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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Feb 07. 2023

ep.17 [이탈리아] 지나온 여정의 마침표

이탈리아 베니스, 피렌체, 로마에서



ep17.

지나온 여정의

마침표


쓰라린 배의 통증은 늦은 아침의 시작을 알렸다. 오늘만큼은 푹신한 침대에서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에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베니스의 숙소는 조금 특이하였다. 문을 열면 어떠한 장애물 하나 없이 도보와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꾀죄죄한 상태로 문을 연 뒤 고개만 빼꼼 빼내었다. 음 나쁘지 않군. 설사 지나가는 행인이랑 눈이라도 마주칠까 얼른 문을 닫고 재빨리 씻으러 향하였다.


준비를 하는 내내 기운 없는 몸뚱아리를 뒤로하고 머릿속으로 짱구를 열심히 돌렸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지?

어제 하늘, 땅, 물살 가르며 하루를 완벽하게 날렸기에 최적의 경로로 보고 싶은 것을 양껏 즐기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과다 갬셩의 섬

수상택시를 타고 우리가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부라노섬이었다. 작은 섬에는 크나큰 관심은 없었지만 안 가면 서운할 것 같아 가장 유명한 부라노 섬만 들리기로 하였다. 부라노 섬에 발을 디디자마자 형형색색의 건물들 우리 눈을 밝혀주었다. 관광지임을 온몸으로 티 내듯 작은 물살을 끼고 깨끗하고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한치의 흐트럼 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야 재밌다

예쁜 외관을 가진 장소지만 인조적인 느낌이 강하고, 딱히 할 것도 없고, 잔잔한 생리통으로 몸에 기력까지 없어 여행의 흥미가 확 떨어진 나는 이곳에 있는 내내 제자리걸음을 하듯 옹졸한 발걸음 지속하였다. 그렇게 몇 분을 맥아리 없이 부라노섬을 간 보듯 돌아다니다가 이왕 온 거 밥이나 먹고 가자 싶어 보이는 집 아무 곳이나 들어가 피자랑 파스타를 먹고 이곳을 탈출하기로 하였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음식이 점점 더 짜지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약간 짭짤한 정도였기에 나름 맛있게 해치웠다. 두둑한 뱃살 빼고는 별 수확 없이 부라노섬을 탈출하려던 찰나, 아까보다 강렬한 햇빛이 나의 눈을 덮쳐왔다.


아악 뭐야!!!
어머 어머 심봤다

몇 발자국 내딛자마자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이 생긴 청순미남이 나를 반겨주었다. 고개를 촥 젖히고 내리쬐는 햇빛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가 살며시 뜨는데 지금 슬로우 모션이 걸렸나 싶었다.


왜 이제 나타난 거죠 왕ㄷㅑ님
왁!!!! 엄마 나 방금 진짜 잘생긴 사람 봤어!!!!

유럽 여행 내내~ 이랬던 나를 바라보며 오마니는 약간의 걱정을 하는 듯 장난 반 진담 반 한마디 던졌다.


OO아, 너 여행하다가 잘생긴 사람이 따라가자 하면 따라갈 거니?
고민을 왜?

동태에서 황태가 되기 직전 청순극락으로 생태가 된 나는 아주 행복하게 수상택시를 타며 본섬으로 들어왔다. 어쩌면 나 부라노섬 오길 잘한 거 일 수됴,..?


본섬에 왔으요

본섬은 베니스의 특색이 팍팍 느껴졌다. 드디어 제대로 된 베니스의 매력을 보게 된 것 같다. 풍경이 너무 좋은데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약간씩 오락가락하였다. 잔잔하게 지속되었던 복통으로 매력적인 이곳을 즐길 여유가 없어 지나가는 길에 약국이나 있으면 들리려 했더니만 끝내 찾지 못하고 다리를 질질 끌며 본섬 분위기를 감상하였다. 그래도 부라노섬과 달리 걷는 것만 해도 재밌었다. 지나가는 나룻배가 보인다. '챠오~' 인사도 한 번 건네주고 자그마한 물줄기 위 다리도 지나가 본다. 아래를 보니 이끼가 가득하였다. 그래 다 완벽할 수 없지.,.


이탈리아는 요리뿐만이 아니라 커피에도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나라이다. 현재 한국 갬셩카페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서서 먹는 에스프레소 문화를 영문도 모른 채 '커피가 맛있으니 함 묵어야지!' 하면서 냄새를 따라 이름 모를 커피숍에 들어섰다. 이탈리아를 가면 에스프레소, 카푸치노를 먹어봐라~라는 생각이 번뜩 나 카푸치노 2잔을 선택하였다. 결제를 마치니 주문번호가 적힌 종이를 주며 옆으로 가서 이 종이를 건네주라고 하였다. 먼저 주문한 옆 사람을 눈치껏 따라 하며 어버버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이탈리아 카푸치노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자리가 없는데..? 뭐야 다들 서서 먹네?

우리나라는 포장마차를 제외하면 서서 먹는 문화가 없다 보니 어색하게 서서 커피를 쵸롭하였다. 유럽에 한 달 있는 동안 은근히 서서 먹었던 기억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거 은근 좀 쿨 해 보이고 유로피아가 된 것 같다.


