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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Oct 19. 2022

ep.14 [스페인] 나의 첫 경찰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ep14.

나의 첫 경찰서


스페인의 시작은 조금 특별하였다. 이전 기차를 타고 비교적 여유롭게 국가를 이동했던 것과 달리 준비시간이 상당한 비행기 이동으로 시작하였다. 2주만에 마주하는 공항과 비행기를 보니 다시 새롭게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한 설렘과 함께 하늘에서 2시간 정도를 흘러 보낸 후 스페인이라는 국가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스페인은 첫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았다. 빙빙 하염없이 돌아가는 수하물을 읏-차 꺼내고 자연스레 입국심사를 하러 나갔던 길에는 입국심사대 대신 적당히 차가운 가을 날씨와 쨍쨍한 햇빛이 반겨주었다. 처음 겪어보는 쿨함에 당황한 채로 어영부영 사람들을 따라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몇 분 안돼 바로 나타난 바르셀로나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곳은 버스 크기마저 시원시원하구나. 거구의 버스는 자신의 크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도로 위를 질주하였다. 탁 트인 창문을 바라보며 바로셀로나와의 첫인상을 텄다. 영국을 거쳐 프랑스에서 보았던 오밀조밀한 골목과 흐틀어지지 않았던 각국의 특색 있는 건축양식과는 전혀 달리 거대한 도로를 중심으로 한편엔 현대 건축양식인 아파트가 그 반대편엔 고전양식의 건축물이 어울리지 않게 화합되어 있었다.



우와 되게 특이하다..

첫인상부터 독특한 이곳의 공간은 나에게 흥미를 북돋아주었다. 조화롭지 않는 이질감을 넋놓고 바라보다보니 어느덧 고전양식의 건축물들로 가득한 시내에 진입하였다.


스페인에서의 숙소는 유럽여행 중 유일한 호텔 숙소였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특가가 뜬 저렴한 호텔로 예약하였다. 고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시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바로 앞에 지하철까지 겸비한 곳이었다. 우리는 시내에 내려 바로 가까운 숙소로 향하였다.


이동하는 날에는 은근한 체력 소비가 크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날도 숙소에서 푹 쉬다가 해가 떨어지기 전 저녁도 먹을겸 간단하게 시내를 돌아다녀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짐을 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바로 기절

침을 스윽 닦으며 깨어보니 어느새 해는 제 집으로 떠나버렸다. 배도 고프니 이제 슬슬 시내에서 밥이나 먹으러 가볼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OO아, 엄마랑 한인교회 가지 않을래?

오마니는 유럽여행에 내내 교회를 가지 못한 것이 맘에 꽤나 걸렸던 것인지 내가 잠에 취한 동안 주변에 한인교회가 있나 검색을 하였나보다. 치안 하나에는 기강 잡혀있는 나는 이미 해가 져버린 저녁 시간이니 멀리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일러주었다. 사실 그렇게 엄청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하철로 4-5 정거장을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귀찮았다.


걍 귀찮ㅇ,..ㅏ

설득에 실패한 나는 엄청난 귀찮음을 이겨내고 오마니를 위해 지금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하였다. 하 나 자신 너무 기특해;;


그렇게 반쯤 뜬 눈과 누가 봐도 귀찮아 보이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밖을 나섰다. 시내에는 저녁 시간대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안 그래도 잠이 덜깼는데 수많은 인파를 지나치니 초점 없는 공허한 눈동자가 더 초점을 잃어갔다. 그렇게 종이짝같은 몸과 정신을 붙들고 지하철에 탑승하였다.


이제 막 지하철 1정거장을 넘어왔을 쯤이었다.


어머 어떡해!!!!!!!!!

가방과 외투에 달린 주머니를 번갈아가며 뒤적거리는 오마니의 소리에 정신이 번쩍 깼다.


왜 뭔데? 무슨 일이야?

오마니에게 말을 건네자마자 오마니의 가방과 손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 순간 싸함이 싹 돌면서 대답도 듣기도 전에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악명 높은 유럽의 소매치기를 대응할만한 휴대폰 방지줄을 구매하였다. 오마니 한 개, 내꺼 한 개. 여유분 없이 한 개면 충분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가방에 걸어 외출할 때마다 핸드폰을 지켜냈다. 그렇게 문제없이 2주를 잘 흘러 보냈다. 방지줄은 제 역할을 확실히 하였다. 그리고 악명 높은 파리를 지나 남프랑스로 진입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도 방지줄도 전보다 느슨해지기 시작하였다. 여행 생활이 익숙해진 것과 그동안 큰일이 없었다는 안도감은 우리를 한껏 안일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자유여행 경험이 처음이었던 오마니는 유독 파리에서 긴장을 많이 하였다. 그리고 남프랑스로 넘어와 긴장이 팍- 풀어지는 순간, 이에 맞춰 오마니의 방지줄도 운명을 다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방비 상태로 유럽의 악명 높은 TOP3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에 입성한 것이다. 그것도 가장 악명 높은 공간, 지하철에.


