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혜 Apr 12. 2023

마나프 할부니, 사이-존재의 사유 ①

2014년부터 2021년까지의 작업 살펴보기

들어가며

  본 글은 몇 년 전, 우연히 유튜브(YouTube)를 통해 알게 된, 그리고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된 작가 마나프 할부니(Manaf Halbouni, 1984- )와 그의 작업을 연구하는 글이다. 작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최근까지의 작업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이번 글을 시작으로, 그의 작업을 나름대로의 관점을 통해 분석하는 두 편의 글이 이어질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총 3편으로 계획하고 있지만,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보다 더 많이, 더 오래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출처: 마나프 할부니 홈페이지(https://www.manaf-halbouni.com/vita/)


  할부니는 시리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시리아인-독일인 작가이다.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태어나고 자라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다마스쿠스 미술대학(University of Fine Arts Damascus)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졸업할 때까지 시리아에서 살았다. 시리아를 떠난 것은 어머니의 고향인 드레스덴에서 연방군으로 복무를 하기 위해 독일로 가면서부터였는데, 복무 허가를 기다리기 위해 머무르면서 학교를 다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아예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2009년부터 드레스덴 예술대학(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Dresden)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이 시기 드레스덴 민족학 박물관에서 시간과 거리(Zeit und Entfernung)를 주제로 한 그룹전 《완전히 다른 어떤 곳(Anderswo ganz anders)》(2013)에 참여하여 〈다마스쿠스로 향하는 문(Das Tor nach Damaskus)〉이라는 작업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졸업 이후에도 수많은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조각과 오브제, 사진 콜라주,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있는데, 대부분의 그의 작업은 자신이 나고 자란 시리아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마나프 할부니, 〈다마스쿠스로 향하는 문(Das Tor nach Damaskus)〉, 2013, Museum für Völkerkunde Dresden.


  자신의 의지로 시리아를 떠났음에도, 새로이 정착한 독일에서 할부니는 계속해서 시리아와 연관된 작업에 천착해오고 있다. 독일인이자 시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할부니는 양 국가에서 모두 주인(주체)이면서 동시에 이방인(타자)이기도 한 존재이다. 이는 어디에나 속하지만 또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그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으로 점철된 시간이었을 것이고, 내전으로 시리아에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으로 인해 고향에 대한 의식들이 자연스레 스며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 어디에도 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 나는 반 독일인, 반 시리아인이기 때문에 항상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독일인이라 불렸고, 독일에서는 그 반대로 불렸다. 현재 나는 '잡종'으로서 양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다. 국가 정체성 개념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나 속한다.
-Atassi Foundation 기사 中


  스스로를 세계 사이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할부니는 경계/틈에 위치해 있는 틈의 존재이자 '사이-존재'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타자철학에서는 이러한 사이-존재를 타자라고 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가 절대적 타자의 외재성을 주장한 것과 달리, 주체와 타자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타자가 주체의 내부에서 '나'에게 물음을 던지며 출몰한다는 데리다의 타자 개념은 타자를 "맞이하는" 주체의 행위, 타자에 대한 주체의 '환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할부니의 작업들을 설명하고 난 후, 다음 편에서 필자는 그의 작업을 통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이방인 환대의 문제, 그리고 주인이자 이방인인 자신이 느끼는 환대의 문제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다. 그전에 먼저 이번 글에서는 2014년 드레스덴 미술대학 졸업 작품이었던 〈뿌리 뽑힘(Entwurzelt)〉(2014)를 포함한 도주차량(Fluchtautos) 작업들과 대안적 세계를 상상하는 퍼포먼스 〈왓 이프(What If)〉(2015), 시리아 내전에 대한 기념비적 설치 작업 〈모뉴먼트(Monument)〉(2017), 〈파편(Fragments)〉(2020), 그리고 〈모빌리스탄(Mobilistan)〉(2021)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도주차량(Fluchtautos) 작업

1) 〈뿌리 뽑힘(Entwurzelt)〉(2014)

  일련의 도주차량 작업들 중 첫 번째 작품인 〈뿌리 뽑힘〉은 오래된 중고차를 구하여 제작한 드레스덴 예술대학 아카데미에서의 졸업 작품이었다. 제목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고향으로부터 뿌리가 뽑혀버린 상황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내전 당시 이미 그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고, 돌아가지도 못한 채 멀리서 고향의 참담한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점점 폐허가 되어가던 다마스쿠스를 지켜보는 일은 시리아로 돌아가고자 했었던 그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드레스덴에서 일어난 PEGIDA(Patriotische Europäe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극우단체) 지지자들의 시위로 인해 할부니는 -난민이 아닌 데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대를 받아야만 했다. 특히나 당시 집도 없고 돈도 없어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없었던 할부니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때 제작한 〈뿌리 뽑힘〉은 작품이자 하나의 대안책이었던 것이다.