커피맛 자부심 ㅇㅈ

한국에서는 보통 카푸치노에 계핏가루를 뿌려주는데 여기서는 초코맛이 강하게 났다. 확실히 커피에 자부심이 쩌는 이유를 인정하며 쬐깐한 양을 호로록하고 다시 바깥구경을 하였다.


산 마르코 광장 근방

오전부터 짱구를 돌린 것과 달리 하루동안 한 것은 대단한 게 없었다. 쭉 따라 걸으며 광장도 들리고 모카포트를 사기 위해 여러 상점들을 들리고 마트도 구경하고 그냥 진짜 동네마실 나온 듯 돌아다니면서 구경만 계에속 하였다. 계속 돌아다보니 배의 통증을 아예 잊어버린 채 다리 부서져라 돌아다녔다.


이 작은 동네의 지리가 익숙해질 것만 같을 때, 좁은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조명이 우릴 밝혀주기 시작했다. 내일을 위해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수상택시에 올라 시원한 바닷바람에 함께 휘날리는 머리칼을 넘기며 아쉬운 마음을 담아 카메라를 든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앉아 오늘의 하루를 회상해 본다.


엄마는 베니스가 어땠어?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띤 엄마는 10년 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다가 꿈꾸던 베니스에 하루라도 즐길 수 있음에 너무 행복하다고 하였다. 비록 나는 아침부터 가라앉지 않았던 통증으로 베니스의 풍경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였지만 내 동행이라도 좋은 하루였다면 다행이다. 오늘 하루 여유롭게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눈을 감아 첫날의 기억처럼 물결의 파동을 온몸으로 담아본다.




#2

주변 지인들이 입을 모아 인생 여행지라고 했던 피렌체로 떠나는 날이다.


피렌체 가면 티본스테이크를 꼭 먹어줘야 해!
피렌체 가면 명품아울렛도 꼭 가보고!
또 가죽시장이 진짜 유명한 거 알지?

지인들이 폭풍 추천해 준 식당들과 수많은 관광지. 그리고 르네상스 예술품이 모여있는 우피치 미술관까지. 더불어 몸도 되돌아온 튼튼한 상태로 가진 것이 풍요로운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하였다.


피렌체의 첫인상은 베니스와 정반대였다. 파리처럼 좁은 골목이 즐비하였지만, 또 파리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벽돌의 색깔 때문일까, 붉은색과 회색이 섞인 필터를 씌어놓은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붉그스름하면서도 탁한 풍경들을 지나쳐 오늘도 역시 새로운 지역에 오자마자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만나러 갔다.


간단히 호스트와 인사를 한 뒤 2일 전 묵혀놓았던 긴장감을 풀며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내였다. 2일 전 비행기 사건 이후, 다시 긴장감이 생긴 우리는 이곳에 올 때 나름 힘을 쥐고 있었나 보다.


간단히 짐정리와 휴식을 취한 뒤 친구가 추천해 준 티본스테이크 맛집으로 향하였다. 유럽에 와서 스테이크라니 체력이 거덜 날 때로 거덜 난 우리에게 아주 안성맞춤 메뉴 선정이었다.


드디어 음식 사진을 찍음

라자냐와 티본스테이크를 시켰다. 맛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주 맛있게 먹었던 것은 기억난다. 역시 고기는 맛있쪙


티본스테이크로 몸보신을 하고 가볍게 동네를 탐방하기 시작하였다. 생각 없이 쭉 걷다 보니 피렌체에서 메인 광장인 시뇨리아 광장도 들리고 두오모 성당도 가볍게 훑을 수 있었다. 두오모 성당 근처에 유명한 조토의 종탑도 있었다. 근데 이상하다. 여행이 끝난 간다는 것을 알리는 듯 이제 어느 성당과 골목을 가든 감흥이 들지 않았다. 일주일 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또 싫은데, 지금 보이는 풍경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였다. 어쩌면 힘겹게 입국한 이탈리아 자체에 질려버린 것 일 수도 있겠다. 오늘은 영 컨디션이 아닌 것 같으니 이른 일정을 끝내며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

다음 날이 찾아왔다. 여행에서도 쉬는 타이밍이 필요한가 보다. 쉴 만큼 쉬니 체력에는 이상이 없었다. 오늘은 르네상스 시기의 유명 작품들이 모여있는 우피치 미술관도 가고 가죽시장도 가고 어제 외부만 훑어보았던 두오모 성당도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운차게 하루를 열었다.


우피치 미술관

크리스마스와 가까워지는 시기여도 겨울 여행은 비수기이긴 한가보다. 10분 정도의 대기줄을 기다리고 안으로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는 대학시절 전공기초 필수 수업이었던 <미술의 이해>에서 본 온갖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분명 신기하기는 한데 르네상스 미술보다 인상주의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보니 쓰윽 훑어보기만 하다가 1시간 컷을 하고 나와버렸다.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주변의 식당으로 향하였다. 피렌체의 피자는 어떨까 하며 '트립어드바이저' 명표가 붙인 이름 모를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무난하게 피자와 파스타를 시킨 뒤 몇 분 후 비주얼만큼은 아주 합격인 피자가 나왔다. 베니스에서도 어제도 음식들을 맛있게 잘 먹었기 때문에 역시나 이탈리아 본토 피자는 맛있겠거니 하고 피자를 덥석 짚어 입에 구겨 넣었다.


