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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퇴고

웹소설 작업 과정/퇴고

by 날자 이조영

편집자의 피드백을 참고로 퇴고한 지 3일째다.

초고를 쓸 때와 퇴고할 때의 강도를 비교하면, 열 배 이상이 차이 난다. 초고를 쓸 때는 에너지도 넘치고 재밌던 글이 퇴고할 땐 에너지를 야금야금 빼먹는 괴물 같다.

글에 한 번 몰입하면 식사도 거를 때가 많다. 중간에 끊었다가 다시 감정선을 잡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이중 일이 되지 않기 위해 맥을 끊지 않고 쭉 연결해서 퇴고하는 편이다.


초고

초고는 줄거리를 쓰듯이 하기 때문에 지문에 가장 손이 많이 간다. 짧게 쓴 문장을 고치거나 늘이다 보면 분량이 늘어날 뿐 아니라 장면을 더 넣어야 할 때도 있다. 대략적인 장면과 표현들을 디테일하게 바꾸는 과정이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끊기가 쉽지 않다.


인물

초반에 인물들을 각인시켜야 하기에 인물이 돋보이도록 개성과 매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이 많아진다.

시놉시스에서 인물 설정을 했다 하더라도 실제 써보면 표현하는 것에 따라 차이가 크다.


문장

문장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작가 특유의 문체와 정서가 느껴진다. 순서와 단어 하나만 바꿔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정서에 맞게 문장도 써야 한다. 슬픈 내용인데 발랄하게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단어

단어마다 어감이 달라서 어감상 더 나은 단어로 바꾸기도 한다.

어미도 마찬가지다. 문장의 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글맛이 달라진다.

의성어와 의태어, 부사와 형용사, 감탄사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건 흑백 사진에 색을 입히는 것과 같다.

오감이 살아 있는 글은 문장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장면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


맥락

전체를 읽었을 때 어색하거나 걸리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막힘 없이 한 번에 쭉 읽히는 글은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렇듯 고쳐야 할 것 투성이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퇴고의 다른 말로 수정한다고도 하는데,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나오는 인물에 수정이란 이름도 쓰지 않는다.


완성도

웹소설은 10 포인트로 회당 5~6 페이지, 5천 자 기준이다.

나는 보통 6 페이지를 한 회로 잡는데, 100화면 600 페이지. 책 한 권 분량을 150 페이지라고 치면 총 네 권이다.

앞으로 완결할 때까지 편집자와 쓰는 족족 퇴고를 반복해야 한다.

론칭을 하려면 일단 1~5회 분량을 1차 퇴고하고 2차 피드백을 받는데, 1차 퇴고가 잘 되었으면 바로 교정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2차 때 조금이라도 편하려면 1차 때 완성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은 다각도로 바라보고 나만의 표현력을 기르는 것뿐이다.




기획부터 1차 퇴고까지 작업 과정을 정리하면서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리하면 할수록 막연했던 그림이 선명해졌고, 점차 입체적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자가, 문장이, 내가 만든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다. 같은 내용을 눈이 빠져라 보면서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퇴고할 땐 다시는 글 안 써, 란 말이 푸념처럼 나온다.


그러나 맨땅에 헤딩하듯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덧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매번 창작의 기쁨을 안겨준다. 해냈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한다.

작가라는 타이틀에 작품 하나가 더 붙는 것뿐이겠지만, 힘들게 그 한 줄을 만들기 위해 보낸 시간과 땀은 인생의 한 조각으로 남는다.

장면들이 이어져 소설이 되듯이 그 조각들이 이어져 ‘작가 이조영’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퇴고라는 괴물 때문에 많이 울었지만, 그 덕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웹소설 작가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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