마나프 할부니, 〈뿌리 뽑힘(Entwurzelt)〉, 2014, Mixed Media.


  이라크와 시리아 등 내전을 겪고 있는 국가에서 대거 유입된 난민들로부터 야기된 유럽 이주 위기(The European migrant crisis)로 유럽 국가들은 2015년에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그중에서도 독일은 2015년에 442,000건의 망명 신청을 받음으로써 난민들이 주로 찾는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망명 신청 승인을 기다리는 난민들 중 36%는 시리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20세기 양차 대전의 비극을 겪으며 현대인들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인종주의의 폭력성을 목도했고, 이에 대해 깊은 성찰과 반성도 해왔다. 하지만 발전을 이룬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의식 근저에는 여전히 오래전부터 이어진 인종주의가 내재해 있고, 공공연한 차별 역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 난민과 이주민의 문제로 인해 새로운 갈등을 빚고 있는 유럽 국가들, 특히 누구보다 이 같은 사안에 민감한 독일에서 산재해 있던 민족주의·인종주의적 의식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난민의 유입과 국경 통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난민 수용 이후 양산되는 담론들과 자국민-난민의 분열로 초래되는 문제로 이어졌다. PEGIDA는 그 일례이며,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차별과 냉대를 견뎌야만 하는 이주민과 난민들의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가운데 〈뿌리 뽑힘〉은 당시 처했던 상황 속에서 이동성의 상징인 자동차를 통해 그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점이 되었다. '사이-존재'로서 할부니에게 〈뿌리 뽑힘〉은 뿌리를 잃은 고향에서 다시금 또 다른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 〈어디에도 집은 없다(Nowhere Is Home)〉(2015)

  그는 이듬해 〈뿌리 뽑힘〉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다른 도주차량 작품 〈어디에도 집은 없다〉를 제작했다. 〈어디에도 집은 없다〉는 이슬람의 이민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는 독일 사회에 대한 소원감과 불안감을 바탕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뿌리를 내릴 수도 없는 현대 유목민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뿌리 뽑힘〉을 통해 다시 뿌리를 내릴 장소를 찾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유목민, 즉 전 세계의 수많은 이재민들이 전쟁과 자연재해, 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소지품을 싣고 떠나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상실감을 반영한다.


마나프 할부니, 〈어디에도 집은 없다(Nowhere Is Home)〉, 2015, Mixed Media.


  짐을 실은 차량, 이동수단들은 탈출과 추방이라는 주제의 상징이 되어왔다. 예컨대, 안드레아스 슬로민스키(Andreas Slominski, 1959- )의 〈자전거(Bicycle)〉(1994)에 가득 매달려 있는 비닐봉지와 여행가방이 노숙자의 소지품을 의미하듯, 이동성은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일종의 불가피하게 강요된 생활모델로서 세계화로 경제적, 정치적 번영을 이룬 세계와 대비되는 이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할부니의 〈뿌리 뽑힘〉이나 〈어디에도 집은 없다〉가 보여주는 것이 과연 이방인이 처한 상황의 이면과 한계일 뿐일까.

 

내 어머니가 독일인임에도 사람들은 항상 나를 시리아인이라 생각한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 이름이 슈테판이나 귄터와 같은 이름처럼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를 이민자로, 외국인으로, 이곳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 그래서 나는 ‘좋아, 떠나보자’라고 생각했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자동차를 채우고 떠났다.

