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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Aug 24. 2020

대화를 막는 7가지 유형

대화의 기술


아저씨, 그만 좀 떠들어요!



구로디지털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

맞은편에 중년 부부가 앉아 있다. 나도 모르게 남자의 입에 시선이 고정됐다. 모터라도 달린 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 옆에 앉은 아내의 표정이 뚱하다. 듣기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만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남편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아내는 고집스럽게 인상이 굳어진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남편보다 덩치도 있고 투박한 인상의 부인이 남자 같고, 왜소한 체구에다 곱상한 외모의 남편이 여자 같다.


수다스러운 남편과 무뚝뚝한 아내.

분위기도 성격도 극과 극인 두 사람이 어찌 살았을지 호기심이 일었다.

남편의 표정은 밝은 반면 아내의 표정은 어둡고 무겁다.

쉴 새 없이 떠드는 남편은 아내가 듣기 싫어한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걸까?

아니면 공허한 메아리라도 상관없으니 수다에 의미를 두는 걸까?

보고 있는 나도 스트레스인데 아내의 입장에선 얼마나 고역일까.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소음에 불과한 부부의 모습에서 전형적인 소통불가를 보는 듯했다.


아내는 남편이 떠들든지 말든지 가방 안에서 핸드크림을 꺼내더니 손에 쓱쓱 바르고는 도로 넣었다. 남편이 손을 내밀며 자기도 달란다. 남편을 쳐다보는 아내의 눈빛에 짜증이 가득하다.

남편은 끊임없이 얘기하는 동안 아내를 쳐다보지 않는다. 방금도 아내의 짜증 섞인 표정을 읽지 못한 채 핸드크림만 요구하고 있다. 아내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가방 안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건네준다. 남편은 또 해맑은 표정으로 핸드크림을 쓱쓱 바르며 뭐라 뭐라 얘기한다. 들고 있던 알록달록한 무늬의 접이용 우산은 사타구니 사이로 찔러 넣었다.


'아저씨, 남대문 열렸어요.'


남대문이 열린 것도 모르고 계속 떠드는 그를 보자 가슴이 답답하다. 자기 세계에 빠져 제 모습조차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온 탓에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부부가 아니라 삶에 지친 엄마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아서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대화를 막는 7가지 유형



1. 대화할 땐 상대를 보면서 하자.


'나, 누구랑 얘기하니?'


우리나라는 상대의 눈을 보고 얘기하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고 가르친다. 상대가 연장자일 땐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눈 깔아!'가 나왔을까.


빤히 쳐다보는 건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수 있지만, 얘기하는 내내 딴 데를 보고 있으면 소통이 아닌 혼잣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상대의 표정, 자세만 같이 해도 공감대가 형성된다. 내 얘기를 집중해서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아무에게도 하지 않던 속사정까지 술술 나올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기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상대는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면 대화하고픈 마음도 사라진다.


2. 일방통행인 말은 대화가 아니다.


"오늘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나갔는데..."

"나도 약속 있었는데. 가는 길이 너무 막히는 거야. 코로나로 난리인데도 웬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이럴  땐 집에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좋아. 약속 시간 늦었다고 친구는 뭐라 그러지. 도로는 막히지. 짜증 나."

"내 말 좀 들어봐."

"응. 얘기해."

"실은 그 친구 생일이었거든. 선물을 준비하려고..."

"선물 뭐 샀는데? 난 내 생일에 아무도 연락 없더라. 어쩌고 저쩌고..."


상대가 말을 꺼내는 족족 가로채서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제 생각을 말로 꺼내기에 급급한 사람.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람이다.

대화란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피드백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내 생각이나 의견을 덧붙이기 시작하면 왜곡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3.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달인은 기피대상 1호


충조평판에 익숙한 사람과의 대화는 썩은 물을 억지로 마시는 기분이 들게 한다.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그들의 삶을 보면 또 본받을 만한 구석도 없다. 말의 힘이 하나도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다. 자동적으로 신뢰감도 떨어진다.

이런 사람을 두고 친절한 금자 씨는 말했지.


"너나 잘하세요."


4.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내용이 무한반복이다. 내용이 같으니 감정도 똑같다. 만날 때마다 힘들고 속상하고 외롭고 서운하고... 제 심정 토로하느라 바쁘다.

그놈의 레퍼토리는 외울 지경이고 상한 감정을 위로하기도 지겹고 지친다. 마치 네다섯 살 아이와 있는 기분이다.

나는 상대가 감정을 가래침 뱉듯 뱉어내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덩달아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는 못할망정 어둡고 부정적인 에너지로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사람들과는 함께 있는 게 고역이다.


5. 이중 메시지


싸늘한 눈빛으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 공포영화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 해보셨는지...?

실제 그런 어머니에게 양육받은 아이가 정신병에 걸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대화하면 할수록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서 혼란에 몰아넣는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진짜 속내를 감추고 가면을 써서 스스로도 어떤 게 진짜 자기의 모습인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너무너무 피곤하다. 있는 그대로의 대화가 되지 않고 의도를 파악하느라 진이 빠지기 일쑤다. 피드백을 해도 자신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짜 의도를 자기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모습을 직시하는 게 중요한데 이들의 특성은 몰입이 너무 강해서 객관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6. 깐족 대마왕


"요즘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돼서 힘들어."

"언젠 잘 됐냐?"


조상대에 짚신을 꼬았는지 DNA에 비꼬거나 깐족댐이 아로새겨진 사람.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에서도 실실 쪼개며 불난 집 부채질하는 얄미운 사람. 스스로 매를 버는 타입이다.


대화하다 보면 울화를 치밀게 하는 사람으로서 인간관계가 좋을 리 없고, 재수 없는 이미지를 기본으로 장착한다.

대화를 하는 건지 시비를 거는 건지. 더 화가 나는 건 열 받게 하고서 적반하장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 말도 못 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기술이 어찌나 놀라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7. 성의 없는 태도


"넌 어떻게 생각해?"

"아무 생각 없는데?"


일방적으로 혼자 떠드는 것도 문제지만,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


'내가 뭐 실수했나?'


원인이 나한테 있는지 신경 쓰여서 함께 있는 내내 긴장하게 된다. 배꼽 잡는 얘기를 해도 무반응이면 원맨쇼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성의 없는 태도에 마음도 불편하고, 당최 피드백이 없으니 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외에도 대화를 김새게 만드는 유형은 더 있겠으나, 7 가지만 추려 보았다.

나의 대화 스타일은 어떤지 살펴보자.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언어 재테크로 주가 상승할 수 있는 대화의 기술.


있는 그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피드백하기.
조언보단 공감이 먼저.
이 2 가지만 지켜도 한결 편안한 대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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