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고통과 평화로움
그 사이에서
나의 초등학교 시절, 습관적인 취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실에서 오빠랑 해리포터 DVD를 시도 때도 없이 보는 것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나에게 볼드모트의 생김새와 영화의 분위기는 꽤나 무섭게 느껴졌지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로움이 나를 TV 앞으로 이끌었다. 동심과 함께 쌓아온 영화의 기억은 유럽여행의 환상을 불어주었다. '유럽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한 번은 영화 속에 나오는 야간열차를 타 보리라.' 시간이 흐르고 유럽여행을 준비하는 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떠나기 전 미리 예약한 30일간의 숙박비와 교통비는 시간말고 가진 게 없는 휴학생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때부터 나에게 야간열차는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나라 이동에 숙박을 곁들인교통비와 숙박비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혜자같은 아이구나?
나의 유럽 여정 루트 중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길에 환상에 혜자를 곁들인 구성을 실현해보기로 하였다.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2일간 잠시 스페인 마드리드를 들렸다.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2일을 흘러 보내고 마지막 날의 해가 저물자마자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로 향하였다.
미리미리 가서 맘 편히 기다리자
숙박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은 반대로 야간열차를 놓치는 순간 우리는 그대로 바닥에 내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출발 시간보다 이르게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미 2주일 전, 영국에서 여유를 부리다가 기차를 놓칠뻔한 기억이 또 한 번 스쳐가니 정신이 바짝 들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두 번 실수는 엄서그렇게 아~무생각 없이 당~연하게 마드리드 중앙역으로 이동하였다. 여유있게 일찍 도착한 만큼 기다릴 시간도 많이 남았었다. 저녁도 안 먹고 출발했기에 우리는 역 안에 있는 샐러드 음식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오마니는 자리에 앉아 짐을 보고 나는 음식을 주문하러 카운터 앞에 섰다.
주문할게요
말을 떼자마자 주인장은 지금 자기 바쁘다고 손짓을 하며 말을 끊었다. 그리고 주인장은 긴말대신 이제 주문을 해도 된다는 눈빛을 보내며 주문을 받았다. 뭔가 기분이 언짢은지 애매한 표정으로 계산까지 이어갔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내 뒤에 있는 서양인 여행객들이 주문을 하였다. 직원은 몇분전과 달리 새삼 친절하게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내 음식이 나올 차례가 되니 뭐가 그리 짜증이 나는지 또 표정이 구려지기 시작하였다.
인종차별 머선일..?뭐야 왜 저래?
가만히 있다 온갖 짜증을 다 받은 나는 혼자 씩씩거린 채로 쟁반에 샐러드랑 주스를 들고 가다 발을 헛딛어 음식까지 엎을 뻔했다. 화가 꽤 많이 났다보다. 그때 옆에 있던 서양인 여행객이 쟁반에 조금 흘린 주스를 보며 휴지를 건네주었다. 점원으로 인해 기분이 언짢을 뻔했지만 좋은 사람들도 존재하기에 안좋은 기억은 빨리 흘러 보내자 흥
간단한 저녁을 마치지마자 영국 때와 같은 일을 면하기 위해 미리 기차 승강장 안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이번엔 좀 수월하게 기차를 탈 수 있는 건가? 하며 의기양양하게 한국에서 미리 인쇄한 QR티켓을 꺼내 들고 기차 승강장 번호를 찾기 시작하였다.
몇 분 두리번거리다가 떠나는 기차들이 너무 많아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지 잘 모를 때쯤, 그냥 직원에게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이 기차 타려고 하는데 어느 플랫폼으로 가야 하나요?
내가 건네준 인쇄물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고개를 저으셨다. 왜 그러세요...? 나 또 불안하게...?
이 기차는 여기 없어. 기차역을 잘 못 왔는데?
진짜 왜 그러냐... 나 자신아또 또 아무 생각 없이 직진본능으로 확인도 안 하고 머리부터 향한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마를 짚은 채로 이 역을 여기서 어떻게 가야하는지 물었다. 이쯤되면 여행 내내 이마를 하도 짓눌러 출국할 땐 납작해진 채로 떠나는 건 아닌지 싶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데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말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일단 절로 가서 기차를 타라니 정신이 한껏 나간채로 빠르게 이동하였다. 다행히 미리 도착 탓에 시간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에서처럼 수하물 검사와 입국심사 같이 예상치 못한 시간이 소요가 생길까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지하철 지도도 없이 내가 가야 하는 지하철 역만 덜렁 외우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여기가 맞는 것인가? 지하철과 기차 승강장이 수없이 펼쳐진 이곳에서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일단 직원분이 타라는 곳을 가서 탔다. 그리고 지하철 내부에 붙여진 노선을 닳도록 쳐다보며 이 기차가 맞는지 확인하였다.