〈어디에도 집은 없다〉 작업 영상 中


  Weser Kurier의 한 에세이에서는 독일인에게 있어 자동차 자기 이동(Selbstbewegung), 자기 결정(Selbstbestimmung), 자기 권한(Selbstermächtigung)에 따른 개성과 자유의 표현수단이랬다. 독일만 놓고 보지 않더라도 자동차는 모델에 따라 지위나 부를 상징하는 하나의 시뮬라크르가 되기도 하고, 속도를 내며 유랑하는 측면에서 절음의 상징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할부니의 자동차에도 자기이동과 자기 결정의 자유라는 상징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즉,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유목민의 현실에 굴복하는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에 맡기고자 하는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3) 〈도주 중인 작센사람(Sachse auf der Flucht)(2015)

  이 작업은 2015년 초 PEGIDA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서 그들에 반대하는 하나의 예술 행동으로 선보여졌다. 극장광장(Theaterplatz)에서 도주 시나리오를 설계하며 시리아 출신의 많은 독일인들과 공유하는 문제를 설명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동차에는 작가가 사랑하는 두 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맥주와 아랍어로 된 책을 가득 채우고 드레스덴 거리를 다니면서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사람들에게 자동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업로드하도록 요청하고, 그로부터 수집된 사진과 자동차를 전시함으로써 PEGIDA에게 그들의 증오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드러냈다.


마나프 할부니, 〈도주 중인 작센사람(Sachse auf der Flucht)〉, 2015.


〈도주 중인 작센사람(Sachse auf der Flucht)〉 中 주민이 참여한 이미지, 2015.


  할부니는 고향 시리아가 내전으로 황폐화되어 가는 한편, 또 다른 고향 드레스덴에는 사람들의 무지와 오만이 가득해져 가는 것을 발견했다. 스스로도 전쟁과 재난이 벌어지는 먼 곳의 상황을 멀리 떨어진 채 텔레비전 뉴스나 이미지로 보면서 현실적 감각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난민 유입 반대 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에게 난민들의 현실과 그들이 겪은 고초는 초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니면 내전에 휘말릴 잠재적 위험성을 느끼고 미리 위험요인을 차단하려 하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가능성에 따른 대응일 수도 있다. 〈도주 중인 작센사람〉은 감각이 유리된 현장에 나타나 현실을 일깨워준다. 시리아인으로서 PEGIDA에 반대하며 난민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독일인으로서 자국에서 점점 커져가는 외국인 혐오로부터 벗어나려는 예술가적 아이디어인 것이다.



2. 왓 이프(What If)(2015)

〈왓 이프〉 中, 〈새로운 세계(New World〉, 2019, Ink and flet pen on paper, 81 x 115 cm.


  〈왓 이프〉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오스만 제국과 아랍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일어났을 때를 가정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인 대안 세계의 게임처럼, 또 다른 지정학적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는 퍼포먼스 작업이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실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서유럽이 아닌 두 개의 중동지역 강대국,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과 '아라비아 합중국(United States of Arabia)'이 세계에 무기와 기술 발전을 공급하고, 자원과 판매 시장을 찾아 유럽을 식민지화한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협정(Sykes-Picot Agreement 1916)으로 인해 나뉘었던 것처럼, 할부니는 중동의 두 세력이 정복한 유럽 국가의 국경을 그곳에 사는 민족들과 관계없이 임의로 새롭게 설정하고, 이를 지도에 아랍어로 표기했다. 그리고 정복한 지역, 도시의 이름도 임의로 수정하여 지도에 표시했다. 일례로, 베를린의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은 다마스쿠스-광장(Damaskus-Platz)으로 바뀌었다.


마나프 할부니, 〈유수프 하디드 장군(General Yusuf Hadid)〉, 2016.


  퍼포먼스에서 주인공이 되는 할부니는 스스로를 '유수프 하디드(Yusuf Hadid)'라는 이름의 가상의 장군으로 설정한다. 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연극과도 같은 짧은 글인 「장군의 추억(Erinnerung eines Generals)」은 1919년 8월 4일부터 대략 5일간 이어진 하디드 장군의 일지를 다루고 있다. 아라비아 합중국의 군대에 있던 장군 하디드가 오스만과 그들의 라이벌인 중국군과 교전을 벌이다 협상 끝에 격퇴시키며 공을 세우는데, 대통령과 육군 원수의 요청으로 제6군이 주둔해 있는 드레스덴으로 가서 진두지휘하게 된다.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Friedrich August) 왕이 아라비아 합중국의 편을 들었지만 식민지화에 대해 내부에서 반군이 일어나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로 수도(드레스덴)를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중해 무역의 요충지였던 베이루트(Beirut)의 상인 집안 출신으로 종종 아버지와 함께 무역을 다닌 덕분에 독일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하디드가 적격이었다. 대통령의 지시와 작센 왕의 부탁으로 결국 드레스덴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치하던 반란군을 진압한다.