가족들의 옛날 사진들이 한가득 담겨진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오마니는 너무 놀라 눈물부터 쏟으셨다. 지하철을 입성할 때부터 유독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오마니께 조심하자고 말을 흘려 오마니도 바싹 긴장하고 계셨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을 수없이 봤을 소매치기범은 방심한 그 몇 초에 틈을 타 오마니의 가방에서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소매치기범 너어는,,..정말

오마니의 핸드폰은 예쁜 유럽의 사진을 담기 위해 새로 장만한 아이였다. 신상 핸드폰의 값과 모든 옛 사진이 담겨 있는 콜라보는 우리 엄마를 한껏 더 슬프게 만들었다.


나라도 정신차리고 이성을 지키자. 어차피 이 정신없는 인파 속 소매치기를 잡는 일은 말이 안 되었기에 정거장에서 바로 내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바로 경찰서에 가는 일이었다.


가만안두겠ㅇ어

경찰서에 가는 이유는 아주 명확하였다. 직감적으로 소매치기범은 어차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소매치기범을 잡기 위해 해외 경찰서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 생각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주저 없이 경찰서로 향한 이유는 여행자 보험을 통해 핸드폰 비용이라도 돌려받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찰서에서 서류를 받아야만 하였다.


그렇게 시내 한복판에서 하염없이 우는 오마니를 데리고 경찰서로 향하였다. 자신의 식당을 홍보하는 직원이 보일 때마다 식사 대신 경찰소가 어딨냐고 물어보며 시내의 끝자락에 위치한 경찰서에 다다를 수 있었다.


2n년을 살면서 경찰서를 올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첫 경찰서 방문을 공교롭게도 해외에서 맞이 할 줄이야.


하염없이 기다리기

우리와 같은 이들이 꽤나 있었는지 한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우리의 순서가 찾아왔다. 영미권 국가도 아닌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에서 경찰서라.. 마른 침을 삼키며 경찰이 홀로 있는 조금만한 사무실에 들어갔다.


어디서, 몇 시에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알려줄래?

스페인어로는 대화가 안되었기에 경찰은 종이에 영어로 적으며 질문을 하고 나는 그에 맞는 대답을 하였다. 정확히 몇 시에 어느 구간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는지는 정신이 없어 확인을 미쳐 못했기에 생각하는데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영어의 모든 단어를 대문자로 적어주셔서 당황스러움을 한층 더 해주었다.


어.....
용케 받아낸 서류

그렇게 또 30분을 흘러 보내고 서류와 이메일을 챙겨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다. 이후 한국에서 보험사에 건네주는 작업에서 더 큰 고생을 하였지만 어찌됐든 뭐 하나라도 건졌으니 된 것인지라!


나름대로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싶은 마음에 나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는데 보물 1호를 잃어버린 오마니의 심정은 아니었나보다. 피해 당사자라고 하기 어려운 나는 여권이랑 돈, 수하물을 안잃어버려 다행이다라는 말만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디지털 디톡스를 지향하고 핸드폰보다는 노트북을 보물 1호로 생각하는지라 그냥 내 폰이나 훔쳐가지~..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남은 유럽 여정 동안 길을 찾을 때 제외하고 핸드폰을 오마니께 넘겨줬던 기억이 난다.


숙소를 돌아와서는 더 정신이 없었다. 오마니 핸드폰에 껴있던 카드도 함께 분실하였기에 오자마자 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국제전화를 시도하였다. 하필이면 오마니의 인터넷뱅킹 공인인증서가 만료가 되어 노트북으로도 사용내역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보험회사, 국민은행, 핸드폰 통신사 등등 해외전화를 시도해보았다. 각각 10통은 넘게 걸었음에도 주말이라 그런지 연결이 아예 안되어 오마니의 불안함은 하염없이 증폭되기만 하였다. 나의 불안 또한 없는 것은 아니였다. 분명 잃어버린 것은 내가 아닌데 모든 일처리를 하고 있어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밤, 급하게 아빠에게 전화하여 카드정지 요청한 뒤에야 얼버무리듯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소매치기로 하루를 완벽하게 날렸다.