..어랏..?
이 지하철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땐 이미 2-3개의 역을 지나친 후였다.
이마 좀 그만 짚고 싶다시간은 닳는데 자꾸 내 몸은 이상한 곳으로 와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가야 할 역은 자꾸만 멀어져 갔다. 이대로 열차를 못 타면 정말 어떻게야 하지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이때는 여행 경험이 많지가 않다 보니 유연한 사고가 되지 않았다. 나의 머리는 '열차를 놓치면 다른 열차를 타거나 게스트하우스를 급하게 예약하겠다'와 같은 생각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역무원에게 물어보았지만 큰 도움을 얻을 수는 없자 눈물은 그렁그렁 발은 동동 구르기 시작하였다.
아 진짜 어떡해ㅠㅠㅠㅠ
일단은 반대편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내 또래 여행객 무리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저희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원치 않게 흘러내리는 눈줄기과 콧물을 머금채 다짜고짜 기차역이 적힌 인쇄물을 들이밀며 말을 걸었다. 한 여행객이 입을 떼자 익숙지 않는 언어가 들려왔다. 한국사람이 아닌 중국사람이었던 것이다.
잣됐구나~ 기차역 노숙가자~지속 말을 건네는 것을 포기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가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찰나, 이번에는 아까 그 중국인 여행객이 나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도움이 필요해 보여요. 도와드릴까요?
여자 1명 남자 2명으로 이루어졌던 중국인 여행객 무리는 그렇게 우리에게 제대로 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는 동안 영어가 되지 않아 번역기에 의지하며 서로 소통을 하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자국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리고 끝까지 도와주신 마음과 행동이 너무나도 감사하였다. 내가 과연 반대의 입장이라면 나 또한 책임지고 도와줄 수 있었을까? 덕분에 더 헤매지 않고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였기에 그리고 나의 서툴었던 여행 경험으로 도드라진 못난 조급함을 비춰줬음에도 친절하게 나를 이해해줬기에 어떻게서든 고마운 마음을 비추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제 여기서 내리면 이들과 영영 만날 일이 없었기에.
내 손에 쥐고 있는 쇼핑백을 열어보았다. 영국에서 산 러쉬 입욕제가 보였다. 여행 동안 지친 몸을 풀어주려고 넉넉히 사놓은 것이었다. 이거라도 있어 진짜 진짜 다행이구나. 3개를 덥석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번역기를 들어 다시 그들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정말 너무 고마워요. 덕분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감사함을 너무나 표하고 싶어요. 선물을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하게도 선물을 받아주셨고 서로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하며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멍청함을 동반한 조급함 끝에 출발 30분 전 도착하였다. 여기도 설마 출국심사가 있는 건 아니겠지? 도착을 하였어도 머릿속에는 불편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온갖 호들갑으로 가는 길마다 사람을 붙잡고 이곳이 맞는지 재확인을 하다 보니 어느새 플랫폼 안으로 들어왔다. 기차는 이미 들어섰고 입장이 시작되었다.
응? 바로 이렇게 기차가 보인다고?? 여긴 입국심사를 안 하잖아??
난리 끝에 도착한 기차역은 근심 걱정과 다르게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입국할 때도 입국심사를 하지 않았지..? 스페인은 참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만 차분하고 쿨한 것만 같다.
우리의 칸은 침대가 딸린 4인실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숨이 컥 막혀왔다. 아직은 함께 할 룸메들이 오지 않았구나. 이젠 두 발 벗고 좀 쉬어야겠다. 다가올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오마니는 1층 나는 2층 침대로 향하였다. 몸에 이고 온 카메라와 가방 그리고 거의 한두 시간을 날다시피 달려온 캐리어를 내려 놓아야지. 가방을 올리고 카메라를 2층 침대에 놓았다.
ㅇ..안돼!!!!