오...?
내가 토핑으로 소금을 추가했나?

바닷물이 생각나는 염분 맛에 화들짝 놀라며 입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듯 넘겨버렸다. 소금에 가려져 무슨 맛이 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충격으로 한층 땡그라진 눈을 돌리며 주변을 쓰윽 살펴보았다. 현지인들은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피자를 먹고 있었다.


우리한테만 소금을 엎어놓은 거 아니야?

사람들의 차분한 표정에 설마 인종차별인가 싶었지만 원래 이탈리아 음식이 짜다는 말들이 스치듯 기억이 나 애써 남은 피자를 입에 더 넣어보기로 하였다. 오마니는 그간 여행 와서 남긴 적 없는 모습을 저버리고 피자 한 조각에 충격을 맛보며 바로 포기하였다. 나는 아까워 몇 입 더 시도를 하였으나 역시나 대량의 염분 앞에 패배하며 짭짤한 점심식사를 마쳤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는 베니스에서 마저 못 산 모카포트 탐방과 어제 내부까지 들어가 보지 못한 두오모 성당에 다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또다시 동태눈으로 변하였다. 어제는 컨디션 탓이라 여겼는데 정말 도시에 대한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이 도시를 배회한 것 같다. 그래도 이 감흥 없는 여행지에서도 나름의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유명한 모카포트 브랜드인 비알레티 매장을 탐방하는 것과 이탈리아의 국민마트 코나드에서 장을 보는 일이었다. 여행지를 갈 때 마트 물가를 보는 것을 재미 삼아 좋아하는데 고기도 저렴하고 매장도 크다 보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아마 이날 하루 가장 눈에 생기가 돌았을 때 마트에서 장을 봤을 때 일 것이다.


포르투갈 이후로 음식을 숙소에서 해 먹지 않아서 마트에 온 김에 고기부터 탐방하였다. 여윽시 유럽 마트 & 시장 식자재 가격은 어딜 가도 저렴하였다. 저렴한 고기가격에 신나서 오늘 먹을 고기를 집어 들고 고기 종류들을 탐방하였다. 이래 보니 마치 마트 가면 세상 신나 하는 애기들처럼 들떠서 떠돌아다닌 것 같다. 나이 먹어도 신나는 걸 우짜니 우째.


개신남

조그마한 입구와 다르게 내부가 무진장하게 컸다. 이번엔 통조림 코너로 갔는데 토마토 통조림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역시 파스타의 나라이긴 하구나 싶어 토마토 통조림도 하나 짚어 들었다. 숙소에서 토마토 수프 해 먹어야지 룰루~


기본 식자재 코너에서 빠져나오니 간식파트로 넘어오게 되었다. 여행을 갈 때면 꼭! 영아부 애기들 선물을 사가는 편인데 먹을 거가 눈앞에 펼쳐지니 또 신난다고 날뛰며 구경한 것 같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아이들 선물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사기로 하며 찜만 해놓은 뒤 오늘 저녁에 먹을 것만 고르고 늘어진 계산대 줄에 따라 섰다.


어떤 여자캐셔분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리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녀는 어쩌다가 빡이 친 것인지 원래 무뚝뚝한 건지 신경질적이면서도 무심해 보이는 표정으로 결제를 이어갔다. 바코드를 다 찍고 가격을 확인한 뒤 우리는 지갑을 꺼내 지폐와 동전을 맞추고 있었다. 지폐와 동전을 바라보며 아주 잠시동안 뒤적뒤적거리고 있는 우리를 보고 점원은 한숨을 크게 팍 쉰 뒤 우리가 내민 돈을 낚아채듯 뺏어갔다. 한숨을 팍 내쉬자마자 나 또한 급발진이 나서 한국말로 큰소리를 내며 '뭐야..?'하며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점원을 쳐다보았다.


...? 지금 뭐하자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던지다시피 주다 보니 화가 미친 듯이 나서 나 또한 낚아채듯 확 뺏고 '미친 거 아니야?'하며 기분 더럽게 발걸음을 돌렸다. 성격이 급한 건지 인종차별인 건지 둘 다인건지 고작 돈 고른다고 한숨 뱉고 거스름돈을 내던지듯이 주는 행동은 나 또한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이 도시에 정이 안 갔는데 점원 덕분에 없던 정도 털린 채 숙소로 향하였다.


잠시 기분은 더러웠지만, 맛있는 것을 먹으면 또 단순해지는 것이 사람이라 우리는 숙소에 가서 봐온 장으로 맛난 저녁을 위해 주방으로 나섰다. 오늘의 저녁은 스테이크와 이를 곁들여 먹을 토마토수프 그리고 토마토 파스타이다. 그리고 저렴한 와인까지 더한 갓벽한 음식 구성이다.


