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오제의 '비장소(non-place)' 개념을 중심으로
이전의 두 편의 글에서 살펴본 마나프 할부니(Manaf Halbouni, 1984- )에 대한 사이-존재의 사유는 시리아계 독일인이라는 그의 태생적 배경, 본래 살고 있었던 나라를 떠나 독일에 정착하였던 상황에 기반되어 있었다. 그의 작업 방향은 이러한 조건들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사이-존재의 사유를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할부니는 드레스덴 예술대학(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Dresden)에서의 졸업작품이었던 〈뿌리 뽑힘(Entwurzelt)〉(2014)부터 자동차를 활용한 작업을 통해 '공간내기'를 시도해 왔다. 일련의 도주차량(Fluchtautos) 작업들과 시리아 내전의 아픔을 기억하는 〈모뉴먼트(Monument)〉(2017),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가상 국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 〈모빌리스탄(Mobilistan)〉(2021)은 사이-존재의 틈을 만드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본 글은 이제 사이-존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틈의 공간에 생성되는 의미와 정체성을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 1935-2023)의 '비장소(non-place)' 개념을 바탕으로 풀어보려 한다.
이동성, 즉 모빌리티(mobility)의 가속화는 공간의 과잉을 야기하고, 공간의 규모와 그에 대한 이해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촉구하는데, 이때 오제는 '비장소' 개념을 제안한다. "정체성과 관련"되며 "관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서 '장소'와는 다른 '비장소'는 "고독과 유사성을 생성"하는 "이동과 소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간'을 말한다.
많은 지리학자들은 '장소'와 '공간'을 구별해 왔다. 예컨대, '장소(place/lieu)'는 고정적이고 정지된 성질을 지닌 공간, 그리고 '공간(space/espace)'은 유동적이고 연속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는 이동의 성질을 지닌 공간으로 정의되었다.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1944- )는 장소가 "환경과 풍경, 의식, 일상, 타인들, 개인적 경험 등에 대한 관심이 교차하는 다른 장소의 맥락을 통해 감각되는 곳"으로서 해석적이고 미학적이라고 보았던 반면, 공간은 해석할 수 없는 비정형적이고 추상적인, 기능적인 성격을 띤다고 보았다. 이-푸 투안(Yi-Fu Tuan, 1930-2022) 역시 장소가 총체적 생활 속에서 인간의 경험이 감각적으로 이루어질 때 현실성을 띠는 반면, 공간은 그보다 더 추상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렐프와 투안이 이처럼 장소와 공간에 대한 구별을 경험의 현상학적 측면에서 바라보았다면, 이를 좀 더 개념적으로 구분한 것은 프랑스의 학자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1925-1986)였다.
세르토의 『일상의 발명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1984)에 따르면, 장소는 고유한 위치에 규칙을 두고 이름이 부여된, 객관적으로 위치하는 단일하고 안정적인 곳, 공간은 방향과 속도에 따른 움직임의 연속적인 컨텍스트에 의해 "실천된 장소"로서 '장소'와는 대조적으로 고유한 단일성이나 안정성이 없는 곳을 말한다. 언급한 지리학자들의 '공간' 개념을 종합하여 보면, 공간은 다양한 요소들, 상황들, 맥락들에 의해 변형될 수 있는 성격을 띠는 개념이다.
오제는 세르토의 이론으로부터 "일상적 실천의 공간"에서 착안한 자신의 장소 개념을 제안했다. 오제의 '장소'는 세르토와 달리, 전략이 작동하는 안정되고 고정적인 곳으로서의 장소가 아닌 실천적 공간(집단적, 개별적 공간의 실천을 통해 구성되는 공간) 그 자체이다. 즉, 집단에 공유되는 정체성, 개별 정체성과 그 안의 독특한 정체성의 요소들이 상징화되는 공간이 바로 '장소'인 것이다. 오제는 일상에서 사람이 관계하고 의미가 부여되어 상징화된 '장소'는 관계성, 역사성, 정체성을 가지는 곳으로서 '인류학적 장소(anthropological place)'라고 말했다.
반면에 비장소는 인류학적 장소와 달리 관계성, 정체성과 관련이 없고, 역사적인 곳으로서도 정의되지 않는 공간이다. 비장소 역시 장소이지만, 실천과 장소가 지니는 관계성, 정체성이 없는, 잠깐 스쳐가기 위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공항과 고속도로와 같이 이동에 주된 목적을 둔 장소들, 그리고 대형 쇼핑몰과 같이 거래에 목적성을 둔 장소들이 비장소의 예가 된다.