첫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 스페인에서 남은 5일을 좋은 기억으로 덮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짧지만 고단했던 하루의 끝을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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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차가 되어서야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의 숙소는 호텔이라는 이름답게 조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조식을 좋아하는 오마니를 위해 조식을 추가 지불하고 조그만한 호텔 라운지로 향하였다. 뭐가 많지는 않았지만 빵, 샐러드, 하몽, 커피, 과일 등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이곳 호텔의 커피가 유난히 맛있어 아침부터 각자 2잔씩 드링킹을 했던 기억이 난다. 빵을 먹기 위해 커피로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닌 커피를 먹기 위해 빵을 더 먹는 주객전도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가 오마니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달래준 것 같아 다행이다.


조식을 끝내고 밖 나갈 채비를 하였다. 원래 같다면 첫날엔 시내 혹은 동네만 가볍게 둘러보았을텐데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가우디 건축물이 너무 보고싶어 오늘 하루는 가우디 건축물을 보기로 결정하였다.


남아있는 동안 안 좋은 기억이었던 지하철은 최대한 기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숙소 앞의 지하철역을 지나쳐 15분을 더 걸어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였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첫 장소인 구엘공원으로 이동하였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는 공원에 내려 30분 정도를 산책해야 했다.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하는 모녀이기에 기분 좋게 걸음을 뗐다. 너무 차갑지 않는 적당한 온도의 공기과 적당히 마중 나온 햇빛의 기운이 좋아 그저 그 기운을 따라 올라갔다.


어제 일로 스페인의 기억이 쭉 안 좋을 줄 알았는데 지금 이 공간이 그 기억을 사라지게 하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곳에서의 감정은 첫인상부터 매웠던 기억을 차츰 일그러지게 하였다. 어제 일은 미웠지만 이전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혼돈과 그 속에서 발견한 평온함은 이 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말보다는 공간과 날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끼며 길을 쭉 걸어 오르다 보니 어느새 독특한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세상 신남

헨젤과그레텔에 나올 것 같은 과자집이 보인다. 발상부터가 독특한 외간에 벌써 가우디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근데 계속 쳐다보니 배가 고픈 것은 머선 이유..?


개구리가 아닌 도마뱀

알록달록한 도마뱀 조형물부터 과자집까지. 머리털 다 난 나도 보기만 해도 재밌는데 애기들의 눈에는 이 공간이 얼마나 다채롭게 느껴질까 싶었다. 이 공간에서 걷는 것과 보는 것 외에는 한 것이 없는데도 그저 재밌었다.


가우디 건축물 너무 재밌어!!! 다음 가우디 건축물은 무엇을 봐야 후회를 안 하지?

가우디의 활동지였던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건축물들은 입장권을 받았었다. 가격은 할인없이 후덜덜하였다. 아직 완공되지 않는 사그라다 피말리아 성당 건축비를 위한 가격임을 알았지만, 모든 건축물을 돌아다니에는 돈이 넉넉지 않았다.


나에겐 암것도 엄서요

그렇기에 여러 건축물들 중 정말 가고 싶은 곳만 추스려 바르셀로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천천히 돌아다녀 보기로 하였다. 결정을 끝마치고 머리가 향한 곳은 사그라다 피말리아 성당이었다.


이 당시 11월로 여행 비수기 시즌이었기에 숙소와 교통편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예약하지 않은 채 여행을 시작하였다.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박물관 혹은 랜드마크에서 오랫동안 줄을 서고 들어간 경험이 없었기에 당연히 이번에도 사전예약 없이 몸만 달랑 들고 성당 앞에 도착하였다.


다음 기회에?

아주 길~~~게 늘어진 줄에 입을 세상 크게 벌린 채로 식겁을 하였다. 괜.. 괜찮아 기다리면 되니까. 성당 앞을 지키고 있는 직원들이 보인다. 알 수 없는 여러 줄의 갈래에 혼미해진 나는 눈앞에 서 계신 직원에게 어느 곳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되는지 여쭈보았다.