이거거덩~

스페인 때부터 토마토 수프에 눈을 떠 결국 만들어 먹는 지경까지 찾아왔다. 이 유럽여행 이후로 우리 집은 겨울만 되면 곰국대신 토마토 수프를 한 대접 끓이는 음식문화가 생겼다.


곰국 안 좋아하는 자에겐 개이득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도시의 외관도 사람도 문화도 썩 내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던 곳이지만 마트 하나로 생기를 찾고 숙소에서 레스토랑보다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며 나름대로 현지인으로 아보기 체험을 하며 하루 끝냈다.



-

오늘은 피렌체에 온다면 한국사람들은 무조건 들린다던 명품 아웃렛 탐방을 하기로 하였다. 가진 게 돈말고 시간뿐인 나에게는 갈 이유가 전혀 없는 장소였지만, 구경이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에 고민 없이 '더몰'로 향하였다.


더몰은 피렌체 시내에서 1시간 떨어진 곳에서 위치하여 산타루치아역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셔틀버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일반 버스 / 중국 버스로 일반 버스는 이탈리아 회사에서 운영하는 것이었고, 중국 버스는 중국 회사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여행의 끝자락에 올라탄 우리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3유로가 더 저렴한 중국 버스를 찾아 헤매었다. 버스가 오는 시간대와 함께 친절히 사진까지 찍어서 길을 안내해 주는 블로그를 보고 따라 걸었으나, 사라진 것인지 우리가 길을 못 찾는 것인지 결국 3유로를 아끼지 못하고 일반 버스에 올라탔다. 역시 돈 아끼는 길은 고생길밖에 없는 것 같다.


멀미취약한 나는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아웃렛에 등장하였다. 창문밖에는 프라다, 구찌... 등등 평소에는 가볼 일도 없는 명품매장들이 크게 들어서있었다. 여행 비수기인 12월엔 사람들도 한적 하였다. 이곳에서 구경과 구매 말고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기다림 없이 아무 매장이나 들어가 구경이나 실컷 하였다. 이곳에 있는 동안 구경만 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오마니는 준명품 브랜드에서 가방 하나를 저렴한 가격에 겟하고 나는 손은 가볍지만 배는 두둑이 채워갈 수 있었다.


더몰 안에 있던 식당에서 츄베릅

간접적인 부내의 기운을 가지고 바로 피렌체로 돌아왔다. 이제 피크타임인 2시. 할 것도 없고 시간은 남아돌았었다. 점심도 먹었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숙소에서 몇 시간 몸을 축이기 전, 오늘도 어김없이 마트로 향하였다. 오늘은 아이들한테 사줄 간식을 미리 사야지 히힣


어제와 똑같은 코나드 매장으로 향하였다. 길을 금방 외우는 나는 지도도 없이 빠르게 이곳으로 도착하였다. 어제 마음속으로 찜해뒀던 간식더미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마니는 아빠와 오빠에게 줄 만한 것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간식더미 한아름을 품에 안겨둔 채 오늘도 늘어진 계산대 줄에 섰다.


아C, 어제 그 사람이잖아?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일글러진 채 어제 본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점원은 어제와 같은 무표정으로 옆에 자리가 있으니 옆에 가서 계산하라고 손짓하였다. 자기도 꽤나 불편했는지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어 이번에는 별 탈 없이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짐을 숙소에 두고 난 후, 해가 지기 직전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노을을 보며 아쉽지 않은 피렌체 여정을 끝마치기로 한다.


지나가다 유명한 젤라토 집에서 젤라토 하나를 사들고 열심히 걸어 언덕으로 향하였다. 숙소에서 걸어서 30분이 넘짓한 거리를 야심 차게 걸었다. 여행만 오면 건강해지는데 이 이유가 삼씨세끼 다 잘 챙겨 먹고 하루에만 몇만보를 매일 걸으니 건강한 몸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햇빛이 빽빽한 적색 지붕들 거멓게 물들이기 전에 용케 언덕 위로 올라왔다.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언덕 오르기였다. 해가 지기 직전의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즐비하였다. 행복해 보이는 미소들, 그 미소들로 낭만이 가득 넘치는 인파의 끝에는 피렌체의 넓은 전경이 놓여있었다.


예쁘긴 예뻤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정말 매력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피렌체였지만 이곳은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예쁘긴 예뻤다. 적색지붕으로 통일된 건물 자재들과 눈에 띄는 둥근 지붕의 성당들. 그리고 피렌체의 상징 중 하나인 베키오 다리를 낀 아리노강까지 한눈에 들어오니 주변 지인들이 이곳이 왜 이렇게 좋았다고 하는지 얼핏 알 것 같았다.


