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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혜 May 28. 2023

알고리듬과 제너레티브 아트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ANF)의 미디어 아트

들어가며

  필자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술 체계의 핵심적, 본질적 특성을 창발성(emergence)과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로 파악하고,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활용하는 예술 작품에서 그 특성이 어떤 기제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는 예술로서 제너레티브 아트를 먼저 다룬 다음, 다양한 알고리듬을 활용하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독일의 예술가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Andreas Nicolas Fischer, 1982- )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알고리듬(algorithm)'은 산술·계산, 어떠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수학적으로 표현된 일련의 절차들의 형식적 과정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알고리듬 대신 해당 의미의 용어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알고리즘'은 사실상 아랍식 기수법, 셈법(algorism)을 의미하기 때문에 필자는 '알고리듬'으로 표기한다 (이재현, 『인공지능 기술 비평』, 파주: 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pp. 21-22 참조.).



1. 제너레티브 아트와 인공지능의 자기 생산 기제

  생성예술, 혹은 발생예술이라고 하는 '제너레티브 아트(Generative Art)'는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변화할 수 있는 예술을 말하며, 작품의 결과물보다는 생성하고 변화하는 프로세스를 강조한다. 이 용어는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파울 니거(Paul Neagu, 1938-2004)가 1972년의 '제너레티브 아트 형식들(Generative Art Forms)'이라는 강연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제너레티브 아트 그룹을 창시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제너레티브 아트란 한 형태를 회전시키거나 다른 형태를 생성하여 겹치는 등 복잡하게 변형함으로써 형태를 창조하는 기하학적 추상을 의미했다.


  필립 갈란터(Philip Galanter) 교수는 제너레티브 아트를 규칙이 정해진 시스템의 자율성에 따라 결과물이 완성되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의 시스템을 사용하는 예술로서 설명한 바 있다.  필자는 갈란터가 정의한 제너레티브 아트를 따르고 있으며, 그 전신은 1966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큐레이터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 1926-1990)가 정립한 '시스템 페인팅(Systemic Painting)'과 관련 있다. 이때의 시스템 아트는 케네스 놀란드(Kenneth Noland, 1924-2010)의 작품과 같은 추상미술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A) 케네스 놀란드, 〈Earthen Bound〉, 1960. / (B) 〈Turnsole〉, 1961. / (C) 〈Drought〉, 1962.


  시스템 아트는 제너레티브 아트의 전신으로서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을 포괄하며 '생성적' 예술을 설명해 왔다. 예컨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우연성 또는 무작위성의 이미지들도 드리핑 기법이 예술가의 의식적 통제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제너레티브 아트의 영역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갈란터는 컴퓨터 시스템이 출현하기 이전의 예술도 포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 하면서도 놀란드의 추상미술이나 폴록의 액션페인팅을 그가 정의하는 제너레티브 아트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이들 작품에는 자율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란터는 「제너레티브 아트란 무엇인가?(What Is Generative Art?)」(2003)에서 폴록의 액션페인팅에서 드러나는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자율적 시스템에 의한 우연성과 구분했다. 그에 의하면, 폴록의 우연성은 '무작위화(randomization)'로 설명된다. 무작위성이 예측 불가능한 특징을 갖기 때문에 제너레티브 아트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제너레티브 아트의 이미지 생성 원리를 통해 구별해 볼 필요가 있다. 시스템을 활용하는 예술인 제너레티브 아트는 '정해진 규칙적 시스템'의 자율성에 따르므로, 그 결과물에서 나타나는 표현은 사실 알고리듬의 자율적 규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여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우연히 창출된 것이라 보기 어렵고, 무작위처럼 보여도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다. 알고리듬의 이미지 생성 원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결과물이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알고리듬의 논리를 인간의 언어적 과정과는 다른 지위를 갖는 '비기표적 기호론(a-signifying semiotics)'으로 설명한다. 비기표적 기호론은 "정보 기호 기계를 촉발하고, 의미를 생성·전달하는 것과는 독립적으로 기능함으로써 인간의 언어적 공리체계를 벗어나는 기호학적 차원"이다. 이 기호체계의 정보 처리 과정이 비가시적인 것은 "인간의 의미작용을 우회하는" 그 자체의 기계적 특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갈란터가 제시한 '제너레티브 아트 시스템' 그래프를 보면 제너레티브 아트가 질서의 정도에 따라, 그리고 복잡성의 정도에 따라 나뉘어 있는데, 이 그래프에 따르면 우선적으로 제너레티브 아트 자체는 질서와 무질서, 단순성과 복잡성이 결합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필립 갈란터의 '제너레티브 아트 시스템' 그래프.


