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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Nov 20. 2023

쥐뿔 아무것도 없던 내가 창업할 줄이야

흙수저인 맞벌이 워킹맘이 창업을 해내다

일단 연재하기로 한 소제목과 다르게 제목을 지었다. 차에서 갑자기 '소제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쥐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빚... 살고있던 임대아파트가 분양아파트로 전환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아주 많이 받아야 했다. 그 빚 속에 자동차도 포함되어 있었다. 매달 나가는 월 이자와 원금이 부담스러워 최대한의 대출을 받은 것이다. 나는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간호사 일을 했다. 신규간호사로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조각 경력들이 그 자리를 메꾸어갔다. 처음 호기롭게 '나 관뒀어' 라고 지금의 남편(당시 남자친구)에게 말했을 땐, 그렇게 짧게만 하고 나올 줄 몰랐다. 의료소송 간호사로 대학병원 간호사가 버티어내기엔 (특히 나처럼, 법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과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단순히 평일만 일하고 주말에만 쉬는 다른 직종을 기웃거리다가 처음 만난 의료소송간호사는 수습기간만 채우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 이후 임상시험기관, CRO(임상시험수탁기관)을 거쳐 경기도 김포로 이사오면서 아이를 키우며 종합병원, 개인병원, 소아전문병원, 방문간호사를 두루두루 거쳐나갔다. 최종적으로는 강화의 종합병원 수간호사로 일했으니, 어찌보면 간호사로서는 나름의 경력을 잘(?) 유지했다고 해야하나? 내가 수간호사로 일하면서 만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직급도 직급이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좋았고, 병원체계를 조금씩 따르거나 바꿔어가는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창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마음의 소리였다. 주어진 업무만을 해내는 나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도전하고 모임을 추진하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걸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도 김포 구래역 근처에서 영어모임을 추진하기도했고, 그림책모임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었으며, 병원외래에서 일하면서도 필요한 자료나 인쇄물을 뚝딱뚝딱 만들어내서 활용해보기도 했다. 나의 결과물을 누군가 칭찬해주면 괜히 뿌듯했고, 그래서인지 나만의 사업체를 만들고 꾸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2023년 1월 30일은 내 생일이다 (생일은 무조건 알려야한다고 했다. 라디오에서). 그 날을 기념으로 1월 30일에 사업자등록 신청을 미리 해두었다. 매장도 없고, 책방같은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홈텍스에서 사업자등록 신고를 했다. 그때부터 최고그림책방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앞으로도 차차 창업준비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할 테지만, 간략히 말하면 사업자등록을 시작으로 '책방창업'을 아주 천천히 테스트하듯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런것이다. 거래처를 미리 등록해둔다. 나에게 주기적으로 그림책을 보내주든 출판사를 통해 알게된 '웅진북센'이라는 거래처와 연락을 시도했다. 각 지역마다 담당자가 있었고 사업자등록증과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면 거래처로 등록이 되는 과정이었다. 수간호사로 일하면서 거래처를 처음 시작한것이다. 미리캔버스를 통해 평소에도 외래소아과에 필요한 자료들을 뚝닥뚝닥 만들어내던 나에게 '예비간판'은 일종의 테스트 같은 거였다. 첫째 아이가 아이패드로 슥슥 그려낸 그림이미지를 사용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바로 간판제작에 들어갔다. 미리캔버스는 관련서식이 아주 잘 구성되어 있어서 이미지만 첨부하면 간판으로 뚝닥 집으로 받아볼 수 있었다.


병원에서 짬짬이 점심시간마다 동료들과의 수다나 휴식대신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도 했고, 더블엔 출판사와 계약한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성교육> 원고를 집필하기도 했다. 근무시간과는 별개로 나는 점심시간을 마음껏 이용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라는 옷을 입고 간호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 나도 누군가 지시하거나 시키는 업무는 왠만하면 잘해내는 나름의 능력있는 간호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예를 들면 이런거다. 점심시간이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병원에서 의료인으로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는 어려웠다. 또 하나는 아이들과 떨어져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도 문제였다. 7시에 출근해서 이런저런 장볼거리를 서둘러 사들고오면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아이들은 집에서 돌보미선생님과 함께하거나 첫째아이는 늘 방에서 혼자였다. 그런 모습이 눈에들어올때마다 '나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직장인에 가까울까? 사업자에 가까울까? 를 고민하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내가 유일하게 할수있는 일을 해야만했고, 시작해야만 했다. 돈은 벌어야하고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위치라서 절박함과 간절함이 나의 행동력에 불을 붙였다. 결정적인 계기로 퇴사의사를 팀장님과 과장님에게 말하고, 7월말일로 병원일을 관두게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미계약해둔 상가 인테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사업자(자영업)에 어울릴까? 일반 직장인에 어울릴까? 를 고민해보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나처럼 무언가를 추진하거나 만들어내는데 관심이 있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나름의 깡다구도 있다면 사업자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반면,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내고 점심시간이 있고 정해진 월급을 받는것을 선호한다면 직장인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단 한자리에 붙어있질 못하는 성격이고, 어딘가를 싸돌아다녀야한다. 사람을 만나든 거리를 걷든 운전을 하든 바람을 느끼든, 행동하면서 활력과 에너지가 생기는걸 알았다. 사업자냐 직장인이냐 고민하기이전에, 내 사업을 해야만하는 절박함이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였다. 내가 아이들곁에 무조건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친정으로 내려가든 이곳에서 내 사업을 시작하든 모 아니면 도였다. 그당시의 상황은 나에게.


그래서 책방오픈을 준비하고 고비고비를 넘어가며 실행할 수 있었다. 사업을 한다는 건 아무리 조그만 매장이라도 인테리어, 간판, 계약, 인터넷 CCTV 설치, 포스기 설치, 하다못해 매장의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꾸리고 계획하는 일조차 모든 것이 나의 결정이고 선택이었다. 쥐뿔도 없었지만, 수간호사로 일반직장인으로 근무하는 동안 신용등급이 나름대로 잘 유지되어왔다면 사업을 시작하기에 초기 자금대출은 그래도 원만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퇴직금도 실업급여기간도 채우지못해 포기한상황이었지만) 오기와 신념하나로 버텨온것 같다. 직장인으로 일하고 내 사업을 시작하고 꾸리면서 알게된 사실 중에 하나는 사업은 모든걸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는 것이었다. 가족의 반대 지인의 반대와 우려 반대반대반대를 무릎씀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와 신념'이 확실하다면 그또한 밀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구래역에 책방을 낸 이유는 일단 구래역에 책방이 없어서였고, 아이들에게 책방과 재미있는 그림책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책이 어려운이들에게 책이 재미있고, 독서가 재미가 될수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읽어보고싶은 마음을 전하기위해서였다. 그래서 책방을 시작했고, 그메시지를 앞으로도 계속 전하려고 한다. 일이년 단타작으로 연것이 아니라 나의평생 의미있는 목표이자 가치있는 일임을 알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시작한것이다.


책방을 운영하는 시간외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의 삶의 우선순위는 가족, 그리고 책이다. 이때까지 삶에 끌려왔다면 이제는 삶을 끌고가는 내가 뿌듯하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지금껏 그래왔듯 쥐뿔도 없지만, 나의 신념과 메시지를 전한다는 나에대한 믿음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보려 한다. 최고그림책방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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