눈앞이 붉은빛에서 노란색 불빛으로 채워졌을 때 마지막으로 이곳을 천천히 누비며 내가 가진 안 좋았던 인상을 내려놓고자 하였다. 아리노강 앞에 서로 안고 있는 커플이 보였다. 이 풍경 에서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채 코트를 입고 걷는 내 자신이 나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니 이곳에 미운 정은 덜어내고 가뿐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잔잔하게 앞을 나아가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고 예상에도 없던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크리스마켓이었다. 다음 주면 벌써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다.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잔뜩 느꼈지만 마켓을 보지 못했던 아쉬웠던 마음을 이곳에서 달랬 수 있다니. 기억에 남는 것이 결코 많지 않았던 3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만남에서 느껴진 지금의 설렘은 간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화려한 불빛 속 자신을 잊지 말라는 피렌체의 속삭임을 기억한 채 이곳에서의 여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3

드디어 한 달간의 여정의 마침표, 로마로 향하는 길에 진입하였다. 이제는 사건사고도 안 일어나고 잔잔한 여행을 지속하고 있다. 지루한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든 채 오늘도 새벽부터 청소를 마치고 짐을 들어 맨다.


오늘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버스로 이동하는 날이다. 매번 기차로 이동하였기에 유럽의 버스 이동은 어떠한지 궁금하였다. 캐리어가 가득한 기차역의 느낌과 전혀 다른, 어깨에 묵직한 배낭이 가득한 버스역으로 향한다.


마지막 여정이었기에 가급적 로마에 한시라도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일찍이나 알아챘던 것인지 과거의 나는 오전 7시 차를 예약하였었다. 7시 차를 타기 위해서는 6시에 트램을 타고 버스역으로 이동해야 하였다. 12월 달 피렌체의 새벽 6시는 암흑 그 자체였다. 끼익- 커다랗고 무거운 옛날 문을 조용히 닫고 유난히 무섭게 느껴지는 회색빛깔의 건물들을 지나치며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였다. 조용한 골목에는 캐리어 바퀴와 돌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로 워졌다. 길을 가다 한 두 군데 켜져 있는 술집과 그 앞에 술냄새로 온몸을 채운듯한 한두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지나치는 옆 골목에서는 어떤 술 취한 사람이 다른 어떤 이를 삥 뜯으려고 큰 소리를 내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으슥한 모습들과 이어지는 무채색의 분위기로 한층 더 긴장을 한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회색빛 골목을 지나쳤다.


10분을 걸어 트램역이 보였다. 어쩌자고 이른 새벽부터 버스를 타는 미친 짓을 것일까. 새벽이 비교적 덜 무서운 우리나라에 살다 보니 가끔 이렇게 해외여행지에서 헤까닥 할 때가 있다. 트램이 오고 나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트램 내부는 남자들로 가득하였고 대부분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들이었다. 술에 취해 보이는 고개의 움직임도 꽤나 보인다. 트램 안도 바깥의 회색빛깔과 다름없이 무채색으로 우릴 역까지 이동시켜 주었다. 긴장감 속에서 마른침을 삼키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였다. 배낭을 멘 사람들이 이제야 한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을 보고 안심을 하며 그들을 따라가기로 하였다.


내린 곳은 깜깜한 어둠 속 작은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곳이었다. 건물 앞에는 불빛 하나가 이 어둠을 밝혀주었다.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음산하기도 하고 건물에 어떠한 불도 안 들어와 있는 이곳이 정말 맞는 장소인지 의심스럽지만 배낭 멘 이들을 신뢰하며 그들 뒤를 쫓았다. 그들은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옆에 철장 앞에 섰다. 철장은 굳세게 닫혀있었다. 배낭을 멘 이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철장 틈 사이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풀은 뒤 철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게 맞는 거야?' 싶을 때쯤 바로 익숙한 버스 기사 아저씨들과 관리자가 보였다.


버스는 차례로 오고 갔다. 그리고 바로 뒤 우리를 로마로 데려갈 버스가 찾아왔다. 2층으로 된 버스였지만 몇 안 됐던 승객들은 모두 1층에 자리를 잡았다. 긴장한 너무 한 탓인지 앉자마자 그대로 잠에 취해버렸다. 잠시 잠에 깼을 때에는 몇 시간이 지나고 휴게소에 들러 정차하고 있을 때였다. 창문 너머로 여행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버스에 음료와 함께 오고간다. 마치 꿈속을 본 듯 껌뻑껌뻑 거리다가 다시 스르륵 잠에 들고나니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였다.


올 때부터 느꼈던 긴장과 여행 오기 전 심히 들었던 로마의 악명 높은 치안을 잊지 않은 채 이곳을 내리니 기존 여행지의 분위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느껴졌다. 익숙함은 피렌체에서 보았던 회색빛으로부터 느끼고, 새로움은 회색빛에 붉은빛이 아닌, 이곳은 회색빛에 노란빛에서 느껴졌다. 말이 많은 곳인 만큼 마지막 숙소는 안전하게 한인민박에 머물기로 하였다.


로마가 수도긴 하는구나를 느꼈던 것은 다름 아닌 도보였다. 베니스와 피렌체보다 넓은 땅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렇기 트인 도시에  가득 메워진 쓰레기들을 보며 이곳은 왜 이럴까라는 생각으로 캐리어를 굴러갔다. 전보다 한결 편해진 캐리어의 그립감으로 수많은 쓰레기들을 옆에 낀 채 한인민박에 도착하였다.