  인공 신경망과 같은 인공지능 알고리듬이 사용되면서 최근의 제너레티브 아트는 복잡성이 더 높아지고, 더 관찰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도 없다. 예술 작품을 프로그래밍된 논리로부터 발생시키고 시각적으로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만큼 복잡성을 더하는 제너레티브 아트의 방법론에서는 자율성을 가능하게 하는 창발성이 유기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깊은 관련이 있다.



2. 창발성과 자기 생산

  인공지능 기술 체계의 창발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커넥톰(connectome)과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간의 두뇌 신경망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인공 신경망이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을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커넥톰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전체 신경계 내에 존재하는 뉴런들이 시냅스로 연결된 연결 총체를 말한다. 커넥톰 개념의 등장 이후, 각 뉴런에 입력되는 정보를 모아 수행을 명령하기까지 두뇌라는 하나의 중앙처리장치를 통한다고 보는 일반적인 통념이 바뀌었으며, 사이버네틱스의 기초가 정립되던 초창기 메이시 컨퍼런스(Macy Conference)에서도 이미 인간의 두뇌에 어떤 특정한 정보를 저장하는 공간이나 중앙처리장치가 없다고 보는 주장이 주된 논제로서 제시되기도 했었다.


  커넥톰의 핵심은 단일한 중앙처리장치에 의해 정보처리와 기능수행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 전반에 형성되어 있는 신경 세포의 연결망 전체가 이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지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 1946-2001)는 상호적으로 연결된 모든 뉴런들이 협력하여 작동한다고 하며, 이것이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의 핵심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뉴런들의 연결망 총체인 커넥톰의 자기 조직화를 통해 생성과 소멸과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바렐라는 지속적으로 조직화하여 스스로를 생성하고 한계를 규정하는 단일체로서 '자기 생산적 기계(autopoietic machine)' 개념을 제시했다. 자기 생산(autopoiesis)은 바렐라가 살아있는 것의 자기 조직화를 설명하기 위해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 1928-2021)와 함께 개진했던 이론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앎의 나무(The Tree of Knowledge)』(1987)에 따르면, 조직으로 이루어진 자율적 개체인 생물은 조직화의 결과로 생성되는 산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그 산물 역시 자기 자신인 것이다. 


  "구성 요소들 그 자체와는 상관없는, 구성 요소의 상호관계들의 집합"을 말하는 바렐라의 '기계' 개념은, 생물학적 영역에 한정되어 있었던 반면, 가타리는 이 개념을 '기술적' 기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확대했다. 가타리의 기계론에서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행위 주체는 기계이고, 기계의 기능은 이질적인 것들과의 연결을 통해 규정된다. '기계적 아상블라주(machinic assemblage)'는 이를 설명하는 용어이며, 기계적 아상블라주로서 집합적 배치를 이루는 기계는 욕망에 따라 새로운 것을 창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창발성은 이전에 개별 구성 요소들의 층위에서 관찰되지 않았던 특징들이 전체 구조의 자기 조직화 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현상을 말한다. 바렐라는 0과 1이라는 두 가지 상태만 가지는 셀룰라 오토마타(cellular automata)의 단순한 연결 구조가 자기 조직화를 통해 예상치 못한 새로운 속성을 생성하였다는 것을 들어 창발성의 속성을 예측 불가능성으로 설명했다.


