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에게 두려움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책과 친하지 않았다. 책을 싫어했다. 아주 어릴 때는 그림책을 몇 권 본 기억이 있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그 이후 책과 점점 멀어졌다. 교과서에 진저리가 나서일까? 교과 공부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교과서는 책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혔다.
특히 교과서 중에 국어 교과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수능시험 만을 목표로 했으니, 줄을 치고 달달 외우고 그러고 나면 남는 건? 아.. 책은 재미가 없는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책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은근히 권해준 연애소설은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만화책도 오렌지 보이 등 그 시절 유행했던 만화책을 즐겨 읽었고 빌려보았다.
반면에 나의 여동생은 참 책을 좋아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 물어보니, 학창시점에 심심했다고 한다. 학교에 가도 친구들과 잘 노는 성향이 아니었던 동생은 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모르게 동생은 책과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 동생은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어렵고 난해해 보이는 책도 술술 읽는 경지에까지 다다랐다. 그런 동생을 나는 늘 부러워했던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자주 들렀다. 구미에 있는 도서관은 나에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공부방이었다. 오래 지어져서 낡고 오래된 특유의 냄새가 났던 도서관은 책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심어 주었던 것 같다. 새로 나온 따근따근한 재미있는 신간이 있는 게 아니라, 오래되서 특유의 냄새가 나는 책들이 둘러싸여져 있었기에 책이란 재미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버스를 타러 구미시내를 걸어나오는 길에 골목 서점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그 중에 큰 서점에 속해있었다. 서점 역시 지루하고 따분한 곳이었고, 가끔 친구를 기다릴 때 잠시 잠깐 들르는 곳이었다. 서점 보다는 친구들과 골목 시내를 다니며 먹었던 맛있는 떡볶이의 맛이 더 그립고 생각이 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렇게 나에게 책은 두려움이었다. 구미를 벗어나 대학교를 다니고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다시금 책을 읽어보고자 마음먹었다. 강동경희대병원에서 근무를 할 때 병원 내에 도서관이 조그맣게 위치했는데, 대부분 의학도서나 논문이 있었고 즐겨읽는 책 코너에도 책이 100여 권 정도 비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책이 좋다는 건 알기 때문에 '1년에 100권 읽기'라는 나름 장대한 목표를 세우고 목록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책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펼치자 마자 재미없는 책도 있기 마련이다. 술술 읽히고 넘어가는 책이 있는 반면에, 어떤 책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어려운 단어들과 난해한 용어들로 도배를 해 놓은 책들도 있었다. 그런 책이 걸리는 날에는 책이 더욱 재미가 없어지는 거였다. 어쨌든 시작은 했으니 책 100권 읽기는 성공을 했다. 그렇게 100권은 읽었는데, 남는 게 없었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목록에 적어놓은 리스트 밖에는..
경기도 김포로 이사를 오면서 첫아이를 키우고 동네 작은도서관으로 간 적이 있다. 작은 도서관에서 나는 책 한권을 만나게 된다. 여러가지 계기가 있었겠지만, 그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에 대해 생각이 조금씩 변해갔다. 책이 재미없고 두려운 것이었는데, 책이 재미도 있고 쉬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읽다보니 재미있고 그 책을 시작으로 자기계발, 부부, 아이육아과 관련된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책을 쓸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은연 중에 내 마음속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서 심한 입덧으로 직장을 관두면서 매일같이 작은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했다. 장바구니를 책바구니처럼 사용하고 책을 빌리러 가는 날에는 20권이 가까이 되는 책들을 빌려왔다.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눈길에 미끄러져 책바구니 바퀴가 튕겨져 나가던 날은 나를 더없이 슬픔에 잠기게 했다. 책을 빌리러 가는 날은 행복했고 재미있는 책을 만난 날에는 더없이 가슴이 뿌듯했다. 책을 읽기만 했던 나는 책의 좋은 구절들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이 문구를 이 말을 온전히 내 안에 새기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그날의 생각이나 일상이야기를 적기도 했고, 감명 깊은 구절이나 내가 꼭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을 적었다. 