유럽 여정을 하며 한국인 여행자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말도 하였지만 이탈리아에 오면서는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어 반갑게 사장님을 맞이하였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는 대답에 새벽 일찍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하니 위험하게 왜 새벽에 오냐고 꾸짖으셨다. 겁이 많으신 오마니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부터는 새벽에 이동하지 말자하며 이제야 긴장을 푸셨다.


아침부터 기가 쏘옥 빨린 탓에 숙소에서 푹 쉬고 싶었지만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짐만 맡기고 숙소 근처 kfc에서 대충 밥을 때운 뒤 가까운 콜로세움으로 이동하였다. 숙소에서 콜로세움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 데 가는 길에 주택가도 있고 매장들도 있어 구경하며 걷다 보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의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그 주변 공원 벤치에 앉아 오마니랑 그저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 포로 로마노도 들렸지만, 둘 다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고 외관만 보고 이야기만 쭉 하다 돌아온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또 마트를 들렸다. 피렌체부터 '코나드' 탐방에 맛들려 이곳에서도 코나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로마에서의 첫 코나드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다. 외관상 마트가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지만 안내 표시판을 따라 의심스럽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였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어떠한 외국인도 따라 탑승하였다.


여기가 혹시 코나드 가는 길 맞아?

누가 봐도 여행객 같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아하니 이분도 여행자인 것 같았다. 우리만 헷갈려하는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거 다 똑같지 않나 싶다.


나도 모르겠어 그저 안내표시가 적혀있는 대로 따라왔어ㅠㅠ

질문을 시작으로 스몰토크를 몇 마디 주고받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안내대로 걸으니 커다란 매장이 보였다. 쇼핑을 끝나고 나서야 쉬운 길 놔두고 쓸데없이 뒷길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또 간만에 장도 볼 겸 로마의 코나드는 어떤지 구경하다 보니 체크인 시간도 훌쩍 지나버렸다. 저녁식사와 아침은 민박에서 제공이 되어 저녁식사를 숙소에서 해결하며 이른 1일 차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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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대망의 바티칸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로마에 오고 싶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바티칸 때문이었고,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조각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더군다나 바르셀로나에서의 가우디 작품을 보고 난 이후부터 미켈란젤로 작품에 대해 기대심이 전보다 더욱 높아진 상태였다.


이러한 높은 기대심을 채워질 수 있도록 이미 한국에서 바티칸 일일투어를 예약하고 왔다. 이왕 즐길 거 제대로 하루 투자해서 즐겨보자는 마음에 들뜬 채로 바티칸으로 향하였다.


공지했던 장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무리 속에 함께 들어가면서부터 바티칸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투어 시작부터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했다. 바티칸에 들어서기도 전, 1시간가량 대기를 했어야 했는데 대기하는 동안 가이드님은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인 미켈란젤로, 레오나드로다친치, 라파엘로의 라이벌 구도와 심리전을 이야기해 주었다. 학창 시절 때도 한국사, 세계사 얘기만 하면 똘망똘망한 눈으로 재밌게 듣곤 했었는데 오랜만에 역사 얘기를 들으니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지루하지 않은 1시간이 훅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티켓을 사러 들어갈 거예요!
결제할 카드 혹은 현금을 제게 주시고, 할인이 되는 국제학생증이 있는 분들은 국제학생증도 함께 주세요~

유럽여행을 오기 전에 박물관, 미술관 등 할인이 되는 국제학생증을 만들고 왔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쏠쏠하게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오늘도 챙겨 왔을 줄 알았더니만.. 맨날 하고 다니는 카드 목걸이를 깜빡하고 안 하고 온 것이다. 이런 바부~ 그렇게 할인혜택 없이 원가에 지불하고 엄마의 눈초리도 함께 얻어갔다.


어휴 이놈의 기지배..
오늘도 한건 날리고 눈치보는 딸랑구

그렇게 베드로성당을 시작으로 시스티나 성당을 돌며 학창 시절 익숙히 봤던 그림들을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많이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보고 눈물을 훔친다고 들었다. 단순히 그림에서 오는 감동이 아닌 천장화를 완성하기까지 그가 어떠한 자세로 이 그림에 임하였는지 감탄한다고 한다. 이미 바티칸을 오간 내 친구들도, 내 옆에 있던 오마니도 천장화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감동에 있어서 한 템포 느린 나는 천장화를 보는 당시에는 '우와~ 그림이 튀어나올 것 같아~' 이러면서 천진난만하게 감상하고 있다가 마지막 피에타를 보고 나서야 드디어 밀린 감동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혼자 멀뚱멀뚱해서 감정이 메마른 인간인가 싶었는데 피에타에서 한 번, 또 숙소에 돌아와서 감동 뒷북이 오지게 몰려와 혼자 여운의 눈물을 털어낸 걸 보니 그냥 뒷북이 심한 애인 것으로 판명 났다.


호고곡곡 너무나 걈둉이쟈냐..,.

그림과 조각상에 감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완성도 높은 작품이어서는 아니었다. 정말 완성도가 높은 작품인 것 또한 맞는 말이지만 자기 몸과 전생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이 믿는 종교 하나만을 위해 온몸을 갈아 헌신한 것이 너무나 신기하였다.