셀룰라 오토마타가 생성한 창발적 패턴


  창발로 인해 전체 구조는 이전보다 더 복잡해지지만, 이 구조가 구성 요소로 흩어지면 새롭게 출현했던 특징은 사라진다. 이는 새롭게 생성되는 속성이 개별 구성 요소들에 인과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점에서 창발적 자기 조직화가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도출한다 하더라도, 우발적인 현상은 아닌 것이다. 또한 연결망의 총체인 전체 구조는 개별 요소로 환원되지 않는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생물학 용어가 기계로 확장되는 이 같은 이론은 인간의 뇌, 특히 커넥톰의 작동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려 하는 인공 신경망의 관계와 맞닿아 있다. 커넥톰이 자기 생산적 기계라면, 인공 신경망이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형성하는 것들도 자기 조직화와 창발로 설명 가능하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역시 자기 생산적 기계로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인공 신경망을 포함한 알고리듬은 데이터를 학습, 경험하고 구조화하기 위한 (인간에 의한) 사전 프로그래밍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알고리듬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규칙과 논리를 스스로 생산하고 변화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자기 조직화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 알고리듬이 활용되는 최근의 제너레티브 아트는 특히 유동적인 구현이 가능해지면서 창발적 자기 조직화를 보이고 있다.



3.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의 작품 분석

  독일 뮌헨 출신의 작가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는 생성 시스템을 이용하여 데이터와 디지털 프로세스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기술과 기술의 자동화가 사회와 현대미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


  동시대의 미디어 아트 대다수가 컴퓨터 작업을 거치면서 정보화되고 있고, 일반적으로 컴퓨터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작품들을 컴퓨터 아트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제너레티브 아트를 컴퓨터 아트의 부분집합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피셔는 제너레티브 아트가 컴퓨터 아트보다 구체적이면서 동시에 더 포괄적인 범주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제너레티브 아트를 생성하는 자율적 시스템이라는 것은 컴퓨터가 될 수도 있지만, 예술가의 의도가 요구되는 부분들, 즉 작품의 특징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보다 넓은 범위의 비인간(non-human) 주체가 될 수도 있다.



1)〈GAN 초상화(GAN Portraits)〉(2020)

  피셔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이하 GAN)'이라고 하는 기계학습 알고리듬을 활용하여 일련의 초상화 작업인 〈GAN 초상화 GAN Protraits〉(2020)를 제작했다. 


  GAN은 2014년 신경정보처리시스템(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NIPS) 학회에서 구글 브레인(Google Brain) 연구팀의 이언 굿펠로(Ian Goodfellow, 1987- )가 제안한 새로운 신경망 모델로,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어떤 객체든지 현실과 유사한, 진짜 같은 가짜 이미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다. 이 모델은 기본적으로 수집된 훈련 데이터셋(dataset)에 없는 새로운 샘플(생성모델)을 만드는 생성 모델링(generative modeling)과 훈련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판별모델의 특징을 학습하여 예측하는 판별 모델링(discriminative modeling)이 발전된 알고리듬으로 구성되어 있다. 


  GAN의 기술적 원리는 간단히 말해 생성자(generator)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판별자(discriminator)가 구별해 내면 다시금 생성자가 판별자를 속이기 위해 더 진짜 같은 이미지를 생성하고, 판별자는 더 정확하게 식별해 내는 등 서로 대립하는 양자가 훈련과 학습을 반복적으로 순환함으로써 점점 더 정교하고 구별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의 기본 모델


  GAN은 기계학습 중에서도 출력되는 정보를 미리 프로그래밍할 필요 없이 입력만으로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파악하는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비지도 학습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법 중에는 '군집화(clustering)'가 있는데, 군집화는 입력으로 주어지는 개체들에 대한 정보가 학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 개체들이 가지는 데이터의 특성을 파악하고 유사성에 기초하여 분류하는 기법이다. GAN의 경우 인공 신경망, 특히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 DNN)을 통해 생성자가 이미지의 데이터 속 확률 변수(Random Variable)들의 확률 분포를 추정·학습하면서 모든 변수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공통적인 특성까지도 찾아내어 다시 분포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군집화의 전략과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고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판별자의 구별 작업과 생성자의 생성 작업이 경쟁적인 학습을 반복하면서 서로의 성능을 개선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스스로 학습과 개선의 과정을 거친 GAN은 원래의 이미지가 가지는 데이터와 동일한 확률 분포를 공유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게 된다. 확률 분포의 학습이 계속해서 진행됨에 따라 GAN이 새롭게 생성하는 이미지 데이터의 확률 분포가 본래 이미지의 그것과 동일해지면 판별자는 두 분포의 차이를 더 이상 식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생성자(G)와 판별자(D)가 학습을 통해 확률 분포를 맞춰가는 과정