안타깝지만 성당 들어가려면 온라인으로 예매해야 해. 다른 가우디 건물들도 마찬가지야


오늘도 이마 짚는 패트와 매트

바르셀로나까지 왔는데 성당을 못 보고 가다니..? 조급한 손과 팔을 펄럭거리며 인터넷을 급하게 들어갔지만 오늘 일정은 이미 마감된 후였다. 그리고 남은 여정마저 사그리 예매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날도 성당을 바라보며 이마를 짚을 수 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꼭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애써 말을 두르며 완공이 된 후에 다시 오기로 기약하였다. 그리고 1시간 뒤, 우리는 든든한 배를 붙잡으며 아쉬움의 감정도 까먹은 채 성당 주변을 나왔다. 나름 또 여기까지 와서 얻은 것이 하나라도 있었다.


흠냐흠냐 츄베릅~

허탕을 치고나니 차가운 기온이 확 느껴졌다. 뜨~끈한 음식이 생각난다. 많고 많은 따뜻한 음식 중에 꼭 토마토 수프가 먹고 싶었다. 배라도 채우자 싶어 성당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야외에 펼쳐진 메뉴판에서 '토마토 수프'를 확인하자마자 이름모를 식당 안으로 직행하였다.


우리의 목적은 토마토수프 하나였기 때문에 토마토수프를 시키고 빠에야를 추가로 시켰다. 원래는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만..? 아주 맛있게 냠냠쩝쩝할 수 있었다. 사진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유럽여행 내내 음식 사진이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하다.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안한 과거의 나 자신 반성하렴,,.


토마토수프로 몸보신을 하니 침대에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만이 내 머리속을 지배하였다. 이쯤되면 여행때마다 이시간만 되면 항상 숙소가서 누워있는 것 같다만 나름 숙소에서 이것저것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 안물어봤다고요..??

숙소에 오자마자 남은 하루 동안 가우디 건물을 어디갈지 탐색하여 보았다. 남아있는 선택안은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구엘저택 세 가지 정도였다. 구엘저택은 카사바트요와 카사밀라와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어 다음날로 스킵하고 오늘은 카사바트요와 카사밀라에서 끝내고자 하였다. 이 둘 역시 가격이 매웠기에 외관상 가장 끌리는 한 곳을 선택한 뒤, 바로 노트북으로 당일 예약하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카사밀라!!
가 아닌 할로윈느낌 나는 [카사바트요]

점잖은 카사밀라와 다르게 지붕부터 테라스까지 화려함으로 둘러싸인 외관에 끌린 카사바트요였다. 입장하자마자 직원분들이 한국어로 반겨주셨다. 한국인들이 정말 많이 오는듯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까지 구비되었다. 유럽에서 한국어 가이드는 처음이라 세상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가이드를 들으면서 건축물들을 보니 조형물 하나하나 의미를 이해하며 볼 수 있어 이날 본 가우디 건축물 중에 가장 인상깊게 관람하였다. 무엇보다 영국, 프랑스와 전혀 다른 컬러와 조형물을 보다 보니 공간의 독특함에 또 다시 매료되었다. 건물 밖을 나와서도 우리의 감성평은 끝나지 않았다. 가우디의 매력에 취해가며 오마니와 침튀겨가며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하였다. 큰 도로변을 지나기 위해 긴 신호를 기다린다. 펑 트인 시야에는 높게 선 건물마저 덮어버릴 것 같은 거대한 분홍빛 노을이 들어온다. 어제의 안좋은 기억도 함께 덮어져가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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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따뜻한 커피 2잔으로 하루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은 대중교통 이용없이 발길 닿는 대로 마구잡이로 걸어보기로 하였다. 어제와 정반대의 방향을 걸어 나갔다.


음 경찰서를 가기 위해 지나쳤던 장소들이군..ㅋㅎ

이튿전날 밤에 돌아다녔던 이곳은 그저 정신없는 거리라고만 느껴졌는데 해가 떴을 때 걸으니 생판 다르게 느껴졌다. 먹을거리, 기념품 등등 재미난 것들이 거리 한가득 메워져 있는 공간이었다. 낯익으면서도 초면인 거리들을 지나쳐 구엘저택에 들어섰다. 성당은 못 갔어도 가우디 건축물은 알차게 즐기잣~


이곳은 어제의 카사바트요처럼 한국어 오디 가이드가 없어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챙겨 들어갔다. 그렇게 한 5분을 듣다가 못 알아듣겠어서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기로 하였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오디오 가이드 없이 열심히 구엘저택을 감상하고 있던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지 관리 직원 한명이 말을 건넸다. 당연히 내가 대답을 하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오마니께서 이를 알아듣고 자신 있게 먼저 대답을 하였다.


위얼 노스 코리안!!!!
오마니?

