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수입 맥주 4캔에 1만 원을 좋아하는 편이다. 종종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곤 하는데 우리 동네가 학원이 많다 보니 학생들이 주 고객이다. 로또 하나, 과자 하나를 사려고 해도 많은 학생들과 한데 섞여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데 그들에게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때가 있다.
바로 맥주 4캔에 1만 원 계산할 때다. 가위 바위보를 하면서 서로에게 계산을 미루면서 폭행을 하거나, 엔빵이라고 분할 계산을 하면서 편의점 알바를 괴롭? 히는걸 보면 자신 있게 계산대에 맥주 4캔을 올려놓고 현금 1만 원 딱 줘버리고 돌아 나오는 그 모습이 학생들에게 자본주의 참맛을 보여주는 거 같아 뿌듯함이 있다.
그래도 날씨가 약간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얇은 반팔과 반바지를 거침없이 착용하는 그들을 보며 경량 패딩을 입고 있는 나의 몸뚱이에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지금이야 그들에게 자본주의 참맛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로 그들에게 우쭐댈지 몰라도, 20여 년 뒤 어느 유명 병원 수술실에서 내 몸뚱이에 매스를 들이대고 오장육부를 꼬매고 떼어내고 할 인재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의사 양반. 그때 20년 전에 맥주 4캔 현금 1 만원 내고 멋있게 돌아선 사람이 나야"라고 해봤자 간호사에게 진정제 투입하라는 지시가 떨어질 거로 예상된다.
이래서 어르신들이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나 보다.
언젠가 내 지인이 나한테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였냐고 묻던 적이 있었다. 뜬금없었지만 쉽사리 대답을 하기 어려워 "그럼 넌 언제가 좋냐?" 되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바로 지금"이라 대답했다.
지금 내 얼굴 보는 게 그리 좋냐? 했는데 당연히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 얼굴 보고 싶을 때 보고,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고, 사주고 싶은 거 마음껏 사줄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다고 그는 덧붙였다.
하긴 나도 마음만 먹으면 강남 아파트는 못 사더라도 유럽 1달 정도는 가뿐히 다녀올 수 있는 자금은 확보하고 있다. 부자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고개 숙일 정도는 아닌 편이다.
회사 다니기 그지 같네
입에 달고 살아도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그런 거 아니겠나 싶다. 좋든 싫든 그지 같든 간에 어차피 한 달 잘 버티면 매월 월급은 들어오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으니.
힘들 때마다 행복하다 라고 최면을 거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최면 걸어도 그다지 바뀌지는 않지만 스트레스를 좀 줄여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힘듬을 즐기자고도 생각은 한다. 언젠가는 이런 투정도 부리지 못할 날이 남지 않았고 스펙은 좋으나 기회가 여의치 않아 취직 못하고 있는 엘리트들이 사방에 포진되어 있다.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난 모르겠다. 그냥 지금처럼 1만 원짜리 한 장 쫄래쫄래 들고 편의점 가서 수입맥주 4캔 시원하게 집구석에서 흡입하는 게 요새 행복이라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