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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영 May 07. 2020

무엇이 몸에 제일 나쁜가

공중보건에서 위험요소를 비교하는 법

무엇이 몸에 좋고 무엇은 나쁜가 하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큰 관심거리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긴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다양한 연구 결과 덕분에 꽤 정확히 알려진 내용도 많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리기 쉽다는 것, 가공육을 많이 먹으면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증가하고 섬유질을 많이 먹으면 낮아진다는 것, 공기 오염이 심한 곳에 살면 심장병으로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손을 잘 씻으면 각종 감염성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지요. 담배를 피우지 않고, 피운다면 다른 사람에게 간접흡연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깨끗한 물로 꼼꼼히 비누질해서 손을 씻는 습관을 들이면 됩니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어떤 정책을 펼칠 때에는 제한된 자원으로 어떤 것에 먼저 투자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 건강을 가장 크게 해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그것부터 고쳐나가도록 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지요.



국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서로 비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은 20배 이상, 심장병에 걸릴 확률은 2배 이상 증가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정도의 공기오염으로는 폐암이나 심장병에 걸릴 확률은 0.2배 정도 증가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공기오염보다는 흡연이 우리나라 국민 건강에 더 큰 해를 끼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요? 더군다나 흡연은 폐암과 심장병 말고도 구강암, 후두암, 식도암, 위암, 췌장암, 대장암, 뇌졸중, 당뇨, 천식 등등 수많은 다른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어떤 질병 하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만을 따져서는 어떤 요인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문제인지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담배가 미치는 악영향은 흡연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인 반면 공기 오염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어떤 요소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에 노출되는 사람의 분포를 고려해야 합니다. 담배의 경우는 흡연자의 비율이 되겠지요. 이렇게 특정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요소에 대해서 그 영향의 크기와 더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출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계산한 값을 "집단기여비(Population Attributable Fraction)"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폐암에 대한 담배의 집단기여비가 50%라고 하면 그 인구집단에서 발생한 모든 폐암 중 50%가 담배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된다는 뜻입니다. 담배만 아니었다면 전체 폐암 중 50%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집단일수록 집단기여비가 커집니다.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폐암에 대한 담배의 집단기여비를 계산해보면 남자에서 훨씬 높게 나옵니다. 남성폐암의 상당수가 담배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비해 흡연자가 많지 않은 여성폐암은 담배 때문인 경우가 별로 없는 것이지요. 담배의 해악이 큰 질병일수록 집단기여비는 커집니다. 똑같은 인구집단에 대해서 폐암에 대한 담배의 집단기여비가 심장병에 대한 집단기여비보다 훨씬 높게 나타납니다. 담배가 폐암 발병에 끼치는 악영향은 심장병보다 열 배쯤 높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담배가 악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모든 질병에 대해 집단기여비를 계산한 후, 각각의 질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값(사망률이라든지 건강보정수명손실 같은 값을 활용할 수 있겠지요)으로 가중치를 두어 합산하면 담배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총합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정수명손실에 대해서는 이전글 "에볼라와 장염, 어떤 병이 중요할까"를 봐주세요.) 폐암으로 사망한 사례 중 담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는 X 명 더하기 심장병으로 사망한 사례 중 담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는 Y 명 더하기 구강암으로 사망한 사례 중 담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는 Z 명 더하기... 이런식으로 담배만 아니었다면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해보는 것입니다. 이같은 계산 결과 2015년 전세계적으로 6백만 명 이상이 담배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공기오염에 의해서는 4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고요.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반영하려면 사망률 대신 건강보정수명손실을 사용하면 됩니다. 2015년 담배는 전세계적으로 1억 5천만 년의 건강보정수명손실을, 공기오염은 1억 년의 건강보정수명손실을 일으켰습니다. 담배의 해악에 비하면 공기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셈인데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인구 전체로 보면 공기오염의 중요성이 꽤나 커지는 것이지요.



2015년에 4백만 명이 공기오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건 바꿔 말하면 공기오염만 없었다면 4백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때 '공기오염이 없다'고 하려면 공기가 얼마나 깨끗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남습니다. 손쉬운 방법은 공기오염 기준치를 따르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미세먼지(PM2.5) 기준으로 연평균 10 ug/m3 이하일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연평균 10 ug/m3 정도의 미세먼지는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낮은 수준의 공기오염도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많은 반면, 아직까지는 어떤 연구결과도 이만큼까지의 미세먼지는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환경에서도 어느정도의 미세먼지는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미세먼지를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할 수는 없어요. 세계보건기구는 10 ug/m3라는 권고안을 만들고 각국 정부는 실정에 맞게 실천목표를 세웁니다. 우리나라의 대기환경기준은 연평균 15 ug/m3 이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치보다는 조금 느슨하지만 유럽연합 권고기준인 25 ug/m3보다는 높은 기준입니다. 2015년에 공기오염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4백만 명이라는 계산은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5.9 ug/m3 이하인 경우를 '공기오염이 없는 상태'로 가정한 결과입니다. 세계보건기구 권고안인 10 ug/m3을 사용했다면 공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즉, 얼마나 깨끗한 공기를 비교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공기오염의 중요성을 사뭇 달리 평가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종류의 계산에서 또 한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여러가지 요소들이 한데 얽혀있다는 사실입니다. 폐암에 대한 집단기여비는 여자보다 남자에서 훨씬 높게 나온다고 했지요? 남성폐암은 대부분 담배에 의한 것으로 평가되므로 금연을 통해 남성폐암을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는 반면 여성폐암은 담배의 집단기여비가 낮으므로 담배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한들 폐암을 예방하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만 생각해서는 간접흡연의 효과를 놓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금연하게 되면 담배의 집단기여비가 높은 남성폐암을 크게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간접흡연으로 인한 여성폐암까지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공기오염을 낮추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세먼지 농도를 떨어뜨리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둔다면 미세먼지 뿐만 아니라 오존이나 이산화질소, 이산화탄소 등 다른 공기오염 물질이나 온실가스 배출까지 함께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 출퇴근이 활성화되어서 어떤 지역의 교통량을 줄인다면 미세먼지를 포함한 다양한 공기오염 뿐 아니라 소음공해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운동량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겠지요. 공원 등 도심 속 녹지를 조성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공기오염과 소음공해를 낮출 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교류를 늘리는 효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정책이든 진짜 성과를 과소평가하지 않으려면 이런 부수적인 효과까지 빼놓지 않고 고려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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