  이 같은 연극에 따라 유럽의 지도에는 군대의 이동 경로도 표시된다. 이렇게 가상의 독재자들이 유럽을 정복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왓 이프〉의 세계관에서 오스만 제국과 아라비아 합중국은 식민 지배로 유럽 곳곳에 모스크를 세우고, 광장의 이름을 바꾸어 살라딘(Saladin/Salah-al-Din)의 동상을 세운다. 그 모습은 할부니가 독일 도시의 광장 사진 이미지에 살라딘 동상을 집어넣은 사진 콜라주 작업으로 나타난다.


[L] 〈자유광장(Friedensplatz)〉 from the series of 〈What If〉, 2020


  왼쪽의 이미지는 〈왓 이프〉에서의 '자유광장'으로, 뒤에 모스크가 존재한다. 오른쪽이 할부니가 사용한 본래 이미지이자, 독일 뤼벡(Lübeck)의 홀스텐 문 광장(Holstentorplatz)의 본래 사진이다.


[L] 〈살라딘 광장(Salah-al-Din-Platz)〉 from the series of 〈What If〉, 2020. / [M] 〈살라딘 광장〉 中 동상 확대 부분.


  '살라딘 광장'으로 표현되는 이미지에서 동상 부분(중간)은 실제 요르단(Jordan) 카라크(Karak)에 세워진 살라딘 동상의 이미지(오른쪽)가 합성된 사진 콜라주 작품이다.


  〈왓 이프〉에서 하디드 장군의 역할은 할부니의 분신과 같다. 실제의 역사와 정반대로 뒤집어진 가상의 역사는 식민주의가 어떻게 피식민 국가 내 전쟁과 갈등을 유발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를 떠나 이주하게끔 야기하였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3. 〈모뉴먼트(Monument)〉(2017)

  〈모뉴먼트〉는 버스 세 대를 세로로 세운 설치 작업이다. 이 독특한 형태는 역사적으로 실제 행해졌던 사건을 기억하는 기념비로, 시리아 내전 중 알레포(Aleppo)에서 저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보호막으로서 실제로 세워진 바리케이드이다. 시끄러운 내전 가운데 바리케이드의 모습이 재앙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당시 카람 알-마스리(Karam Al-Masri)가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한때 활기가 넘치던 산업의 중심지이자 역사적 도시였던 알레포의 대부분이 전투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교전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이 혼란을 극복하고 두려움 없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카람 알-마스리(Karam Al-Masri), 〈알레포의 바리케이드(Barricade in Aleppo)〉, 2015.


  할부니는 이미 2015년부터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 앞이나 알버티눔 미술관(Museum Albertinum) 내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앞, 그리고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Saint Basil's Cathedral) 앞을 찍은 사진 이미지에 카람 알-마스리가 찍은 알레포의 바리케이드 사진을 잘라 붙여 콜라주 작업을 해왔다.


(A) 마나프 할부니, 〈모뉴먼트(Monument)〉, Photo collage, 프라우엔교회 앞, 2015.

(B) 마나프 할부니, 〈모뉴먼트(Monument)〉, Photo collage, 알버티눔 미술관, 2015.

(C) 마나프 할부니, 〈모뉴먼트(Monument)〉, Photo collage,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2015.

(D) 마나프 할부니, 〈모뉴먼트(Monument)〉, Photo collage, 성 바실리 성당 앞, 2015.


  이후 〈모뉴먼트〉는 2017년에 2월 초부터 두 달 동안 실제로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 앞 노이막트(Neumarkt)에 설치되었고, 당해 11월에는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에 설치되었다.


마나프 할부니, 〈모뉴먼트(Monument)〉, 프라우엔교회 앞(드레스덴) 설치, 2017.


마나프 할부니, 〈모뉴먼트(Monument)〉, 브란덴부르크 문 앞(베를린) 설치, 2017.