듣자마자 세상 식겁한 나는 조용한 내부에서 노우!!!! 위얼 사우스 코리안!!을 외치며 고개를 인정사정없이 저어댔다. 이러한 관경이 꽤나 재밌었는지 직원은 꺄르륵 웃으며 가우디 작품 설명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답을 건넸다. 얼굴이 후끈거렸지만 광대기질을 가진 우리는 심심했던 직원에 빅웃음을 준 것 같아 내심 뿌듯해하며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엘저택 옥상에서 한컷

가우디의 조력자인 구엘의 집이어서 그런가 지금까지 지나쳐온 가우디 건축물 중 가장 따뜻함과 정성이 느껴졌던 곳이다. 어제 지나쳐온 화려한 건축물보다 가장 만족도가 높았었다. 직원도 잘 챙겨주시고 주택 내부를 관찰할 때 1층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 들려 관람내내 따뜻함을 더해주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관람을 하고 밖을 나서려는 순간 다시 한번 아까의 직원분을 볼 수 있었다. 30분 만에 재회한 우리가 꽤나 반가웠던 건지 다시 스몰 톡을 건넸다.


잘 즐겼어?? 이제 어디로 가게??

보케리아 시장으로 간다고 말을 건네자마자 우리의 가방을 가리키며 꼭 가방 조심하라고 소매치기 너무 많은 곳이라며 따게 일러주었다.


그렇게 무장하여 보케리아 시장을 안전히 다녀온 후 우리는 3일 차에 되어서야 바르셀로나의 바다를 보러 갔다. 남프랑스에서 이미 완벽한 바다 풍경을 봤다고 생각했기에 크나큰 기대를 하지 않고 바다로 진입하였다.


감성 무엇..?

니스와 완전히 상반된 항구에 홀딱 반해버렸다. 그리고 항구를 둘러싼 테라스 식당은 유럽여행의 감성을 더해주었다. 감성에 취해 아무 생각없이 쭉 걸니 이번엔 모래사장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항구부터 모래사장까지 혜자스러운 장소 구성에 한껏 더 신나졌다. 열심히 풍경 사진을 찍고 난 후 얼마 안 가 배고픔으로 주저앉았다.


힘들ㅇ..ㅓ

배고픔으로 인한 현기증 전조증상으로 아까 그 감성 넘치는 테라스 식당까지 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대충 코 앞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래도 나름 블로그 검색 결과 첫 번째에 나왔던 식당이라 평점은 보장된 곳이라 생각하며 바다가 훤히 보이는 명당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밥사진은 없ㄷ..ㅏ

스페인에 와서 좋아하는 빠에야와 감바스만 먹었던 것 같아 이번엔 새로운 요리를 도전하고자 하였다. 처음으로 대구오일구이와 사이드 메뉴를 시켰다. 조금 짜긴 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른거릴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음 사실 스페인 음식 다 맛있는 것 같다.



옹동이를 들지못하게 만드는 풍경

밥을 끝내고 다시 천천히 산책도 하고 츄러스도 츄베릅하고 벤치에 앉아서 얘기도 하다 보니 어느덧 빠르게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내 뒤로는 야자수들이 눈앞에는 항구가 보이는 이곳에서 천천히 물들어지는 바다색을 보아하니 이제는 이곳의 좋은 점만 보이는 듯하였다. 오늘 마주친 슈퍼 아저씨, 박물관 직원 등 친절했던 사람들로부터의 유쾌한 환대. 축복받은 적당한 날씨와 자연. 마주했던 모든 것들이 어찌 첫날의 일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싶으며 바다를 등지고 야자수 길 속으로 파고드며 따뜻한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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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4일 차가 찾아왔다. 이제 이 도시의 매력을 발견했는데 벌써 끝이라니. 이상하다 꼭 사건사고가 많았던 여행지에서는 머물수록 첫인상과 정반대된 매력을 발견하곤 하였다. 그리고 떠날 때쯤이면 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에 늘 미련 가득한 채로 가기 싫은 발걸음을 어쩔 수 없이 돌려야만 하였다. 바르셀로나 마지막 날도 그러하였다. 마지막이었기에 이 도시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와 여러 작품들이 있는 몬주익 박물관 본 후 외부에 있는 분주쇼를 보며 마지막 밤을 끝내고 싶었지만 하필 내가 갔던 날은 분주쇼가 안 하는 날이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now~


아쉽지만 어찌한들 몬주익 박물관 근처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공원에서 티타임도 가졌으니 그거라도 만족하련다. 첫날부터 마라맛으로 반겨준 이곳의 첫인상이 좋을 수만은 없지만

2일째 되는 날, 엄마와 나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바르셀로나를 다시 보게 되고

3일째 되는 날, 바르셀로나의 항구와 바다를 산책하면서 만난 현지 사람들 다시 보게 되고

4일째 되는 날, 아쉬운 일정으로 인해 바르셀로나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그라다 피말리아 성당이 완공되는 날을 고대하며 하루가 끝나기 아쉬운 밤을 마무리하였다.






epilogue.