하...여행기간 내내 나의 친구 같았던 카메라가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하였다. 나의 실수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저 나는 처참하게 바닥에 몸져누워있는 이 아이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듯 몇 초 동안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카메라를 들어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외관은 다친 곳은 없네.. 전원을 한번 켜볼까? 그렇게 카메라 렌즈가 사망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는 조급함이 떠나고 화가 몰아치려 할 때 밖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짜증을 쏟아붓기도 전에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혹시 이 엄마랑 방을 바꿔줄래요? 엄마가 애기 2명을 데리고 타야해서. 애기엄마가 모녀가 있는 이 방으로 가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요.
역무원은 젊은 여자 승객에게 다른 승객과 방을 바꿔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부탁을 받은 승객이 노 프라블럼 하자마자 우리와 하룻밤을 함께 보낼 룸메가 방에 들어왔다. 흘러 듣던 대로 초등학생 아이와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조그마한 아기까지 총 3명이 들어왔다.
넘 커엽잖아?안녕! 반가워~~~ 역무원이 우리를 이리로 소개해줬어
활기차게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어머니와 달리,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싶었던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우리를 경계하며 자신의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우리는 애기를 좋아해! 아이가 울어도 다 이해하니 편하게 있으면 좋겠어
아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어머니와 두 아이를 환영해주었다. 서로 통성명도 트고 간단한 이야기도 하고 아이와 조용히 놀아주다 보니 기차에 있는 잠깐 동안 카메라고 뭐고 짜증과 화남의 감정은 잠시 잊혀지게 되었다.
돌이 막 지나 보였던 여자 아기는 빠르게 잠들었다. 아이가 깰까 봐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나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기 전 유달리 길었던 저녁 밤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숙소에서 나온 뒤로 새로운 공간에 닿을 때마다 꼬였던 하루. 그 자리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끝은 매번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생겼던 하루. 참으로 신기하다. 난 참 별난 일도 많이 일어난다. 이런 사소한 사건사고가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오늘 하루 운수가 안 좋았나 보다. 근데 또 인복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나 보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과 예견치 못한 인연으로 인한 긍정적인 감정이 적절히 융합될 때쯤, 천천히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의 눈꺼풀도 서서히 잠기며 꿈속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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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창문 너머로 정체된 풍경을 비추는 햇빛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룸메였던 어머니와 두 아이는 떠난 후였다.
어제 저녁이 힘들긴 힘들었구나..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상황을 마주했던 우리는 천천히 달리는 기차 안에서 꿀잠이 들어버렸다. 우리 밖에 안 남은 기차 속 적막함이 우리를 빠르게 밖으로 내보내게 하였다. 캐리어를 꺼내고 다시 가방을 몸에 이었다. 마지막으로 잠시 동안 까먹었던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니 이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떠올랐다. 자신의 역할을 잃고 짐만 되어버린 아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잠시 현기증이 날뻔했지만 일단은 밖부터 나서자.
바깥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는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제발 이 좀 닦고싶억ㄱㄱ!
기차역 안 유료 화장실이 보였다. 한 사람은 짐을 한 사람을 화장실을 차례로 다녀온 뒤 전보다 덜 꾀죄죄한 차림으로 주섬주섬 챙겨 온 빵을 먹으며 약간은 그지같게 한편으로는 로컬 여행같은 감성으로 이 공간을 누볐다. 그렇게 반그지 체험을 하고 있을 찰나 익숙한 얼굴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 안녕!! 아직 안 떠났었구나?
우리를 견제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그리고 우리와 함께 밤길을 달려왔던 초등학생 남자아이였다. 밖에서 보니 더 애기같다. 기차에서는 나름 오빠 노릇을 한다고 견제를 하는 모습이 넘 귀여웠는데 혼자 보니 그냥 상애기가 따로 없었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화장실을 가고 싶었나 보다. 미처 화장실이 유료라는 것을 몰랐을 아이를 위해 동전을 챙긴 후 아이를 화장실에 데려다주었다. 아이는 볼일을 보고 다시 우리를 지나쳐갔다.
아침은 먹었어??
고개만 도리도리 젓는 아이에게 가지고 있던 새 빵을 한품 안겨준 후에야 돌려보낼 수 있었다. 현재는 오전 9시. 열려있는 상점도 거의 없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도 아직 답장이 없다. 기차역에서 무료한 시간을 더 때우다 스페인과 비슷한 날씨를 가진 이곳의 날씨를 즐기러 슬슬 캐리어를 들고 돌바닥으로 들어섰다.
