기를
나를 보며 한 뼘씩 크게 성장하는 딸과 함께 배우고 공부하는 나이기를.
혼자있는 시간을 외로워하기보다 고독하게 즐기며 하루 중 유일하게 나를 만나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즐기는 멋진 나이기를.
그런 나이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