  이 작품은 2차 대전 중 연합군에 의해 폭격을 당했던 과거의 드레스덴과 현재 심하게 파괴되어 있는 알레포 사이의 연결점을 만들어낸다. 〈모뉴먼트〉를 설치한 주최 측 가운데 한 명이었던 드레스덴 쿤스트하우스(Kunsthaus)의 이사 크리스티아네 멘니케-슈바르츠(Christiane Mennicke-Schwarz)는 이 작품이 "중동과 유럽인들, 그리고 우리가 공동으로 가지는 운명 사이의 연결점을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할부니 역시 "독일과 시리아의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차이'의 문제이지만, 표면적 차이(언어, 피부색 등)를 극복할 만큼 전쟁과 폭력으로부터의 '고통'과 '어려움'이라는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모뉴먼트〉는 단지 알레포의 고통을 알리는 측면을 넘어 시민들에게 독일인과의 관계를 대규모로 보여주고자 하는 시리아인의 시도를 보여준다.


  물론 이 작품이 설치될 당시 PEGIDA에 가담하는 시민들의 반대와 폭력적인 시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모뉴먼트〉 설치를 허가한 드레스덴 시장 디르크 힐버트(Dirk Hilbert)를 향해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이 작품이 고통과 상실로부터 재건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았다. 전쟁의 극복과 재건의 상징이 되는 드레스덴과 베를린이라는 역사적인 두 장소에 설치된 〈모뉴먼트〉는 '화해'라는 강력한 주제를 전달하며 조화를 향한 의지의 증표로 작용했다.



4. 〈파편(Fragments)〉(2018-2020)

  〈파편〉은 콘크리트와 구부러진 철근이 마치 액자의 프레임처럼 오브제를 둘러싸고 있는 작품이다. 시리아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광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할부니는 2018년부터 교회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을 주된 오브제로 삼아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참상의 일부를 드러냈다.


마나프 할부니, 〈파편 2(Fragments Nr.2)〉, 2018.


마나프 할부니, 〈파편 6(Fragments Nr.6)〉, 2020, 200x100x70 cm.

 

  폐허 속에서 남은 신적 잔존물은 전쟁과 같은 인재(人災) 앞에 무력함을 보여주지만, 모든 것이 파편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홀로 빛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서있는 모습이 자아내는 대비는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버티고 이겨내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오히려 콘크리트와 철근이 관객으로부터 오브제를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유럽의 오랜 기독교 신앙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PEGIDA를 비롯한 특정 단체들의 주장처럼 외국인의 유입으로부터 그것들을 보호하는 것이 과연 평화를 호소하는 데 있어 능사일 것이냐는 의문을 자아낸다.


마나프 할부니, 〈파편〉 中 뤼벡 홀스텐 성문 오브제


    〈파편〉작품들 중 뤼벡의 홀스텐 문 마그넷 오브제를 가시철조망으로 두른 것도 볼 수 있다. 왓 이프에서부터 홀스텐 문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장소의 역사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뤼벡은 중세 시기 한자동맹 도시로서 수세기 동안 번영하면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벽과 요새를 갖추어야 했다. 이를 위해 만들었던 네 개의 문 가운데 하나가 서쪽의 홀스텐 문이었고, 북쪽의 성문(Burgtor)을 제외하면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특히 이 문은 홀스텐 문을 이루는 두 개의 외부 문과 내부 한 개의 문 사이의 중간 문으로,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으로서 중요한 유적이다.


네 개의 홀스텐 문(vier Holstemtore)의 예


  그러한 점에서 왓 이프의 오스만 제국과 아라비아 합중국이 유럽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모스크를 세우는 것은 식민지 전략으로 적절했을 것이다. 특히 〈파편〉에서의 홀스텐 문 오브제 활용은 독일의 설화의 난쟁이 장식 오브제와 함께 민족주의의 상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마나프 할부니, 〈파편〉 中 정원 난쟁이(Gartenzwerg) 오브제



5.〈모빌리스탄(Mobilistan)〉(2021)

  〈모빌리스탄〉은 할부니가 작가 크리스티안 만스(Christian Manss)와 함께 진행한 작업이다. 리무진 자동차를 영토로 하여 이동하는 가상의 국가를 세우고, 독일 베를린에서부터 터키 이스탄불까지 이동하는 2주에 걸친 장기간의 퍼포먼스 프로젝트다. 제목의 '모빌리스탄'은 '이동'을 의미하는 'mobility'와 '~의 땅/나라'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stan'이 합쳐진 용어로, 리무진 자동차로 구성된 가상 국가의 국명이다.