대충 후회했다는 뜻바다 끝에 걸쳐진 리스본은 언덕 그 자체였다. 울퉁불퉁한 돌과 언덕의 조합은 우리를 10분에 한 번 꼴로 쉬게 만들게 하였다. 끙차끙차 돌바닥을 가르며 언덕을 오를 때마다 내 어깨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카메라는 나의 갈비뼈를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안 그래도 아파서 짜증 나는데 렌즈가 망가졌는 사실이 떠오르니 더 짜증이 난다. 다시금 찾아온 현기증과 함께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빨간 지붕 사이에 뻥- 트인 바다가 보인다. 잠시였지만 이 풍경이 갑자기 차오른 화를 잠재워주는 것만 같다.
시간은 금방 흐르고 호스트가 일찍이 등장하여 한껏 지친 우리를 반겨주었다. 숙소는 넓고 너무 깨끗하였고 호스트는 너무 친절하였다. 늘 에어비앤비 숙소를 가면 조식을 간단하게 요리해먹었는데 여기는 무조건 해 먹어야겠구나라는 들뜬 생각을 하며 한가득했던 짐을 내려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슬슬 밖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그리고 리스본에서 유명한 두솔 전망대로 향하였다. 좁은 골목 사이에는 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단숨에 숨겨줄 수 있는 건물들이 즐비하였다. 그리고 사람 몇 명이면 다 채워질 것 같은 자그마한 골목길 위에는 빽빽한 건물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가는 뚱뚱한 노란 트램이 지나갔다.
트램이 내게로 다가온다. 트램에게 길을 내어주고 나면 트램이 우리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서로 양보를 하면서 5분을 걸으니 탁 트인 전경이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였다.
바다 쪽으로 다가갈수록 잔잔했던 노랫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앞에는 빨간지붕들과 그 끝에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가 옆에는 비틀즈 노래가 뒤에는 작고 뚱뚱한 트램이 지나간다. 내 시야를 비집고 사람들이 오고 간다. 비틀즈 노래를 비집고 트램의 이동 소리가 들어오고 빠진다. 전망대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 나도 모르게 시각 그리고 청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고작 기차역을 잘못 가서 좀 고생한 것 때문에, 카메라 렌즈가 고장난 것 때문에 이렇게 여행 중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지금 앞에 펼쳐져 있는 모든 것이 나의 모든 실수를 덧없게 만들어주었다. 탈없이 여기까지 왔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과거에 탈이 있었든 없었든 전혀 상관없다고, 나를 온전히 가진 것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오전 내내 스스로 후회하게 만들었던 어제의 실수들이 이 꿈만 같은 평화 속에 완전히 잠식되었다.
바다 멍을 한창을 때리고 주변에서 식사를 한 후에는 발길 닿는 대로 막 걸어보기 시작하였다. 골목들이 많아서 그런가 이동을 할 때마다 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번엔 사람들이 생과일주스를 쥐고 나오는 가게에 들어갔다. 여긴 대체 뭘까? 들어가 보니 평범한 마트였다. 아니 평범한 마트인 줄 알았다. 매대에 놓인 과일을 사면 우리가 직접 과일을 넣어 기계과 생과일 즙을 짜내 주는 특이한 구조였다. 나의 픽은 오렌지 주스였다. 맛은 역시나 츄베릅이었다.
벤치에 앉아 쥬스를 마시다가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배는 엄청 고프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꼭 먹고 싶은 게 하나가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음식 사진이 없다는 뜻나는 감튀를 증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드리드에서 인생 감자튀김을 맛본 이후 나의 입은 감자를 더 갈구하였다. 그리고 아까 풍경 멍을 때렸을 때 테라스에서 사람들이 맥주와 감튀를 맛있게 즐기고 있는 것이 생생하였다. 사색에 잠긴 와중에 감튀가 내 눈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있는 장소인 상조르즈 성 근처에서 감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몇 분 뒤 골목 사이에 식탁으로 가득 메워진 야외 테라스에 앉아 감튀와 함께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감자튀김을 한 바가지로 주어서 아주 만족했던 식사였다.
이제는 밤이 찾아왔다. 밤에는 비틀즈 노래 대신 트램 소리가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트램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하였다. 숙소를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집앞 슈퍼에서 아침마다 간단히 먹을 계란, 빵, 과일을 샀다.
헐 애플망고가 1유로라고?
최애 과일이 세상 저렴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냉큼 집었다.
