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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Oct 28. 2020

밤 11시에 오는 전화

백트래킹 & 피드백



매일 하는 통화, 같은 얘기 반복



가족과의 대화는 일상의 반복처럼 특별한 게 없다. 아니, 가족과 함께 하는 다양한 경험이 없다. 가족 간에 할 얘기가 없다는 건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더욱 공고히 한다.

밥 먹어라. 일찍 일어나라. 취직 안 해?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등등의 잔소리와 간섭도 가족 간의 흔한 얘기다.


듣기 싫은 얘기가 반복될수록 가족관계마저 깨진다. 같은 목소리, 같은 표정, 같은 느낌, 같은 감정은 반복되는 고문과도 같다.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는 것처럼 말이다.


직장에서의 대화도 크게 다를 건 없다. 한정된 공간,  매일 만나는 사람들,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사회 초년생과 같은 열정과 활기를 띠기란 힘겨운 일인지도 모른다. 매일 하는 일인데도 피로하고, 경쟁사회에서 성장은 쉽지 않다.


사회에서 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는 선후배, 동료를 만나기란 더더욱 어렵다. 대화라고 해봐야 일에 관해서이고, 그 외의 이야기는 피상적일 뿐 딱히 깊이는 없다.


탄탄한 직장이 있어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외로움과 허무함에 시달리는 것은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어서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얘기들. 심지어 친구들에게조차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사람들은 상담 때 털어놓곤 한다.



밤 11시에 걸려온 전화



- 거기 상담센터죠?


주로 밤에 오는 익명의 전화로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 밤 10시까지는 문의 전화지만, 11시에 오는 전화는 백퍼 상담전화다. 그리고 내게 혼자 끙끙 않던 속내를 꺼내놓는다.


상담전화의 내용 대부분은 상상을 초월한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은 상담사인 나조차도 당혹스럽다. 센터로 직접 찾아올 정도면 그나마 나은 것이다. 상담사 얼굴을 보기 어려울 만큼 전화상담을 청하는 그들은 최악의 상태다. 

그럴 때마다 가족이란 무엇이고, 친구나 직장동료들은 무엇일까, 의구심이 든다.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어야 하고 상처를 보듬는 것도 가족이어야 한다.

그런데 끝까지 알리고 싶지 않은 대상이 가족이다. 가족이 받을 상처 때문이 아니다. 가족이 제일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밤 11시에 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거리곤 했다. 타인의 비밀을 안다는 건 슬픔이자 고통이었다.

심리상담사는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나 또한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슴에 멍울이 진다. 인간관계의 허망함 때문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마음이 뭐 그리 좋겠는가.

그것을 통해 그들은 잠시나마 속은 후련할지언정 더욱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밤 11시에 오는 전화는 대면상담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대면상담이 쉬우면 늦은 시각에 전화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한 번의 상담으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마음이 절박해지는 건 내 쪽이다. 혹여 자살만큼은 막을 수 있게 대화를 이어나가거나,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답답함을 해소시켜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그게 잘못이라며 옳고 그름을 재단하지 않는다. 절망 후엔 빛이 있다는 막연한 희망도 주지 않는다. 그저 현재의 그들 모습 그대로 공감하고 인정하려고 할 뿐이다. 


어떤 불행은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하지만, 진정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밤 11시에 걸려온 전화상담은 그 어떤 상담보다 힘들고 정신적 데미지도 심하다. 그렇지만 그 어떤 상담보다 인간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중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아니, 자신조차도 모른다. 가족이라도 알기 어려울 테고, 친구나 직장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매일 만나는 가족들과 직장동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불행할 때 함께 하는 친구가 진짜 친구란 말도 있지  않은가.




대화가 인간관계를 정한다



자살을 막는 골든타임은 5분. 누군가 대화할 사람만 있어도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인간의 표현하려는 본능은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소통이 곧 생존이다. 소통이 막힐 때 가장 힘들다. 

소통은 인간관계에서도 갖은 문제와 상처의 원인이 된다. 가족문제도 소통불가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부부, 직장생활, 친구관계, 이웃관계도 각자의 사고 패턴, 즉 언어 패턴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오늘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가.

상대의 말이 어떻게 들렸고, 어떤 자극을 받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마음으로 말을 전달하였는가.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로는 신선한 자극이나 동기부여가 되진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진솔한 대화를 하는 것은 소통의 기본을 닦는 자세다.

나와 네가 진심으로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자세가 백 마디 하는 것보다 낫다.


대화의 기본 : 매칭

시선을 맞추고,
목소리를 맞추고,
호흡을 맞추는 것.


상대와의 거리를 알려면 이와 같은 방법으로 테스트해보면 된다. 가족인데 시선을 마주치는 게 부자연스럽고, 스킨십이 어색하다면, 원활한 대화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선천적으로 스킨십이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화할 때 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상대와의 관계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인간관계를 관리하지 않으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백트래킹 & 피드백

1. 백트래킹 :  상대인 S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 S : 오늘 출근하는데 차가 엄청 막혔어요.
- 나 : 출근하는데 차가 막혔군요. 그리고요?(그래서요?)
2. 상대의 말을 들을 때 표정이나 눈빛, 제스처, 또는 목소리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찰한다.
- 그때 상대의 말이 그려지는가?
- 그 장면 속의 소리가 들리는가?
- 그때의 느낌은 어떤가?
- S와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가?
3. 피드백 : 상대의 모습과 들은 것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나의 주관적인 느낌과 감정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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