스페인에서의 일정은 바르셀로나에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우리는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로 향하였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꼭 지하철을 탔어야 했었다. 으 안 좋은 기억에 가방에 자물쇠까지 달며 한껏 무장한 차림으로 지하철 역 안을 입성하였다. 해가 이제 막 뜬 아침, 출근길을 가는 사람들 대신 한껏 사춘기가 온 10대 비행소년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술에 취해 보이는 걸음걸이 새벽을 꼴닥 샌 것 같은 눈동자들을 피해 지하철 표를 끊기 시작하였다. 잠시 기계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 뒤에서 안 좋은 기운이 느껴다. 신경이 예민한 나는 이를 알아차리고 바로 뒤를 돌아봤다.


너 일로와 진짜

새삼 조심스러운 손길로 자물쇠가 걸린 가방을 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껄렁이는 호다닥 발걸음을 옮기고 우리를 보고 웃으며 여유롭게 도망쳤다. 한껏 예민해진 나는 끝까지 우리를 보며 웃는 그를 같이 주시하며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가 사라지기 직전에 혼자 - 하며 웃는 표정에 아침부터 빡침을 돋우아 주었다.


예민하게 지하철 표를 끊고 전보다 신경이 더 곤두세운 채로 입성하였다. 비행청소년들은 집을 냅두고 이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일진친구들이 무서운데 여기도 한 마라맛이었다. 무섭지만 무서운 티를 내면 오히려 시비를 걸기 쉽다고 생각하기에 어깨를 쫙 피며 건장한 남성 옆에 촵 달라붙어 별일 없이 기차역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는 포르투갈 가기 위해 지나쳤던 곳으로 2일 정도 머물렀다. 짧았지만 근교 세고비아도 갔다 오고 마드리드 시내를 돌아다니다 숙소 근처 인생 감자튀김까지 만나며 만족스러운 마드리드 여정을 보낼 수 있었다. 여행자가 많았던 바르셀로나와 달리 마드리드에서는 공유일이 겹쳐 가족 단위를 숫 없이 보았다. 아이와 축구를 하는 아빠, 불만없이 사이좋게 가족들과 시내를 거니는 10대 청소년. 지나치게 행복해 보이는 미소들을 바라보며 이번에도 역시 지하철에서 반복했던 안 좋은 추억이 휘발되었다.


마음이 따수워졌던 세고비아에서


스페인 그리고 쿠바. 지금까지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계열 국가는 이 두 곳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 두 곳 모두 안 좋은 경험으로 문을 열고 여행 내내 첫 인상과 전혀 다른 감정의 경험으로 문을 닫았다. 글을 써내려가다보니  국가에서 오는 특유의 느낌이 비슷하였다. 따뜻한 날씨에서 오는 역동적인 성격. 음악에는 감히 몸을 냅두지 않는 흥. 나의 인생이 현재 최악이든 어떻든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이 지금 쬐고 있는 햇빛이 나를 신나게 한다면 신나는 것이다. 어쩌면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대책 없는 모습일지 몰라도 '지금' 눈 앞에 놓여진 것을 즐기는 모습에 난 더 매력을 느꼈다. 현실에 가진 것이 없어도 어찌하리. 고민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주어진 것은 신나는 것뿐인데.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인데.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 그들의 행동에 나도 자연스레 지금을,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불안감을 느껴도 어딘가 불편한 게 있어도 뭐 어때 지금 내가 눈 앞에 두고 있는 이곳 가진 것들이 다채로운데. 그렇게 여행에서 오는 수많은 변수들 그리고 삶에서 오는 변수들이 와도 스쳐가는 순간에 풍요롭게 가진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참 날씨가 좋다.구름이 한점도 없는 맑은 날씨가 지속하고 있다. 우연히 늦은 밤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서울에서도 북두칠성이 보이는구나. 삶의 여정이 순탄하지 않을지어도 밤하늘에 수놓인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순간, 이를 즐길 줄 아는 마음의 여유에 감사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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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6월부터 로컬 여행자의 여정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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