한국분이에요? 00유로입니다
..? 아저씨는 외국인인데 왜 한국말을..?분명 포르투갈 분이신 것 같았는데 한국말로 대답해주셔서 겁나게 당황하였다. 발음까지 스무스하여 왜케 한국말을 잘하시느냐고 물어보니 한국에서 일을 오래 하셨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동네 슈퍼를 들릴 때마다 한국말을 잘하시는 아저씨들을 만났었다. 아싸 숙소도 코 앞인데 이제 여기만 와야징~
그렇게 기분 좋은 하루의 끝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안고 이젠 트램도 지나가지 않는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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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니 벌써 2일 차가 찾아왔다. 오늘은 동네가 아닌 트램을 타고 메인광장과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벨렘지구를 가보기로 하였다. 골목길 사이는 귀여운 트램이 지나갔지만 언덕 아래로 내려오니 기다랗고 형체가 큰 트램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오늘도 역시 창문을 바라보며 느려졌다 빨라졌다를 반복하는 풍경을 감상하였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수도가 평화로운 곳이 있었나? 프랑스 니스에서 느껴봤던 감정을 리스본에서 비슷하게 하지만 색다르게 느끼며 이동시간을 채워갈 수 있었다.
에그타르트가 목적이었던 벨럼지구에 와서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도 함께 들렸다. 수도원은 볼 것이 크게 있지 않았지만 수도원에서 벨렝탑까지 산책하기 날씨도 풍경도 너무 좋았다. 옆에는 바다를 끼며 풀잎 따라 쭉쭉 걸으면 벨렝탑이 보였다. 그리고 근처에는 사람들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걸칠 곳에 찾아 피크닉을 즐겼다.
굴하지 않고 갬셩샷 건지기아 분위기 진짜 좋다~
기분 좋게 앞만 보며 무작정 걷고 있던 찰나, 어깨에 토끼를 얹고 있는 한 남성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남성이 내 어깨에 토끼를 얹어주었다.
이정도면 길가다가 토끼한테 공격 당한 수준자신은 토끼랑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닌다며 소개하였다. 그리고 나의 어깨에 불편하게 얹혀진 토끼를 편안한 자세로 바꾸어주며 나에게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소개해줘도 되냐고 물었다.
뒤에 계신 아주머니도 꽤나 흥미로우신듯 하다
갑자기 분위기 낸시랭갑작스럽긴 했지만 옆에 있던 이름 모를 소녀도, 아주머니도 사진을 찍어갈 정도로 즐거웠다면 됐다.. 어깨에 토끼를 얹고 있던 여행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홍보 겸 나에게 토끼를 넘겨주었던 것 같다. 이분의 계획 상으로는 내가 토끼랑 영상을 찍은 후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신을 태그 하거나 자신의 계정을 팔로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이런 상황 자체가 신기하다 보니 내 어깨에 얹힌 토끼와 함께 영상을 찍어달라고 오마니께 부탁했다만 결과물이 너무 처참하여 그 어느 곳에도 올릴 수가 없었다. 토끼와 함께한 사진 속 내 얼굴을 모자이크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느... 혼자 즐기기에 너무 아까워 친한 친구들한테만 원본사진 뿌렸을 때 단톡방이 뒤집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토끼와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에그타르트의 원조가게 집에 도착하였다. 나의 빵 취향은 늘 배척당하는 바게트, 견과류빵, 베이글과 같은 건조무미한 빵이었기에 에그타르트는 딱 먹을 만큼만 샀다. 에그타르트 패키지도 리스본 건물 타일에서 흔히 보였던 패턴으로 포르투갈 분위기 뿜뿜이었다. 이따 코메르시우광장에서 먹을 예정이었지만 따끈한 빵은 또 못 참지~
파리도 그렇고 포르투갈도 그렇고 원조는 다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소듕한 에그타르트를 겨드랑이에 끼고 이번엔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이곳 광장은 꽤나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드넓은 광장의 끝에는 바다가 바로 이어져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광장과 전혀 다른 구조로 신남은 한껏 더 해졌다.
