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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향기 Aug 11. 2021

아무짝에 쓸모없는 8월의 블루베리

시골 요양병원의 꽃밭을 기록합니다


한 겨울에도 잎이 다 떨어지지 않는 나무가 블루베리다. 잎새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려도 굳건하게 붙어 있었다. 겨울이 되면 어느 나무가 어느 나무인지 예사로 보고 다닌 사람은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끝까지 붙어 있는 잎사귀가 있어서 블루베리 나무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또 반가웠다.


매화만큼 부지런을 떠는 것이 블루베리꽃이다. 3월 초에 미색, 혹은 엷은 분홍색으로 조롱조롱 매달린다. 무수히 핀 꽃들은 한결같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고개를 떨구어야 살아낼 수 있었을 테지.


5월~6월이면 동글동글한 청자빛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여름이 오기 전, 6월 말이면 검보랏빛 열매가 끝도 없이 영근다. 잘 익은 블루베리는 손만 대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고 바닥에 굴러 다닌다. 물까치가 쉴 새 없이 하강곡선을 그리며 블루베리 밭을 향해  내려온다. 새는 가르쳐주는 이 없어도 알아야 할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잘 익은 블루베리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새도 먹고 사람도 먹느라 바빴다. 퇴근시간에 몇몇 직원이 모여 수확을 했다. 자기가 딴 블루베리를 1kg에 15,000원을 내고 가져갔다. 동호회비로 쓴다.


열매가 다 떨어진 가을이 되면 블루베리 잎은 단풍이 든다. 유난히 붉고 아름답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일 년 내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나무가 블루베리였다. 자식이 부모를 보고 배우듯이, 매일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꽃과 잎과 가지와 열매를 보며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8월 무더위다. 블루베리 열매 수확은 끝난 지 이미 오래다. 블루베리 한그루가 눈에 밟혔다. 작고 못된 열매가 악착같이 달려있는데 물까치조차도 외면했다. 먹지 못할 열매인 것이다. 솎아주었으면 좀 나았을까. 젖이 부족한 어미처럼 흙도 나누어 줄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옆에는 천리향이며 작약이며 다른 초목이 잔뜩 심어져 있었다. 


먹지 못할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블루베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끔했다.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꿈은 많고 뜻은 높았으나, 욕심은 주렁주렁했으나 쓸 것이 없는 내 모습이 자꾸 보였다. 여러 사람 괴롭히고 상처 준 기억은 많은데, 누군가를 도와주고 이해하며 함께 웃고 평화로웠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먹을 것 없는 빈한한 인간이고, 쓸 데가 없는 인생이었다. 까치밥처럼 뻘겋게 붙어있는 블루베리를 보며 나는 참회를 했다. "나도 너와 같은 존재이나,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너처럼 되지 않겠다." 


8월의 블루베리는 타산지석의 교훈이었다. 못 먹는 블루베리는 있어도, 못쓰는 블루베리는 세상에 없었다. 




나이 70줄에 들어선 딸을 허구한 날 못살게 굴던 어르신이 계셨다. "순자(가명) 이년 어디 갔어? 어? 여기 좀 데려와! 옆방에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좀 데려와! 그년 여기 와서 한 번 살아보라 그래! 나를 여기 처넣어 놓고,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지도 여서 고생해 봐야지!" 어르신이 딸에게 퍼붓던 모진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어르신은 어린 딸 순자를 친지에게 맡겨놓고 개가를 하셨다. 순자는 엄마에 대한 미움으로 골병이 들었다만 90이 넘은 모친의 병수발을 들었다. 순자는 칠순이 넘었지만 보약을 먹지 않았다. "우리 엄마처럼 오래 살면 안 돼~" 하며 조용조용 웃었다. 


배다른 자식들이 요양병원으로 면회를 오면 "나는 괜찮다, 잘 있다. 너들이나 잘 묵고 잘 지내라." 하시며 웃으셨다. 가족은 화목해 보였다. 순자에게는 못되게 굴었다. 그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어르신이 밉살스러웠다. 어르신이 고함지르며 불평을 할 때마다 직원들은 속으로 다짐하고 결심했다. "나는 늙어서 저렇게는 되지 않겠다."


그 어르신이 오늘 임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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