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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Aug 09. 2020

영혼 없는 인형이 되었다

모델링


나와 다른 사람을 배운다는 것은 나의 패턴을 깨는 일이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해나가는 타입이다. 한마디로 멀티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 주 동안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순차적으로 해나가던 패턴이 깨졌다.


'그래, 피하지 말고 부딪혀보자.'


처음엔 호기로웠으나 해야 할 일들이 자꾸 생기니 점점 멘붕 상태에 빠졌다.  가지 일이 번갈아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나를 모니터링할 새도 없었다.   

집중하기 어려웠고, 피곤했다.


특히나, 어제 있었던 콜라보 프로젝트  두 개.

하나도 아니고 두 개라니.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과 콜라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생기는 마찰.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과 콜라보 프로젝트를 하면서 더욱 비교가 되었다.

그날의 과제는, 나와 전혀 다른 유형의 방식을 모델링하기였다.

문제는 그 방식을 공부해야 할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의미, 필요, 효율성이 중요한 나는 동기부여가 안 되면 움직이기가 어렵다. 배움의 의지가 꺾이고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영혼 없는 인형이 된 기분으로



며칠 서너 시간밖에 못 잔 상태.

프로젝트 두 개를 소화해야 하는 어제 아침, 정말 심각하게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때려치울까?'


나의 정체성을 잃은 프로젝트.

내 역할이 뭔지도 모르겠고,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콜라보의 의미도 모르겠다. 영혼 없는 인형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과 있으면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불쾌감. 신념, 가치,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부딪힘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래, 포기하자.'


다 때려치우겠다고 집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다.


'차라리 인형이 되어보자. 그럼 어때? 그래도 난데.'


내 방식을 완전히 놓아버려서야 나는 폭풍우 치는 바닷속에서 기를 쓰고 허우적대는 몸부림을 그쳤다. 어디로 흘러갈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파도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계속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시시각각으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이전엔 감정 컨트롤에 익숙했다면, 그 상황에선 감정을 느끼는 것만 있었다.


'지금, 여기!'


그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 묘한 희열감이 몰려왔다. 살면서 부단히 찾았던 삶의 의미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삶의 의미란 결국 자신의 기준일 뿐. 그 기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영혼 없는 인형이 되는 느낌조차 편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자세.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이든 본래의 내 것인 양 수용하는 유연함이야 말로 나를 성장하게 하는 핵심 키였다.



나의 세상을 넓히려면



경험하고 나면 익숙지 않은 데서 오는 거부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다른 방식을 알지 못하니 수용할 수 없고, 수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고. 그게 싫어서 아예 단절하거나 무턱대고 받아들이거나. 또다시 부작용의 반복.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마치 네모난 틀에다 동그라미를 억지로 끼우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동그라미가 말랑말랑하고 유연해서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떤 틀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배우는 것은 나의 기준을 깨뜨리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수용을 하든 체념을 하든 난 무언가를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세상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로 모여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편하지만, 공감대가 없으면 불편하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만 이물질 골라내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편을 줄이기 위해선 상대의 경험 방식을 배우면 된다. 

어떤 이유와 필요성보다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아는 만큼 내 세상은 넓어진다.


나의 기준(신념, 가치, 방식, 필터)을 깨는 방법

1. 나와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2. 나의 기준이 적용되는 상황 또는 사건 하나를 이야기한다.
3. 1번의 사람에게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질문한다.
4. 이때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지 확인한다.
- 경험의 순서를 적는다.(경험의 시작부터 끝까지)
5. 2번 상황에서 4번의 상대의 경험 순서대로 상상해본다.
- 같은 상황에서 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적용하기
6. 느낌이나 감정이 어떤가?
7. 피드백


이 세션은 상대의 방식을 꼭 배우기 위함이 아니다.

나와 정반대의 방식을 내 상황에 적용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상상했을 때 거부감이 심하거나 아무 느낌이 없다면, 나의 기준이 그만큼 강하다는 척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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