세르토 역시 비장소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는 규칙을 두고 이름이 부여된 장소라 할지라도 여타 사람들에게는 잘 알지 못하는 곳일 경우, 그들에게 그 장소는 거쳐가는 공간이 된다고 하며, 이를 "장소들 안에 만들어진 비장소"라고 보았다. (인류학적) 장소와 비장소는 상대적이며 가변적이다. 고정적 장소라 하더라도 이동 중에는 지나치는 경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제는 가속화된 '초근대성(surmodernité)'이 비장소들을 생산한다고 보았다. 각지에서 모였다가 떠나는 터미널과 기차역, 공항, 그리고 거미줄 같은 노선도로 구획된 도시의 교통수단들, 대형 쇼핑센터, 고속도로 등 일시적, 임시적 머무름의 공간들, 이동의 공간들은 앞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시·공간적 과잉의 시대를 반증한다. 그렇기에 인류학적 장소로 일컬어왔던 장소들도 비장소와 얽혀있어 언제든 비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장소가 되지 못하는 장소는 없다. 이는 또한 반대로 비장소가 관계적, 역사적 정체성을 정립하는 또 다른 인류학적 장소로 변모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근대성의 시대에서 전통적 장소와 비장소의 개념이 현실적 장소에서 불변하는 의미로 작용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유기적 사회집단과 관계망을 구성해 온 개인들 사이의 틈을 열고, 정주해 온 사람들을 탈장소화시킴으로써 수많은 이방인을 양산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변방에 위치하는 경계적 존재들과 조우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인류학적 논의의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장소와 정체성의 문제는 거주자와 여행자, 이동 중인 탑승객(passenger)만이 아니라, 이주민과 디아스포라(diaspora), 난민, 그리고 할부니와 같은 혼혈인까지도 포괄하는 넓은 범위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시리아와 독일 두 국가 사이에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졸업 후 독일에서 홀로 서는 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찰나 고향에 돌아갈 방법도 사라지면서 친숙한 '집'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할부니의 도주차량 작업들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중고차에 마련된 그의 보금자리는 새롭게 장소화된다. 드레스덴 내 인류학적 장소라 일컬을 수 있는 곳과 모든 비장소들 중에 위치한 도주차량은 할부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비장소의 일부일 테지만, 생필품과 소지품,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 넣은 〈도주 중인 작센 사람(Sachse auf der Flucht)〉(2015)과 같은 도주차량은 그에게 새롭게 관계성을 맺으며 형성된 (인류학적) 장소가 된다. 그 공간이 인류학적 장소로 실천되는 순간만큼은 그 밖의 모든 공간, 넓게는 드레스덴, 혹은 독일 전체가 비장소인 것이다.
비장소의 공간은 그곳에 들어서는 이들이 평상시에 결정해야 하는 일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는 단지 승객, 고객, 운전자로서 그가 행하는 것, 경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그는 전날의 걱정거리로 아직까지 머릿속이 복잡할 수도 있고, 내일의 문제에 벌써부터 마음을 쏟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그를 둘러싼 환경은 잠정적으로나마 그러한 문제들에서 그를 멀리 떼어놓는다.
- 마르크 오제,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 이상길·이윤영 (역), 파주: 아카넷, 2017, p. 124.
도주차량 작업들은 인류학적 장소로서는 여전히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실천이라는 점에서 고유함과 안락함보다는 고독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자동차 바깥 세계에서의 타자적 경험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집'이 되어준다.
드레스덴을 비롯해 뉴욕, 모스크바의 특정 장소 사진 앞에 시리아 내전을 상징하는 알레포(Aleppo)의 바리케이드를 합성한 사진 콜라주, 그리고 실제로 2017년에 드레스덴의 프라우엔교회(Frauenkirche) 앞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에 세워지기도 했던 〈모뉴먼트〉는 각 지역의 역사 깊은 인류학적 장소에 자리함으로써 다른 역사성과 정체성을 불러오고, 새롭게 장소화를 시도한다.
〈모빌리스탄〉에서 기다란 리무진 자동차는 '모빌리스탄'이라는 하나의 가상 국가이자 인류학적 장소 그 자체로 설정된다. 할부니는 '국가'와 '영토'의 정체성, 실질적 영역, 그리고 그 안의 역사를 정의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를 받아들이고 이를 정하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하며 장소와 영역을 정의하는 것에 대한 인위성과 상대성을 이야기한다.
2주에 걸친 이 프로젝트에서 참여자는 자체 제작된 여권을 통해 자동차에 탑승한 후, 입국허가를 받는다. 그리고 여권 스탬프가 찍히고 나서 10분-30분 동안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게 된다. 이렇게 입국(승차)과 출국(하차)을 반복하면서 유럽 국가와 도시 곳곳을 이동하고, 실제 국경을 넘나들며 일시적으로 새로 정체성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모빌리스탄〉의 실제 이동 경로는 아래와 같이,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드레스덴을 지나 체코의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로 이어졌다. 이 경로를 지나온 모든 장소들은 단지 이동하기 위한 도로이자, 비장소이다. 〈모빌리스탄〉이 단지 자동차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 공간 역시 이동에 목적을 둔 비장소로만 기능했을 것이지만, 국가라는 정체성과 (짧더라도) 역사가 부여되면서 모든 장소들에 사이 공간을 만들어내어 인류학적 장소로의 실천이 가능해졌다.
본 글은 오제의 초근대성과 관련하여 상호 영향을 주며 침투하는 인류학적 장소와 비장소의 장소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할부니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오제의 비장소 개념은 단순히 이동과 소비, 커뮤니케이션 등을 위한 기능을 하는 거쳐가는 장소만이 아니라, "정치적 폭력"과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내몰린 사람들이 위치하는 피난처를 포함하며,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생성하게 한다. 지금까지 보았듯, 할부니는 시리아인이자 독일인으로서 세계 '사이'에 위치하는 경계적, 혼종적 주체로서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장소성으로 구성된 어떤 공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차량을 장소화 해왔다. 비장소로서 자동차는 이방인인 할부니에게 오히려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었고,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공간이 되었다.
* 참고문헌 (이탤릭체 표기는 볼드체 표기로 대신합니다.)
1. De Certeau, Michel,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Steven Rendall (trans.), Berkeley & L.A. &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2. Relph, Edward, Place and Placelessness, London: Pion, 1976.
3. 마르크 오제,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 이상길·이윤영 (역), 파주: 아카넷, 2017.
2. 정헌목, 『마르크 오제, 비장소』,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본 글은 "마나프 할부니, 사이-존재의 사유 ②"에 이어지는 세 번째 글입니다.
지난 글 읽으러 가기
▶ 마나프 할부니, 사이-존재의 사유 ①: 2014년부터 2021년까지의 작업 살펴보기
▶ 마나프 할부니, 사이-존재의 사유 ②: 데리다의 '타자'와 '환대(hospitalité)' 개념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