  GAN이 생성하는 이미지가 실제 이미지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자연스러워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이미지의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GAN 모델이 구별하기 어려운 이미지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한편, 피셔의 〈GAN 초상화〉는 GAN으로부터 파생된 모델인 스타일GAN(styleGAN)으로 독특한 인물 초상을 구현하고 있다. 스타일GAN은 2018년 NVIDIA의 연구원이 개발한 알고리듬으로, 원래 사람 얼굴 이미지를 높은 품질로 생성하기 위해 고안된 모델이었다. 


  스타일GAN은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s, 이하 CNN)'의 원리가 기반이 된다. CNN은 사진 속의 내용(content)이나 형식(style) 등으로 정의하는 각각의 레이어를 따로 계산한 후 합성하여 이미지를 생성한다. 생성자의 합성곱 레이어(convolution layer) 층에 각 스타일 정보를 추가하고 조합하여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 스타일GAN의 원리이다. 실험에서는 생성자의 각 레이어에 이미지를 입력하면 인물 이미지의 포즈, 머리, 얼굴형 등을 대략적인 스타일(Coarse styles)로, 외모의 특징과 눈을 중간 스타일(Middle styles)로, 그리고 이미지에 나타나는 배경이나 인물의 피부 등 전체적인 색 배합을 세부 스타일(Fine styles)로 조합함으로써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실제 인물의 사진과도 같은 이미지를 생성해 냈다.


스타일GAN 예시


  〈GAN 초상화〉에서 피셔는 스타일GAN으로 생성한 인물의 이미지에 변형을 가하여 새롭게 제시한다. 세 점의 초상 작품은 마치 X선처럼 견고한 형체를 투과하여 내부를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편, 피부가 아닌 다른 물질들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GAN Portrait 01 A〉, 2020.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GAN Portrait 01 B〉, 2020.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GAN Portrait 01 C〉, 2020.


  〈GAN 초상화 01 B〉의 경우 플라스틱 비닐과 같은 질감이 이마를 구성하고 〈GAN 초상화 01 C〉는 액체나 세라믹 자기와 같은 질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피셔가 생성자의 스타일 레이어에 다른 인물의 이미지 대신 매끈한 표면에 나타나는 반사광의 질감과 금속성, 조도(roughness)를 나타내는 사물이나 물질의 정보를 입력하여 창출된 결과물이다.


  스타일GAN으로 생성할 수 있는 이미지의 수는 무한하다. 다른 어떤 데이터보다도 수집과 생산이 용이한 인간의 얼굴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는 많이 구축되어 있는 만큼 훈련의 과정에서 더욱 복잡성을 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본래 이미지와 생성 이미지의 두 가지 개별 층위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공유하고 있는 특징들을 찾아내어 관계를 학습함으로써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하고 식별 불가능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완벽한 휴머노이드를 마음대로 생성할 수 있다는 초기 GAN의 참신함이 사라진 후, 스타일GAN의 생성을 통한 얼굴 사진들로 머신 러닝 예술(Machine Learning Art)의 변형을 시도했(지만, 빠르게 지루해졌)다. 이 초상화들은 시스템의 "파괴(break)"를 시도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 차이 구간(margins)에서 새로운 미학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 Studio ANF 웹페이지 참조.


  피셔는 〈GAN 초상화〉가 시스템에 대해 일종의 “파괴(break)"를 시도한 작품이라 말했다. 초상의 인물은 원본을 알 수 없는 요소들이 얼굴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위 레이어의 개별 구성 요소 중 인물의 이미지, 즉 작품 속에서 희미하게 형태를 갖춘 얼굴의 전체적인 윤곽(Coarse styles)을 GAN이 찾아내어 생성한 특징이라고 할 때, 이를 제외한 질감의 요소들은 GAN에 의해 잠정적으로 배제된 부분들이자 여백이다. 여기서 그가 시도하고 있는 파괴라는 것은 실제 인물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감쪽같은 '가짜'를 양산하는 GAN의 자기 생산 체계를 분해하는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알렉산더 레벤(Alexander Reben, 1985- )의 amalGAN(Amalgamate GAN) 작업처럼 기존 스타일GAN과는 다른 방식의 창발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레벤의 amalGAN은 이미지 생성 인공 신경망에서 이미지들을 교배(Breeding)하여 생성 이미지(Child)를 만들면, 레벤의 선호도에 따른 뇌전도, 심전도, 표피전도를 측정한 데이터가 이미지 생성 인공 신경망에 피드백되고, 선호도가 충분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여 최종적인 최적 이미지를 출력하는 방식이다.]