마나프 할부니, 〈모빌리스탄(Mobilistan)〉, 2021.

  모빌리스탄은 자동차 자체이며, 차량의 문을 통해 출입국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제작한 여권을 통해 입국허가를 받을 수 있다.


모빌리스탄 여권 이미지.


  이동 경로는 베를린으로부터 출발하여 드레스덴을 지나 체코의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로 향하는 여정이다. 이는 1960년대부터 수천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나갔던 경로이자, 오늘날 난민들의 이동 경로와 동일하다.


  〈모빌리스탄〉은 '국가'와 '영토'란 무엇인지, 국가와 영토라는 정체성과 지리적 위치, 영역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한 자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물음은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이라는 국가의 존재로부터 생겨났다. 키프로스 섬 북쪽에 위치한 국가인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은 사실상 국가이지만 국제 사회에서 유일하게 터키만이 국가로서 인정하고 있다. 할부니는 이러한 점을 통해, 영역을 둔 장소와 장소의 정의, 정체성, 그리고 역사는 상대적인 것이고,  관념적인 것은 협약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모빌리스탄〉보다 먼저 슬로베니아의 정치적 예술 단체였던 NSK(Neue Slowenische Kunst)는 1992년 그들의 추상적인 국가를 창조하며 가상의 신분증을 제작하는 한편, 그들의 가상 화폐를 발행하고 유럽의 여러 지역에 그들의 대사관을 설치한 바 있다. 〈모빌리스탄〉은 선례가 되는 NSK의 "국경도 영토도 없는 추상적 유기체이자 절대주의적 실체"라는 국가 선언을 표방하면서, 국가를 세우고 주권을 선언하는 것은 일부 또는 다수의 동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NSK 가상 국가의 여권 이미지.


  이렇게 형성된 〈모빌리스탄〉은 레드 카펫을 따라 차량 문을 열고 입국(승차)하면 할부니와 만스를 통해 입국 심사를 거치고 여권 스탬프가 찍힌 10분-30분 동안 효력이 있는 비자를 받게 된다. 그리고 체류하는 동안 유럽 국가와 도시 곳곳을 이동하고 실제 국경을 넘나들면서, 국가가 그에 속한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자유와 안전을 일시적 영주권을 통해 보장함과 동시에 일시적 정체성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한다.



나가며

  마나프 할부니는 다양한 국가와 민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지점들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이 가진 명확한 주제의식과 직설적인 표현은 대담하고 솔직해 보이기도 한다. 필자는 이러한 할부니의 작품들이 흥미롭고,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계속해서 연구해보려 한다. 또한 이번 글에서 짧게 언급했던 할부니 작업에서 나타나는 '환대'가능성은 다음 글에서 데리다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 참고문헌 (이탤릭체 표기는 볼드체 표기로 대신합니다.)

1. Halbouni, Manaf, "Erinnerung eines Generals," 2016, pp.1-12.

2. Mobilistan, Press Release, 2021.

3. Neuendorf, Henri, "Artist Protests Against Pegida—With a Beat-Up Car," Artnet News, 2015.

4. Vašek, Thomas, "Mobiler Autoismus: Der Deutsche und sein Auto," Weser Kurier, 2017. 

5. Witt, Taylor, "Forced Migration: A Syrian Exodus to Germany," Journal of Undergraduate Research at 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Minnesota State University (May 2019), pp. 1-40.

6. Atassi Foundation [웹페이지]: https://www.atassifoundation.com/features/working-in-germany

7. Deutsche Welle [웹페이지]: https://www.dw.com/en/monument-to-aleppo-opens-to-protests-in-dresden/a-37445794

8. Frédéric Bußmann [웹페이지]: https://frederic.bussmanns.eu/blog/manaf-halbouni-nowhere-is-home/

9. Wikipedia "Holstentor" Geschichte [웹페이지]: https://de.wikipedia.org/wiki/Holstentor#Geschichte

10. 마나프 할부니 홈페이지 [웹페이지]: https://www.manaf-halbouni.com



다음 글 읽으러 가기

마나프 할부니, 사이-존재의 사유 ②: 데리다의 '타자'와 '환대(hospitalité)' 개념을 중심으로

 마나프 할부니, 사이-존재의 사유 ③: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non-place)' 개념을 중심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제니 홀저(Jenny Holzer), '불화'의 텍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