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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향기 Aug 18. 2021

죽음을 기억하는 히어리 나무

시골 요양병원의 꽃밭을 기록합니다


히어리는 화단 한 구석에서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었다. 3월이 되면 연노랑 꽃이 잎보다 먼저 돋아났다. 히어리 꽃이 핀 것을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 딱히 이쁜 꽃도 아니고, 나무도 볼품없었다. 꽃 이름이 궁금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히어리의 존재도 모른다. 토종나무라 하지만 이름이 낯설고, 히어리가 순 한글이라 하는데 그 뜻조차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았다.


히어리 나무를 자꾸 들여다보는 이유가 있다. 봄꽃이 피어도 겨울 쭉정이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는 꽃이 떨어지면 잎이 자란다. 히어리는 푸른 잎이 무성해져도 꽃이 지지 않았다. 심지어 검은 쭉정이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개나리처럼 순서대로 피고 지지 않았다. 여름이 되자 푸른 열매가 조롱조롱 여물어 갔다. 그래도 겨울 쭉정이는 꿋꿋하게 붙어 있었다. 히어리는 죽음을 밀어내지 않았다. 




시골 깡촌에 요양병원을 개원하고 지금까지, 7년을 함께 하신 어르신이 계셨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도 "무슨 말인지 몰라" 하며 웃기만 하셨다. 줄담배를 피우셨던 분이었다. 병원에 입원하자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를 군소리 없이 끊었다. 입원하시기 전 어르신은 스레트 지붕의 시골집에 살았다. 겨울이면 이불 밖이 너무 추워 누워만 계셨다. 딸자식 내외가 일하러 나가면 하루 종일 혼자 계시다가, 신식 병원에서 종일 보살펴 드리니 좋으셨던 것 같다. 의사가 시키는 말을 토 달지 않고 고분고분 들으셨다. 불평과 노여움이 없었고 늘 빙긋이 웃으셨다. 들리지 않으니 참견할 일도 없고, 말이 없으니 건드리는 이도 없었다. 어르신께는 이 세상이 그만그만하게 조용했다. 삶이 그랬듯이 큰 고생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어르신이 돌아가시자마자 원무과에서는 입원 대기자분께 전화를 했다. 기뻐하며 고맙다 하셨다. 어르신이 장례식장에 누워계신 그 시간에 병실의 빈자리는 채워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아이가 태어나고, 어딘가에는 수명을 다한 남녀노소가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뇌사자 가족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장기 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공존하고 있었다.


삶이 한창이던 나이에는 죽음이 불편하고 먼 이야기였다. 행복을 기대하던 나이에는 불행이 두려웠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기준이 없으면 불행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어도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 맹세했지만 곧 잊고 살아갔고, 감당 못할 슬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밥을 먹고 잠도 자고 웃기도 하며 살아갔다.  나이가 드니 내 마음에 공존하는 것이 많이 생겼다. 4계절이 품고 사는 히어리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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