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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Apr 30. 2024

ep.10 [남아공] 스쳐 지나는 인연의 환대 속에서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ep10.

스쳐 지나는 인연의 환대 속에서


시끄럽게 귀를 울리던 돌, 모래, 알 수 없는 이물질들이 부딪히는 소리에서 벗어나 20일간의 짐을 어깨에 메었다. 이렇게 편해도 되는 것인가. 그간 바보같이 험난한 오지에서마저 왜 캐리어를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여행은 마음에 있는 것, 쓸데없이 손에 쥔 거 없이 오로지 필요한 것만 담아 어깨에 짊어가고자 한다. 매 여행에서 꼭 하나씩 잃어버리며 사고 치는 덜렁좌로서 아끼는 물건은 절대적으로 금지이다.


멕시코에서 잃어버린 카메라는 핸드폰으로 대체하고, 옷은 적당히 멋 부릴 수 있되 오지에서 뒹굴어도 무방한 편한 것들로 챙긴다. 그리고 무심한 물건들 사이로 가장 깊숙한 곳에 노트북을 집어넣는다. 이번만큼은 일을 피해 가려했는데 역시 일과 일상의 경계가 없는 프리랜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두 개의 배낭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단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노트북을 제외한 모든 전자기기는 내려놓는다. 다른 것 몰라도 노트북 너만큼은 진심으로 안돼!!!


여행은 떠나면 떠날수록 짐이 덜어지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 없어도 여행을 나아갈 수 있구나를 느끼며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어깨에 맨 배낭보다 노트북이 숨겨진 앞가방이 훨씬 더 무거운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가방을 앞 뒤로 짊어매니 이제야 여정의 시작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10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공항은 작년보다 더 많은 인파들이 몰려있었다. 일정에 쫓겨 얼레벌레 여행의 길에 올라탔지만, 게이트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여러 부산스러운 염려와 걱정거리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숨이 한껏 트인다.


환전소 마감시간으로 인해 4시간이나 일찍 온 공항에서 심심함으로 지칠 줄 알았는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가방 무게도 제고, 환전도 하고, 환전해서 돈 분리하는 작업에 들어가고, 여행계정에 업로드할 사진도 찍고, 사진을 찍자마자 자연인 상태로 돌아가니 벌써 1시간 30분이 순삭 하였다.


배낭과 노트북 가방의 무게가 비슷한 거 실화입네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뱅기를 타러 체크인을 마친 후 수속을 밟을 때였다. 에 쥔 핸드폰 화면 속 자신을 한시라도 빨리 봐주길 원하는 알림창의 요구에 맞춰 손이 따라 움직였다.


뭐야 OO아 지금 인천공항이야??? 나도 인천공항인데??????


예????

같은 시간 공항에 있다고요??? 어느 터미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놀랄 노자였는데, 문자를 이어갈수록 두 눈이 확장되는 일이 펼쳐졌다.


밤 12시에 같은 공항 같은 터미널,

비행기 탑승시간은 30분 차이,

심지어 둘 다 도착지가 아프리카 대륙.


이게 말이 되는가. 나는 남아공, 언니는 에티오피아로 향하였지만, 두 국가 모두 흔히 가는 여행지가 아니었기에 부리 낳게 언니가 있는 게이트로 달려갔다.


20대 인생에서 전환점과 같았던 퇴사 후 속초 한 달 살기를 함께하였던 메이트 중 하나이자, 프리랜서 첫 시작을 맺게 해 준, 여러모로 깊은 인연을 가진 언니여서 더더욱 반가웠다. 언니는 교회에서 해외선교로 에티오피아로 떠나고, 나는 여행으로 남아공으로 떠난다니. 그간 바빠 근황만 묻고 만나지도 못하였는데 이렇게 우연하게 그것도 동네에서도 아닌, 공항에서 만났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깐이었지만 30분간 근황을 묻고 앞으로 다가올 여정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발걸음을 향한 응원을 끝으로 각자의 여정길에 올라타게 되었다.