피에타
나는 '누구가'를 위해 정말 '희생'할 수 있을까?

'나'를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일만 하며 살고 있는 지금까지의 삶에 '희생'이라는 단어는 늘 낯설었다. 그간 나에게 '희생'은 '나를 위한 삶'을 무너트리는 부정적인 언어로만 들려왔었다. 어떠한 하나만을 위해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하기에. 하지만 반대로 그 '희생'이 이들에겐 삶의 원동력이 되어줬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가진 것을 내려놓고 희생을 하지만 아이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듯, 미켈란젤로 또한 자신의 몸과 시간의 희생을 통해 자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이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마음과 애정이 작품을 통해 보이는 듯하였다. 작품을 통해 그를 만나가면서 '희생'에 대한 의미 있는 가치를 조금은 깨닫게 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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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여행의 끝자락에 왔다. 통장잔고는 '0'원, 주머니에 든 현금은 몇 안 되는 유로 몇 장과 동전 몇 푼. 이제는 정말 여행이 끝이 찾아오고만 말았다. 한 달 동안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찾아왔지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아서 발걸음을 돌려야 할 때다. 저녁 비행기에 올라타기 직전 아쉬움을 달래고자 마자막으로 로마를 크게 떠돌며 판테온과 트레비분수도 보고 유명한 가게의 젤라토를 먹으며 한 달간의 여정을 끝마치고자 한다. 이제는 로마의 거리도 살짝 익숙해지는 것 같아 핸드폰도 살며시 내려놓고 오마니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며 걷기 시작한다.


트레비 분수에서 가진 거 몇 없는 동전도 한 번 던져보고 판테온 근처에 있는 젤라토 맛집에 들려 젤라토도 먹었다.


쫜득쫜득한 맛도리 젤라또

마지막으로 근처 코나드를 찾아 한국에 이고 갈 장을 보니 어느덧 떠나야 할 때가 정말 찾아왔다. 점심만 먹고 이젠 정말 공항에 가야 할 것 같다. 한 달간의 여행동안 빈털터리가 된 우리는 오늘도 kfc에 들리며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첫날도 햄버거 어제도 햄버거 오늘도 햄버거였지만, 질리는지도 모른 채 맛있게 햄버거를 해치우며 마지막 식사까지 마치었다.


이제는 짐을 찾으러 한인숙소로 다시 돌아간다. 이제는 정말로 끝이구나. 30일이라는 시간이 유난히 길긴 하였다. 30일 동안 영국, 프랑스, 모나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6개국을 들리면서 소매치기도 당하고 경찰서도 들리고 비행기도 놓치고. 평생 살면서 이렇게 다이나믹한 한 달이 존재하였는가 싶었다. 하루하루는 길었지만 끝나기를 바라지 않았던 여정이 정말 끝이 나니 이 모든 것도 추억으로 발향되는 것 같다. 새로운 여행지를 도착할 때면 늘 눈을 감고 크게 그곳의 냄새를 들이마신다. 나라마다 특이한 냄새들이 존재한다. 한 달간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 스트레스를 겸비한 스펙터클한 하루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지루하고 무료했던 하루들까지 모두 빠트리지 않도록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힘껏 들이마신 숨탓인지 한층 무거워진 짐 때문인지 어딘가 모르게 전보다 듬직해진 뒷모습을 풍기며 그들의 30일간의 여정을 끝마추었다.


 




epilogue. 

방구석 추억여행 일지는 ep.17를 끝으로 1년 6개월 만에 종결이 났다. 신기하게도 여행일지의 에피를 쓸 때마다 해당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과 쓰고 있던 당시의 감정의 결이 늘 비슷하였었다.


여행지에 도착하기까지 온갖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끝끝내 입국에 성공한 뒤 예상치 못한 경험들로 채운 쿠바여행을 작성한 시기에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으로 예상치 못한 기회와 만남을 꿈꾸던 시기였다.

일상의 따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려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떠난 몽골여행을 작성한 시기는 현재 가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시기였다.

잔잔바리로 사건사고가 끝이지 않았던 20대에, 나에게도 이상하리만큼 행복한 시기가 지속된 적이 있었다. 휴학과 시작된 평온함을 만끽한 채 나만의 길을 개척하면서 다닌 유럽여행을 작성한 시기인 지금, 나는 나만의 길을 개척하면서 오래간만에 평온한 상태에 이르렀다.


유난히 시끄러웠던, 유달리 정상적이지 않았던, 어쩌면 고단해보일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 채운 나의 지난 여정의 이야기를 한 공간에 기록하면서 이렇게 많은 일이 있기에 글로 쓸 것이 참으로 많았음을 느낌에 성공적인 기록을 마친 것만 같다.