양이 너무 많은 날에는 그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내 안의 잠재의식 속에 사진으로 새겨질 것임을 알기에 도서관을 오며가며, 빌리고 빌려오며 벤치에 앉아,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절에도 한 컷 한 컷 찍어나가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지만 먹고 누워있고 모유를 짜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산후조리원에서 나는 책이 없어서 급기야 그냥 나왔다. 물론 첫아이가 생각이 나서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결정한 부분이지만, 예정일 보다 일찍 출산을 했기 때문에 준비해둔 책이 없었던 것이다! 산후조리원은 한 번 들어가면 감염의 위험때문에 나올 수도 없고 보고 싶은 첫아이도 볼 수가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일 큰 부분은 읽을 책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년 간 집에서 둘째 아이를 돌보면서도 집으로 배달해주는 도서관 책배달(생애 첫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매일 같이 책을 펼쳤다. 내 인생에서 온전히 책에만 빠져든 시기가 그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이를 보살피고 책을 보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유를 먹이고 갓난 아기였기에 바깥 외출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둘째 아이가 돌을 지나던 무렵, 책쓰기 과정수업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내 책쓰기에 매달렸다. 작년 11월 드디어 나의 첫 번째 책 <책 먹는 아이로 키우는 법>을 출간하였다.
평소 구미 친정에 가서 책을 보고 있으면 나의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공부하느냐고.. 책을 본다는 게 반드시 공부를 하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책은 주로 교과서였고 아주 귀한 것이었으니 공부로 연결할 수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요즘에는 자기계발서, 에세이 분야가 다채롭고 아주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다. 단지 바쁜 생활 속에 쉼표를 찍고자 책을 보기도 하고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서 책을 보기도 한다.
책을 사러 서점에 가도 시큰둥하고 책을 왜 힘들게 쓰냐고 했던 엄마가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구미) 오면 체험장 책방으로, 우리 꼬맹이들 추억쌓기로 가득 메워줄께~"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나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겠지? 책을 어렵게만 대했던 내가 바뀌었듯 나의 어머니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니, 나의 어머니의 마음도 움직인 것 같다. 책 한 권이 나왔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나는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고, 매일 같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책을 대하는 생각이 변하고 또 나의 주변 사람들이 책을 따듯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더없이 기분이 좋다.
쉬는 날 물으면 나의 딸아이는 늘 대답한다.
"하영아, 우리 어디 갈까?"
"서점 갈래요~"
지하철을 타고 서점을 가는 것이 즐겁고 서점에서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면 더욱 신나하는 아이. 그저께부터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한 책이 아직까지 오지 않아 많이 기다리는 아이. 엄마 언제와? 왜 안와? 매일 같이 현관문을 들락날락 열어보는 아이. 책을 그렇게 기다리는 아이. 그렇게 책은 나의 곁으로 왔다.
쉬운 책부터 보아도 되고 그림책도 좋다.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시간 동안 많이 웃고, 또 많이 울었다. 아이와 함께 말이다. 지금도 일을 하는 중간에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나는 서점에 간다. 김포에는 아직 대형 서점이 없다. 공간과 환경의 힘이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다는 걸 나는 몸소 느껴보았기에 안다. 그림책이 점점 많아지고 재미있고 쉬운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이 좋다.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자 목표이다. 그 가운데 나의 책들도 있을 것이고 나의 아이들이 쓴 책도 있을 것이다.
책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고, 몇 장만 읽어도 된다. 귀퉁이를 접어도 되고 죽죽 밑줄을 긋고 낙서를 해도 좋다. 나의 책도 많이 만져지고 글씨가 새겨지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어렵고 난해하게만 생각했던 나는 이제 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책을 두려워 했던 의식이 조금씩 변하면서 친근하게 친한 친구처럼 생각된다. 늘 곁에 두면 좋다. 화장실에도 두고 식탁 위에도 둔다. 침대에는 늘 나의 책 그리고 아이들의 책이 넘실댄다. 오늘도 나는 책을 보고 또 책을 쓴다. 책은 곧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