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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향기 Aug 12. 2021

엄마는 치매


무턱대고 기차를 타고 와서 "대전역인데... 데리러 와" 하실 때만 해도 몰랐다. '나이 들수록 엄마는 대체 왜 저러시나' 싶었다. 가족과 뚝 떨어져 지내다 보니 엄마가 치매를 앓기 시작한 걸 몰랐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부산 바닷가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뵈러 갔다. 엄마는 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엄마도 어린 아기였던 우리를 한없이 어루만지고 안아주었듯이, 아픈 우리의 머리맡을 지켰듯이, 엄마 등을 밤새 쓸어 주었다. 


의사는 더는 해줄 것이 없다 했다. 바다 바람에 커튼이 일렁이는 엄마의 집으로 모셨다. 낡고 익숙한 엄마의 이부자리에 눕혀 드렸다. 우리 형제는 마음이 놓였지만 엄마도 편안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미 병원과 집을 구분하지 못했다.


엄마는 곡기를 끊었다. 어린 우리가 밥을 안 먹어서 엄마를 애태웠듯이 우리도 애가 탔다. 어린 우리가 이유식을 받아먹으면 손뼉 치며 즐거워했듯이, 엄마가 한 모금의 물이라도 마시면 마음이 풀리고 기뻤다. 단 한 모금의 식사를 위해 진액이 나오도록 누룽지를 끓이고 또 끓였다. 구수한 누룽지 향기가 속을 풀어줄 것만 같았다. 우리를 위해 엄마는 기꺼이 누룽지 진액을 받아먹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속마음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어린 우리를 오로지 입히고 먹이려 했듯이, 우리에게 어떠냐고 물어볼 줄 몰랐듯이 우리도 그랬다. 어린 나에게 왜 그렇게 했냐고 원망했듯이, 엄마도 나를 왜 편안하게 놔두지 않았냐 하실지도 모른다. 엄마가 양육에 무지했듯이, 우리도 죽어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아버지하고 싸우면 부엌에서 혼자 구시렁거리셨듯이, 엄마는 가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알아들으려 애를 썼다. 엄마도 옹알이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귀 기울이며 뭐든 대꾸를 해 주었다.


엄마의 똥오줌이 더럽지 않았다. 엄마가 우리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행복했듯이, 똥이 이쁘다고 좋아하고 똥이 묽다고 걱정했듯이 우리도 그랬다. 엄마의 똥을 살피고 오줌량을 기록했다. 그렇게 깔끔하고 자존심 강하던 엄마가 이젠 이 모든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기꺼이 타인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자존심이 뭔지 몰랐던 그때, 우리도 기저귀 갈아주는 엄마를 향해 방긋거리며 웃었다.


엄마도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나 역시 지키고 싶은 내 삶이 있었을 때, 우리 모녀는 양보하지 않고 싸웠다. 치매가 깊어질수록 엄마가 붙잡아야 했던 모든 삶은 의미가 없어졌다. 엄마의 기억에서 다 사라져 버렸다. 돈, 집, 안락함, 미래, 외로움, 알 수 없는 불안들... 싸울 일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되던 갓난쟁이를 둘러싸고 모두가 행복했던 그때처럼, 한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며 우리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죽음 언저리에 서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까맣게 잊고 살다가 가끔 엄마가 생각나면 엊그제 본듯하다. 미안하고 죄송한 것 밖에 없다. 유자를 품어와도 반겨줄 이가 없는 것처럼 이제와 후회해도 갚아드릴 엄마가 어디에도 없다. 살아생전 우리 모녀는 왜 지금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없었을까.


"어린 너에게 내가 참 미안했었다."는 문자를 막내에게 보냈다. "나는 동생을 외롭게 만들었지만, 이해하고 안아줘서 고맙다."는 문자는  올케에게 보냈다. 제주도가 아름답다며 사진을 잔뜩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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