개인적으로 코메르시우광장은 유럽 여행에서 마주했던 광장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이제 바다 풍경과 함께 에그타르트를 베어 먹는 소원성취를 하기 위해 광장의 끝으로 향하였다. 털썩 앉아 에그타르트를 베어 물었다. 증말 너무 좋악ㅏㅏㅏ
넘호 교소하규~ 말량말량하규~열심히 에그타르트를 냠냠쩝쩝하고 있을 때 옆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배부른 참에 에그타르트를 바라보는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 옆에 계신 아버님께 허락을 받은 후 남은 에그타르트를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이렇게 보면 감성 몇 스푼 흘러넘쳐 보이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무슨 정치단체 같은 분들이 시끄러운 북소리를 내며 광장을 휘집고 다녀 비지엠만큼은 감성 따위 없었다. 이제는 노을도 다 지고 귀가 살짝 찢어질 것 같다라고 느낄 때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밤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검은 배경을 등지며 이번에는 작은 트램을 타 두솔 전망대에서 야경까지 보고 나서야 하루 일정을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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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 길이 익숙해질 때쯤 벌써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오늘은 오마니가 꼭 가고 싶다 했던 세상의 끝, 호가곶을 가기로 하였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며 이동해야 하는 날인만큼은 아침까지 야무지게 먹고 든든한 몸으로 밖을 나섰다.
매일 같이 먹은 나의 아침호가곶을 가기 전, 신트라를 들려 잠시 근교여행을 하고 호가곶에서 노을을 즐기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도착하였다. 이날도 역시 구글 지도를 신뢰하면서 걷다 보니 이름 모를 지하철역에 도착하였다. 이 이름 모를 역은 용산역처럼 지하철과 기차가 함께 있는 큰 역이었다. 하지만 큰 덩치에 비해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다. 일단 기차역을 들어서 마자 보이는 티켓발권 기계 앞에 섰다.
빠르게 표를 끊고 티켓을 띡- 찍어 안으로 들어가 벽면에 크게 적힌 노선을 확인하였다. 야간기차 때처럼 멍청한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안녕하세요. 저는 똥멍청이에요노선을 뚫어져라 바라보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님을 직감하였다. 내가 있던 곳은 지하철역, 하지만 내가 정작 가야 할 곳은 기차역이었다. 그렇게 5분도 안돼 다시 티켓발권 기계 앞에 다시 섰다.
이번엔 역무원이 나타나셨다. 우리는 내려야 할 역을 역무원에게 말했다. 그리고 역무원은 '버스+지하철+기차+트램' 1일권을 추천해주며 기차를 타려면 2층을 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제는 진짜 됐거니 하고 발권된 티켓을 가지고 2층으로 향하였다. 티켓을 개찰구에 띡 하고 찍는 순간-
삐----
도대체 나한테 왜구랙아니 역무원에게도 물어서 티켓발권한 건데 또 안된다고?? 대체 뭐야??
2층에는 역무원과 현지인들 단 한 명도 없이 냉한 공기만 가득 차있었다. 다시 내려가 확인해보니 1일권도 2종류가 있는 걸 끊고 나서 알게 되었다. '버스+지하철+트램+기차'를 끊어야 했는데 '버스+지하철+트램' 1일권을 끊은 것이다!;
돈이 정말 아까웠지만 버스, 트램은 집 갈 때 탈 수 있으니 당장은 아깝다는 생각을 접어두고 2층에 다시 올라가 그곳의 티켓발권기에서 발권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잠깐 사이에 텅 비어있었던 2층에는 몇몇의 외국인 여행자들로 채워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반가움에 그들에게 향해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개찰구 앞에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우리와 같은 교통카드가 여러 장 들려있었다. 몇분 뒤 나도 개찰구 앞으로 빠져나와 이들과 같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달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정도면 가지 말라는 계시인가?
영어지원이 전혀 안 되는 티켓발권 기계는 무슨 소리인지 영 알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UI도 어렵게 되어있어 모두들 몇 번 시도를 하다가 돈도 멘탈도 새어나가 옆으로 빠져있던 것이다. 안내데스크를 간절히 쳐다봐도 처참하게 닫혀있었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직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쯤되면 기부하러 지하철에 온 수준그렇게 누구는 멘탈이 나가고 누구는 나처럼 멍을 때리고 누구는 티켓발권기와 씨름을 뒀다. 그렇게 10분이 흘러갔다.
띠딕-
승리의 미소와 함께 개찰구를 넘어간 여행자가 드디어 생겼다. 사용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은 하나 둘 기차표를 끊기 시작하였고 우리 또한 그 전술을 이어받아 드디어 기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보는 외국인 여행자들이었지만 손에 쥔 종이 쪼가리 하나로 전우애가 생긴듯하였다. 든든한 마음을 지니며 우리는 같은 기차를 타 드디어 신트라로 이동하였다.