알렉산더 레벤의 amalGAN 작품 예시.



2) 〈스웜 Schwarm(Swarm)〉 시리즈

  작품 제목의 'Schwarm'은 독일어로 '떼', '무리'를 뜻하며 영어 'swarm'과 같은 의미의 단어이다. 피셔가 2012년부터 진행해 온 〈스웜〉 시리즈는 사진을 기반으로 작은 입자 무리를 이용하여 추상적인 구성을 점진적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2001년 MIT 미디어 연구소(MIT Media Labs)의 케이시 리아스(Casey Reas, 1972- )와 벤 프라이(Ben Fry, 1975- )가 고안한 '프로세싱(Processing)'이라는 JAVA 기반의 오픈 소스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이미지의 본래 색상 값을 사용하여 분석하면 일련의 규칙에 따라 작은 입자들이 퍼지듯 이동하기 시작한다.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Schwarm I (Orange)〉, 2012, 90 x 60 cm, Lambda-print.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Schwarm I (Blau)〉, 2012, 90 x 60 cm, Lambda-print.


  〈스웜 I(주황색)〉(2012)와 〈스웜 I(파란색)〉(2012)를 보면 무리를 지은 입자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 흔적을 볼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 결정한 값에 따라 입자의 길이와 색 구성은 달라진다. 〈스웜 I(주황색)〉은 짧은 붓 자국처럼 보이는 입자를, 그리고 〈스웜 I(파란색)〉은 긴 선으로 연결되는 입자를 결정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동안 입자들은 실시간으로 천천히,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개별적인 입자들의 경로는 시스템의 자율성에 입각하여 임의적으로 형성해 나가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때문에 생성되는 고유한 이미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고, 프로세싱 완료 후 원래의 이미지와의 유사성이 사라진다. 아래의 또 다른 〈스웜〉은 생성적 소프트웨어 프로세스의 일부분으로 (A)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입자의 자율적 이동이 (B)의 이미지를 거쳐 (C)를 생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Schwarm [Software]〉, 2012, Generative Software Process, Variable Dimensions.


  2019년에 제작된 〈메가스웜(Megaschwarm)〉(2019)은 3개의 트리플 채널로 이루어진 미디어 설치이며, 각 채널마다 4분가량의 생성 이미지 비디오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Megaschwarm 01〉, 2019, Triple Channel Video Art Installation, 16 sec. out of 4 min.


  〈메가스웜〉은 이전의 〈스웜〉과 같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지만 색상 값이 미리 정의되지 않고 시스템 내부의 자율성에 따라 생성된다는 점에서 이전 시리즈와 차이가 있다. 입자가 이동하는 전체적인 모습은 물 위에 각기 다른 색의 물감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번져나간다. 그러나 같은 색을 띠며 무리를 이루는 입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벌어지다가도 하나로 모이기를 반복하고, 색조를 바꾸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미지를 생산한다. 


  'Schwarm', 'Swarm'이라는 작품의 제목을 통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알고리듬의 논리가 '입자 군집 최적화(Particle Swarm Optimization, 이하 PSO)'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신경계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과 같은 '생체 모방 알고리듬(Bio-inspired algorithm)'의 하나로, PSO는 개미나 새, 물고기 등과 같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개체의 집단적 생활양식으로부터 착안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무리의 새들이 먹이를 찾는 중이라고 할 때, 각각의 새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찾은 곤충의 양에 따라 울음소리를 다르게 내어 가장 크게 소리 내는 인접한 새의 위치를 찾아 같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저마다 자신의 주변에서 소리가 가장 큰 곳으로 모임으로써 먹이가 풍부한 지점을 찾는 것이다. 무리의 응집력에서 비롯된 질서는 새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창발된 것으로, 한 마리의 새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이다. 


