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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Dec 05. 2021

(25) 밥 사는 사람의 심리상태


 한 10년 정도 되었을까요, 제가 그 무렵 수능시험을 보고 일종의 버킷리스트처럼 노트에 '하고 싶은 일'을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이어리 같은 노트에 적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 실물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제가 적었던 '하고 싶은 일'목록 중에는 이런 항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 대접하기


 지금이라면 저렇게 적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20살 무렵의 풋풋함도 느껴지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우선 당시에 제가 왜 밥을 산다는 것을 '하고 싶은 일' 목록에 적었는지를 떠올려보면, 현실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상태에서 밥을 산다는 것은 꽤나 어른스러운 행동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밥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여유와 배려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니, 나름대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린 시절 저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근사한 식당에서 밥을 한 끼 대접한다는 것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생각이 제게는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10년 전 제가 '하고 싶은 일' 목록에 적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 대접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근사한 식당'이라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다른 사람에게 식사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부분만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렇지 못한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자세히 설명하면 지금의 저는 '밥을 살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받으면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특별히 감사의 대가로 식사를 대접받는 상황이 아닌 그저 식사 때가 되어 같이 밥을 먹는 상황이 된다면, 저는 꼭 제가 밥을 사는 편입니다. 결제를 나눠서 하거나 나중에 계좌이체를 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제겐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 밥을 사도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저는 그 몇 초간의 정적을 견디지 못해 제가 결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엔 이런 상황에서 제가 부담 없이 결제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사실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들 바쁜 상황에서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 저를 만나 시간을 보냈으니, 제가 결제하는 것이 이 시간을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저의 행동방식이 사람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인간관계가 꾸준히 이어지다 보면 밥을 사는 것은 자연스럽게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는 것일 텐데, 저는 아직까지 인간관계가 서툴기 때문인지 밥을 사는 행동을 통해 식사자리에서 있었던 저의 여러 가지 행동과 말실수 대한 면책권을 얻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제가 봐도 잘못되었습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밥 샀으니 나는 좀 실수해도 괜찮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인간관계를 하면서 제가 반드시 말과 행동에서 실수를 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듯 계산을 통해 최소한의 면피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와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식사자리에서 돈을 내지 않더라도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사람이기에 모임에 종종 초대받거나 하는 사람들 말이죠. 최근에 제가 만난 지인이 바로 이런 분이셨는데요, 한 달에 모임을 정말 많이 가지시길래 식사비용이 얼마나 많이 나가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은 보통 사주시는 분들이 많아 그리 많이 나가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만약 제가 어린 나이었다면 '이 사람 뻔뻔한 거 아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식사비용을 결제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식사비용을 누가 결제하든, 함께 식사하며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자 하는 어른들은 정말 많다는 것을 저도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런 분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참 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물론 저처럼 일부러 맞장구를 치지도 않으며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간중간 유머나 재치가 돋보이는 말과 경험담을 유려한 말솜씨로 풀어내는 것 역시 이런 분들의 특징인 듯합니다.


 저는 아직 이런 사람이 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같은 장소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택하라고 한다면 정말 멋지고 훌륭한 분이 저와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해도 저는 혼자서 식사하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이런 저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질지, 마음의 달라짐이 행동으로 이어질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할 때 조금은 더 편한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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