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자 이조영 Jan 14. 2023

새벽 6시에 벨을 누르는 남자

딩동댕~ 딩동댕~

단잠에 빠져 있는 새벽. 느닷없는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깼다.

옆에서 자고 있던 강아지 ‘두부’가 쏜살같이 거실로 뛰어나가 인터폰에다 대고 멍멍 짖었다.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아직 사위가 어둑하다.

몇 시인지도 모르겠고, 귀찮은 생각이 먼저 든다.

강아지가 짖으니 안 일어날 수가 없어 거실로 나갔더니 인터폰에 웬 남자 모습이 보인다.      


‘집을 잘못 찾아왔나?’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인터폰이 꺼져버렸다.

내가 나가자 두부도 더 이상 짖지 않고 앉아 있다.

거실 불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데, 두 번째 초인종 소리가 들리며 인터폰이 켜졌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이야?’     


약간의 불안과 함께 거실 불을 켜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     


화면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댄 남자는 20대로 보였다.   

   

“옆집에 젊은 부부가 사나요?”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새벽에 그걸 왜 물어?

층간소음 때문인가? 주차 때문인가?     


“네?”

“옆집에 젊은 부부가 사나요?”     


똑같은 질문이다.

나는 그새 남자의 인상착의를 살피며 새벽에 남의 집에 초인종을 누르고 할 수 있는 질문을 예측했다.

젊은 부부를 찾고 있다면, 보통 몹시 미안해하며 초인종을 누른 경위를 먼저 설명할 거 같은데…….

이 남자는 대뜸 앞뒤 다 잘라먹은 저 간략한 문장 한 줄 뿐이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번째는 그렇다 치고, 상대방이 반문하면 몇 자라도 설명을 덧붙일 법도 한데.      


“모르겠어요. 뭣 땜에 그러시는데요?”     


하는 수 없이 내가 물었더니, “죄송합니다.” 한마디 하고는 옆집 쪽으로 사라졌다.

옆집에 가서 또 초인종을 누르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거실 불을 끄고는 소파 위에 있던 강아지를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몇 시인가 하고 핸드폰을 켜니 6시도 안 된 시각이다.

침대에 눕는데 갑자기 무서움이 확 몰려왔다.

괜히 초인종 눌러봐서 젊은 여자면 집에 들어오는 시도라든가, 이 집엔 젊은 여자가 살고 있구나 하며 다음 기회를 노린다든가……. 그런 놈일까 봐…….

공동현관 비밀번호야 지금쯤이면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어렵지 않게 들어올 수 있을 테고, 그 남자는 우리 집만 초인종을 누르고 말았는지 집집마다 다 누르고 다니는 건지도 모르겠고.

당최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다.      


화면으로 봤던 남자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봤다.

화면이 작은 데다 잠결에 봐서 그런지 본 지 3분도 안 됐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새벽에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른 뒤의 반응이라면, 얼굴에 조금이라도 미안한 기색과 함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누굴 좀 찾고 있거든요. 혹시 옆집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나 해서요.”라는 말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차갑고도 무표정하던 남자의 얼굴이 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걸 깨닫자 약간 후회했다.      

요즘처럼 남 일에 관심 없는 세상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게 일상다반사다. 이사 온 지 몇 달이 지난 나조차도 모르고 있으니. 안다고 해도 대답을 안 해줬을 거 같지만.(찾는 이유를 모르니까)




만약 옆집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졌을 때 나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범죄물을 보면 경찰이 이웃들에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범인의 인상착의다.

그럴 때 얼마나 똑똑히 기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대략적인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자를 썼는지 벗었는지, 옷은 뭘 입었는지.

기억나는 거라곤 얼굴형과 안경, 나이대, 무표정 정도다.      

평소 관찰을 강조하는 나로서는 깨달은 점이 많았다. 돌발 상황에서의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자다가 얼결에 불려 나갔다 하더라도 좀 더 관찰력을 키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뭔 일이지, 불순한 의도 갖고 초인종 누른 거 아냐? 등의 내 생각 회로를 돌리다가 자세히 관찰할 기회를 다 놓쳐 버렸다.      

새벽에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실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이상한 의도를 품은 게 전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앞뒤 다 잘라먹는 언어 습관을 가졌을 수도 있고, 제 쪽에서 부탁하거나 실례할 때는 사과를 먼저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다.

제 의도만 앞설 때 오해가 생기고 커뮤니케이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1. 제발 새벽 6시도 안 돼서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짓은 하지 말자. (불났을 땐 제외)

2. (뭔가를 부탁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 화면에 대고 미소라도 지어라.

3.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울 수도 있으니 “죄송합니다.” 정도는 기본으로 한 다음 본론을 말해라.      

끝!

매거진의 이전글 생강도라지대추차의 계절이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