  개별 개체의 성질과 관계없이 창발하는 집단의 성질을 보여주는 PSO는 〈스웜〉시리즈에서 최적화를 지향하는 입자들의 집단적 이동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논리이다. 신경계의 커넥톰, 생명체 집단의 생활양식처럼 생태계 내의 생명현상은 복잡계(Complex System)를 이루고 있다. 생명현상을 모방하는 인공지능 알고리듬 역시 갈란터의 그래프 〈제너레티브 아트 시스템〉에서 보았듯, 복잡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피셔의 다른 작품 〈보이드(V0ID)〉 시리즈 역시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이고 있으며, 다양한 버전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V0ID I (Void 1448461364556)〉, 2015


안드레아스 니콜라스 피셔, 〈V0ID VI〉, 2017, Single Channel Video, UHD, 4 min.



나가며

  지금까지 복잡계의 자기 생산 기계로서 인공지능 기술 체계를 활용한 피셔의 제너레티브 아트를 통해 그 창발적 속성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영원히 변화하는 구성의 덧없는 본질


  피셔는 입자들의 움직임으로 계속해서 변화하는 이미지를 작품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영원히 변화하는" 이미지의 구성에서 본질의 덧없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사전에 규칙을 설정하고 나면 시스템이 스스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피셔의 작업은 작품과 예술가의 권위 사이 '손'의 존재에 대해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이 고려했던 접근 방식을 이어 더욱 초월적인 가능성을 제시했다. 미국의 작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가 손으로 직접 '그리지' 않고 에어브러시를 '뿌려' 〈삼미신(The Three Graces)〉(ca.1925)을 제작함으로써 물리적으로 손과 작품 자체에 거리를 두고자 했듯이, 피셔는 기술을 통해 예술가의 손을 넘어 창의적 표현까지도 거리를 두면서 예술가의 작업과 작품 구성 사이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만 레이, 〈삼미신〉, ca. 1925, gelatin silver print of an air-brush painting from 1919.


  하지만 피셔는 작가적 표현과 창의성-작품 사이를 분리시키려 하기보다는, 동시대 예술에서 인간의 개입과 기술적 프로그램 간의 공진화적인 협력 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작업에서 그 자신은 작업의 일부로 통합되기도 하는 동시에 독립되어 있다. 또한 그는 소프트웨어가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주된 수단이 되고 있는 컴퓨터, 그리고 주된 매체가 되고 있는 디지털을 "그 자체로 형태발생적(morphogenetic) 특성이 부여된 물질"이라고 말했다. 디지털과 소프트웨어를 그 자체로 창발적 잠재성을 내재한 능동적인 물질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관점을 바탕으로 할 때 결과적으로 피셔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인간과 기술 사이의 관계를 예술적 '공생'의 관계로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구적 측면에서 인공지능 기술 체계는 인간 지능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던 영역을 가능케 하고 있다. 실제 가수의 목소리, 발음, 창법, 가창력, 음색 등을 학습한 AI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유사하게 모방하는가 하면, 딥페이크(Deep fake)를 활용하여 사진 한 장으로만 남아 있는 순국열사의 얼굴에 움직임을 구현해 내는 등 이제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를 되살려내어 현재에 과거의 어느 시점을 불러올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기술이 발전해 온 역사와 현시점에서 기술이 우리 삶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를 통해 볼 때, 앞으로 기술은 더더욱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기술에 대한 의존도도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기에 그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 1952-2020)의 말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피셔는 기술이 이미 삶과 떨어질 수 없게 된 오늘날 기술의 능동성과 잠재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인간과 기술이 예술적 공생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공생적 관계에 대한 관점이 피셔의 작품에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 전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 참고문헌 (이탤릭체 표기는 볼드체 표기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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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lexander Reben 홈페이지 [웹페이지]: https://areben.com/project/amalgan/

15. Artjaws [웹페이지]: https://www.artjaws.com/en/portfolio/fischer-andreas-nicolas/

16. Studio ANF [웹페이지]: https://studioanf.com/a-brief-history-of-generativ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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