신트라의 분위기는 시골 그 자체였다. 볼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지만 조용하고 널찍해서 산책을 하고 밥을 먹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 여유 있게 이곳에서 맛있었던 점심식사도 하고 기념품들과 자연을 보며 산책을 한 후 이제 슬슬 호카곶으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호카곶은 신트라에서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까 끊었던 '버스+지하철+트램+기차'는 허용되지 않았고 무조건 현금으로만 탑승이 가능하였다. 이날 아마 멍청비용을 포함한 교통비를 3만원 넘게 쓴 것 같다.
버스를 타고 30-40분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세상의 끝, 호카곶이 보였다. 세상의 끝이라니, 유유자적해 보이는 자연 속에서 거세게 우리를 지나쳐 가는 바람과 절벽 아래서 거칠게 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니 세상의 '끝'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언덕 위는 동화 속 같은 풍경해는 5시가 되자마자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다같이 모여 일몰의 과정을 30분 동안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우리보다 저 높이 있는 하늘에서부터 우리보다 하염없이 낮게 있는 저 바다 끝까지. 하늘과 바다 그 사이 절벽에 걸쳐진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해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세상의 끝'의 '하루의 끝'해가 완벽히 지기 직전, 호카곶에서는 막차가 지나간다. 이것을 놓치면 하루 동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나는 강하게 내뿜는 햇빛을 뒤로하고 먼저 정류장 앞에 줄을 섰다. 사람들은 절벽 아래로 해가 넘어갔을 때쯤 하나 둘씩 정류장으로 모였다. 그리고 칼같이 찾아온 버스를 올라타며 어둠 속 몇 안 되는 불빛들을 지나쳐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작고 뚱뚱한 트램 안에서
안녕 다음에 또 보아돌아온 리스본은 지나쳐온 절벽 위에 자그마한 불빛들과 달리 온갖 샛노란 조명들이 시내를 밝히고 있었다. 곧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넘쳐났다. 영국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는 아기자기한 조명을 지나쳐 작고 뚱뚱한 트램을 올라타 리스본의 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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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 계속될 일이이다.
<여행의 이유 中> 김영하
포르투갈의 여행은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이름 모를 여행자들의 신뢰와 환대를 받으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나갔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심적인 편안함이 생겼고 그 안일함은 정보의 치밀함 앞에 완벽히 져버렸다. 그렇게 가진 정보 없이 막무가내로 앞만 보고 쭉쭉 나아가기만 하였다. 계속되는 부딪힘 그로 인한 고통. 처음에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분명 주변 친구들은 큰 일없이 한 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나만 수고스러움이 유독 많은 게 아닌가라는 투정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여행지에서 관광을 내려놓고 로컬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순간이 잦아질수록 조금씩 나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모든 원인은 나의 조급함에서 시작되었고 해결은 사람으로 얻어졌다는 것을. 나는 평화롭게 여행을 즐기고 온 이들처럼 완벽한 여행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스스로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내 안의 조급함을 버리고 여러 여행자와의 경험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끝나고 서울에 돌아온 뒤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급급했던 성격에 여유가 생겼고 예견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노련미와 침착함이 생겼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만큼은 세상은 이런 것이라며 먼저 행동으로 환대를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첫 유럽여행을 작성했던 ep.10에서 나는 유럽여행을 이렇게 언급하였다.
이번 여행을 떠난다면 벌써 4번째 해외여행이 되겠지만 유럽 여행은 내게 제대로 된 첫 로컬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여행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 의미가 인생에 얼마나 깊게 들어가는지 함께 지켜봐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이제는 이 여행기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리고 남은 여정을 나아갈수록 더 큰 변수와 고통이 남아있겠지만 이쯤에서부터 나는 여행의 의미가 이전 일본, 태국 여행과 달리 내 삶 깊숙히 들어오게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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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6월부터 로컬 여행자의 여정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매주 목요일마다
한 달에 1명의 여행자씩
짧고 간결하게
정보성이 아닌 '이야기'를 중점으로
여정의 길을 늘 갈망하는 이들에게 재미난 에피소드로, 일상의 지루한 틈을 타 짧은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경험이 모여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게 만들어 주는 동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행의 이야기들을 모아, 지금 바로 move or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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