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생인 저의 아버지는 웹소설을 쓰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적은 문장이지만 아직도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올해로 65살이 되신 아버지의 직업을 웹소설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몇 번을 생각해봐도 신기하고, 인생에 이런 일도 다 일어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고백하면, 최근까지도 저는 아버지를 좋아했던 기간보다 원망하고 미워했던 기간이 더 길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가족들에게 상의 없이 직장을 그만두셨고, 그 대가는 가족들로 하여금 그동안 당연한 줄로 알고 살았던 평범함과 안정감을 빼앗기는 것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 지나간 일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글로 적는다는 것은 제가 잊고 살았던 제 몸의 어딘가에 새겨진 상처의 흉터를 다시 건드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직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마냥 편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의 생각들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작년 어느 날, 아버지가 웹소설 작가로서 글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저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제게 어린 시절 너무나 많은 기대를 심어주었고, 대부분의 기대는 실망감이란 결과로 돌아왔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보다는 또다시 실망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동시에 3개의 소설을 연재했었다던 아버지는 그중 두 개의 소설은 연재를 중단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은 한 개의 소설은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지, 유료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고, 몇몇 출판사에서 계약을 위한 연락 메일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제 마음도,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나타나자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색 사이트에 아버지가 쓴 소설의 제목을 입력하면 위키 사이트에 아버지 소설에 대한 페이지가 생성되었다던가, 카카오, 네이버 등 다양한 웹소설 플랫폼에 아버지 소설이 올라가 있고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댓글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잘 되고 있긴 한가 본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계약된 에이전시에서 처음으로 정산금을 받았을 때, 제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남아있는 한 끝까지 써보겠다는 말도 꽤나 울림이 있었지만, 제가 그날 가장 뭉클했고, 마음이 찡했던 것은 정말로 오랜만에, 아버지가 직접 벌어들인 소득으로 제게 식사를 사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만큼은, 정말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할 일을 끝낸 뒤 침대에 누워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는, 오늘 업로드된 아버지의 소설을 1편 구매해서 읽어보고 좋아요 표시를 누르는 일입니다. 자기 전에 아버지가 쓴 소설을 읽어볼 수 있는 자식 된 자의 삶이라니, 그리고 그런 삶이 소설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제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일이라는 건, 분명 행복하고 좋은 경험일 것입니다.
자식 된 입장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글을 쓰고 계실 아버지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느끼며, 저도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라는 말, 제겐 영화 제목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인 줄 알았었지만, 2021년의 저는 멀지 않은 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기적은 진짜로 일어납니다. 정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