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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Sep 18. 2020

외국인과의 첫 대화

비머(BMIR)


I don't speak English.



3주 만의 웨비나 참석이다. 언택트 시대에 발맞춰 줌 zoom으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마지막 시간이었다.

코치님이 인도에서 수 나이트 선생님에게 함께 훈련을 받은 친구 Ramesh Prasad를 초대했다.

그를 모델링하는 수업 방식.


"오, 재밌겠다."


영어를 못하지만 듣는 것도 경험이니까.

그런데 점심때 코치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트레이너 네 명이 각자 모델링 질문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엥? 영어로? 영어 못하는데?"


이를 어쩌나?

갑자기 해야 할 영어 대화에 막막함이 밀려왔다.

무슨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지?

라메시에게 배우고 싶은 게 뭐가 있지?

외국인과 세미나는 어떻게 진행하는 거지?

의문들이 솟구쳤다. 부랴부랴 번역기 앱을 깔고 간단한 질문 하나를 입력했다.


What are the  thinks you must care about when training? I want to learn how to treat clients as trainer.


- Please, little bit make the question specific, small chunk.


"구체적인 질문이면 영어로 더 말을 해야 하잖아."


나는 간단한 질문만 하고 나머지는 코치님이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갈수록 태산이네."



언밸런스한 대화



8시. 세미나 시간이 되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접속이 늦는 라메시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드디어 라메시 입장!




 질문자를 자청한 분은 제주의 보미님. 영어를 잘하시는 분이다. 역시 능숙하게 라메시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간간이 아는 단어는 귀에 들어오는데 내용은 전혀 모르겠다.

 

 번째 질문자는 호연님. 더듬더듬 영어를 하지만 라메시의 말을  알아듣진 않는다. 어떤 부분에선 울컥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왜 울지?'


내용을 알 수 없는 나는 의아한 채로 멀뚱멀뚱 호연님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대화가 안 된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공감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번째 질문자는 춘원님. 웃으며 대화하는데 말이  통하는 느낌이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신세. 말을  알아들으니 지루하다.


'다들 영어를 잘하는데  어쩌지?' 하는 걱정 보단 집중이  돼서 그게  고역이었다. 게다가 이건 질문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럴  알았으면 영어 공부  할걸.  


마침내 마지막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낮에 달달 외웠던 건 머릿속에서 싹 지웠다. 그건 대화가 아니었으니까.


Thank you for coming, Ramash.

I don't speak English. So I use a translator.

I'll read what I wrote.

I went to the beauty salon to look good to Ramash.

It's rare to be able to see someone.

You're lucky. I'm lucky to have met you.


노트를 보고 또박또박  줄씩 읽었다. 라메시는 나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고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나는 읽고 그는 듣는다.

언밸런스한 대화였다. 사실 대화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 이야기를 몰입해서 듣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무한한 공감과 감동을 느꼈다.



대화란 무엇인가



나는 청각유형이기에 발음이 뭉개지거나 두서없는 말을 싫어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급격히 올라간다.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다.

그런데 라메시 앞에서 내가 그러고 있었다. 외국말이어서가 아니었다. 유연하지 못한 나의 방식 때문이었다.

내겐 유용한 번역기가 있었고, 번역을 도와주는 코치님도 있었다. 심지어 달달 외우기도 했는데, 라메시처럼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편하게 대화를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대화는 정보 전달에만 있지 않다. 상대의 표정, 느낌만으로도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 그걸 놓치고서 내용 파악에만 집중했던 내 모습이 보이자, 그동안 답답한 건 상대가 아니라 나였다는 걸 깨달았다.



언어가 안 통하면 진짜 connection이 일어난다



모든 세션이 끝나고 내 피드백 차례가 돌아왔을 때, 말을 하다 말고 별안간 울컥했다. 내게 보여준 라메시의 경청 태도가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그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내용 파악에 급급했을 뿐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아니, 공감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진짜 대화를 해본 게 얼마나 될까.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앞서 호연님의 눈물이 이제야 공감이 되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호연님의 그때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라메시를 통해 대화의 성숙한 자세를 배웠다. 상대에게 집중해서 듣는 표정과 느낌만으로 무한한 감동을 받을  있다는  놀랍다.

그동안 훈련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경청.

언어가 통하지 않는 라메시와의 대화로 직접 경험해 보니, 비로소 경청의 의미를 알겠다. 경청은 내용보다 듣기 자세에 있다는 걸.


새로운 경험은 배움이 있고 감동이 있으며 감사로 이어진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감사다. 상대의 존재만으로 사랑한다는 건, 나도 같은 존재란 걸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비머(BMIR): 내면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 자세, 동작, 표정 등을 관찰한다.
- 목소리, 어휘, 고저, 크기 등을 관찰한다.
- 상대의 외부 정보를 통해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 선호하는 만큼 그 감각 경험을 자주 경험하고 의지한다. 그 사람을 관찰하면서 어떤 유형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 커뮤니케이션은 말의 내용에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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