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 바로 나다. 인문학은 커녕 짧은 소설책, 판타지류도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만 파묻혀있었고, 지겨운 국어시간에는 하품을 쩍쩍하며 울며겨자먹기로 지루한 수업시간을 견디어냈다. 싫어하는 음식도 자꾸 접해보고 조금씩 야금야금 먹어보는 습관이 필요한것처럼, 책을 읽는 습관도 그렇지 않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느 날 집근처 작은 도서관으로 갔다.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정말 이름이 작은도서관이다. 김포는 신도시로 계획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도서관이 너무 없었다. 멀어서 오래되었거나,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도보로 10분이면 갈수 있는 주민센터 위 2층 도서관에서 그 책을 만났다.
김병완 작가의 <마흔, 행복을 말하다>라는 책이다. 마술처럼, 나를 이끌었고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을 집어들었고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느낌이 물씬 난다. 어려운 책이 아니었다. 신선하고 좋았다. 정말 거의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끝까지 읽었다.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나에게 책은 원래 재미가 없는 것이었는데, 마흔이라는 제목에 이끌리고 내용에 이끌렸다. 책이 쉬울 수도 있구나. 나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준 책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실로 내가 진심으로 책을 고르기시작한 것이. 내 돈으로 책을 사기시작한 시점이. 내 아이에게 그림책을 매일같이 읽어주기 시작한 시점도 그 때였다.
엄마는 바빴다. 가족들 끼니를 생각하고 매일매일 사도 필요한 물건이 생긴다. 밥과 김과 계란만 있으면 되지만 아이들은 챙길때는 조금더 신선하고 좋은것을 먹이고 싶다. 엄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무언가 덜거덕거리듯 부족한 것만 같다. 그 자리를 책이 채우기 시작했다. 인문학과는 정말 아예 완전 거리가 멀었던 나인데, 도서관에서 엄마 인문학이라는 책을 집어들었다.
"아이는 내 등을 보고 자랍니다. 그래서 책 읽는 엄마가 세상을 바꿉니다."
인문학. 말 그대로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다. 사람과 삶이 어우러지는 이야기다. 역사, 철학, 문학, 예술, 정치, 경제 모든것을 아우르는 분야라고 이 책에서는 정의내렸다.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 사실 학창시절에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교과서 위주로 시, 문학, 소설을 접하다보니 전체 줄거리나 내용이 들어오지 않고, 생선을 토막낸것처럼 한토막씩 내용을 외우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재미가 없었다. 책이 왜 재밌는거야?의문이 들수밖에 없었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랬겠지만, 책과 너무나 친하지 않았던 나는 (연애소설은 친구의 추천으로 읽기시작했지만 그뿐) 국어시간을 접하면서 더더욱 문학이라는 동네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왜 문학이 재미있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데! 12~16년 동안 읽은 교과서가 얼마나 많은데!"
그랬다. 그건 독서가 아니었다. 대학진학을 위한 필수코스 과제였을 뿐. 교과서에 적힌 글을 암호해석하듯 해석하고 밑줄긋고 줄을 그었다. 왜 줄을 긋는지도 모르는채. 그런식의 책 암호하기는 나에게 책을 더욱 낯설고 어렵게 만들었다. 나의 독서습관은 좀체 늘어나지를 않았다. 책을 제대로 읽는 훈련을 해야 책을 고르고 읽는 안목을 넓히고 책을 대하는 태도를 넓힐 수 있다. 더불어 의식과 사고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느리지만, 나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사람과 사는 이야기에 다가가고 있다. 그것이 인문학이어도 좋고 에세이물이라도 좋다. 저절로 손이 다가가고 눈길이 머문다. 반짝이는 네온사인 아래에서 더욱 반짝이는 책을 바라본다. 내 곁에는 책고르느라 눈을 반짝이는 아이가 있다.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하고픈 건 모든 부모가 가지고 있는 마음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난다.
책과 친해지고 서점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주체적 인격을 기르는 훌륭한 교육이 된다.
함께 서점을 가보는 것, 그곳에서 맛나는 음식을 먹고 좋은 음악을 들어보는 것. 아이에게 귀를 열어주고 눈을 열어주는 것. 아이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내 곁에서 함께 책을 고르고 있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종알종알 나눈다. 어려서 책을 읽지않아서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게 설명해준다. 아이가 책읽는 내등을 보고 자랄 수 있게 내등을 내어주려고 한다. 나는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