나 또한, 심심할 때마다 나의 여정기를 보며 시간을 때울 때도 있다. 굵직한 사건 위주로 글을 써 내려가니 사소하면서도 귀여운 에피소드를 한 두 개를 놓쳤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들고, 너무 모든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또 들었다. 브런치 북을 내기 전에 간간히 손을 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 있다. 방구석 추억여행일지의 포인트는 에필로그라고 생각하여 '일지를 기록을 하고 있는 지금의 상태' 혹은 '여행 순간에 느꼈던 당시의 상태'를 짧게 풀어썼었다. 에필로그를 볼 때면 정말 한결같은 이야기를 꺼내 나도 참 여행에 대한 가치관이 확고하구나 싶었다.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나의 생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긴 점에, 이 글들을 써 내려가며 떠올렸던 마음들과 감정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지난 여정기를 애정할 수밖에 없었던, 다가올 여정을 설렘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여행의 이유를 끝으로 방구석 추억일지의 마침표를 찍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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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길을 자꾸 꿈꾸는 이유는 모험과 방랑이라는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아주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된 것일지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나의 육체와 생각은 지극히 1차원적으로 변화한다. 자아실현을 위한 고민 그리고 욕심 그에서 오는 만족감 때론 불안감. 그 어떤 생각에도 방해받지 않고 그저 여행을 나아가기 위한 여정에만 집중하는 삶 말이다.


나는 집에서는 잠 바로 드는 타입이 아니다.

너무 편 공간이다 보니 자기 전에 잡생각, 핸드폰 등 할 게 너무나 많다. 그래서인지 매번 피곤한 아침을 맞이한다.


여행에서 늘 침대에서 누운 지 몇 초도 안 돼 골아떨어진다.

하루종일 걸어 다닌 탓에 어떠한 잡생각도 핸드폰도 할 여력도 없이 눈을 감자마자 깊은 잠에 든다. 그리고 일출과 함께 개운한 아침을 맞이한다. 어쩌면 나는 저녁형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현실에서는 두 끼를 챙겨 먹는다.

나에겐 오늘 뭐 먹지가 설렘이 아닌 곤욕일 때가 더 많다. 배가 고프니 아침 겸 점심으로 음식을 대충 때우고 출출하니 저녁을 먹는다.


여행에서 삼시세끼를 다 챙겨 먹는다.

오늘의 여정을 헤매기 위해 조식이든 과일이든 베어 먹는다. 일단 뭐라도 챙겨 먹는다. 어찌보면 나는 먹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겠다.


나는 현실에서 완전히 계획형이다.

to do리스트로 하루의 시작을 열고 모든 리스트를 체크해야 하루를 닫는다. 하루에서 일주일, 일주일에서 한 달 혹은 1년까지 세세한 계획보다는 폭넓은 방향성을 잡는다. 그렇게 나는 현실에서 헤매는 것을 원치 않아 한다.


여행에서 계획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여행의 길에서 정해진 길보다 헤매는 것을 즐긴다.

그저 마음에 드는 길을 사정없이 걷는다.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길이 나를 반겨준다. 여행에서는 길을 잃어도 그냥 길을 만들어 나간다. 설사 길을 잃는다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는 길이 아무리 오래 걸리지어도  순간만큼은 나의 실수를 모욕하고 비난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나는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겠다.


내가 익숙히 잘 알고 있던, 때론 나도 몰랐던 나의 본성과 마주하기에 그리고 그 모습이 가장 나다워지기에 여정을 기록하면서도 여정을 떠나면서도 새로운 여행길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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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삶에서 유달리 여행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며 기록을 지속하는 이유 또한 존재하였다. 현재 삶에서는 미쳐 놓쳤던 생각들을 여행을 나아가기 위해 여정에만 몰두하기로 한 시간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감정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올 수 있음에는 크고 작은 사람들의 연대와 이해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음을 깨달으면서 '나'라는 사람의 오만함을 내려놓고,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긴긴밤中> -루리-


새로움 혹은 이득만을 추구하며 미래를 바라보는 삶도, 지난 영광에 젖어 과거에 안위하는 삶도 아닌, 잠시 멈춰 지금 당장의 스쳐가는 낭만을 즐기며 이를 추억할 수 있는 삶으로 기억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 그들의 행동에 나도 자연스레 지금을,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불안감을 느껴도 어딘가 불편한 게 있어도 뭐 어때 지금 내가 눈앞에 두고 있는 이곳에 가진 것들이 다채로운데. 그렇게 여행에서 오는 수많은 변수들 그리고 삶에서 오는 변수들이 와도 스쳐가는 순간에 풍요롭게 가진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p14.나의 첫 경찰서>


가장 나다워지는 여정에서 가장 큰 평온함과 행복 때론은 시련과 고통을 기록하여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면서, 내가 진정 행복해 하는 삶이 일의 능력 혹은 명예와 재력 아니면 지식 외모와 같이 외관에서 오는 인정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존재 그리고 가치관을 이해받았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이러한 여행 속의 여정은 나의 크나큰 공부도, 어떠한 영감도 되어주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을 하며 나의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 여정의 기록에는 어떠한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을까. 그날이 곧 오기를, 하지만 너무 빨리 이 설렘이 달아나지 않기를 바라며 지난 기록을 마친다.



*지나온 여행의 기록은 끝을 맺었지만, 새로운 곳을 떠돌며 다른 시리즈로 여행 이야기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다가올 여정에는 어떠한 에피로 가득찰지 기대 많이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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