장장 20시간의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지만, 벌써 높아진 텐션에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장 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쫓기는 시간으로 인해 체력적 감당이 안되어 울면서 프로젝트 하나를 취소하고, 바로 그 전날엔 잠 1시간도 못 자며 밤을 새운 뒤 새벽 5시에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니 묘한 현타감이 밀려와 이 여정이 당최 맞는 것인가의 의문으로 사로 잡혀있었는데... 이전에 못 즐길 설렘은 지금 바로 원 없이 누릴 수 있게 해 주다니.


저질 중에 저질. 워스트 중에 워스트. 극악의 기관지를 지닌 나는 수많은 이동 경로 끝에, 다른 이가 태워주는 차와 배를 제외한 비행기, 버스 등에는 도가 터있어 열심히 기내식을 거르며 잠을 청하였다. 2n년째 익숙할 뻔한 멀미는 매번 새롭지만 유일한 장점이 하나 있다면 잠을 계에속 잔다. 키미테를 붙여 속은 편안해도 이상하게 밥을 먹고 이를 닦고 영상을 보고 화면 속 지구본을 굴려봐도 해도 결국 끝은 잠만 밀려온다.


덕분에 시간 순삭 능력을 지닌 자의 여유

이젠 해외만 나갔다 하면 기본 이동시간이 되어버린 10시간을 금방 흘러보내며 카타르 도하공항에 도착하였다. 석유국이라 그런지 공항부터 삐까번쩍이다. 짧은 경유시간 탓에 카타르의 공기 한 톨도 못 마셨지만 축구에 원래 관심 없고(당시 아시아컵 시기였다) 빌딩숲엔 더더욱 감흥이 없어 전혀 아쉽지 않게 남아공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 시간을 보며 아프리카가 생각 이상으로 큰 나라임을 이제야 체감하였다. 10시간 달려왔는데 아프리카 끝을 가기 위해 8시간을 또 가야 한다니..


미래의 나: 응 18시간 이동은 이제 시작이야~^^

그래도 레이오버를 안 해서 멕시코 입국할 때보단 체력이 봐줄 만하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 신기한 우연은 인천공항에서가 끝이 아니었다. 널찍한 항공기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동양인들 중 비행기 앞좌석 스크린에 한국어가 적힌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 좌석이 있는 라인을 담당하신 승무원님이 우연하게도 동양인이셨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가우뚱하였다. 한국분이실까, 중국분이실까? 어느 인종인지 모르겠지만 동양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위안이 되어주는 것만 같다. 이유모를 친말감에 편안한 자세로 몸이 풀어져 잠이 드니 어느새 기내식을 먹을 시간이 찾아왔다.


준비 되어있는 음식은 두 가지입니다. 어느 것을 드릴까요??


너무나 익숙한 한국어 소리에 놀라 고개를 올리니 밝은 미소로 식사를 위한 말을 건네주셨다. 한국분이셨다니!!!! 한국 이외 노선에서 한국인 승무원을 처음봐서 한국인일거라는 생각을 안하였는데, 보자마자 마음이 편해졌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외항사에 입사를 하고 비행을 하며 남아공으로 가는 한국인을 처음 보신다며 수많은 승객 중 이름모를 나를 크게 반겨주셨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심적인 안정감이 있었는데.. 이렇게나 반겨주신다고요...? 가슴이 뜨끈해지는 인류애가 벅차오르는 건 시작이 일부였다. 음료를 먹으면 꼭 커피과자 하나 더 챙겨주시고, 지나가는 길에 초코바를 슬쩍 주시고, 내리기 전에는 자리에 찾아와 주셔서 짧은 대화와 함께 안전하게 좋은 시간 보내라며 내 여정을 응원해 주셨다.


지나칠 때마다 하나씩 슬쩍 주고가시는 천사 승무원님...
 인류애 full 장챡...

여행을 떠날 때마다 비주류 여행지를 골라가다 보니 응원의 말보단 늘 걱정의 말로 돌아왔었다. 워낙 체구도 작고 여리여리한 편이라 한국에서도 근심걱정을 많이 받는 편인대 이름모를 여행지만 골라 가는 건지 의문을 사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귀딱지가 들도록 듣던 염려와 걱정의 말 대신 외딴 하늘에서, 그것도 처음 만난 한국 분께서 그토록 바라고 원해왔던 여정을 응원해 주시니 이 여행을 위해 지치도록 달려온 시간이 다 위로가 되어주는 느낌이었다. 아프리카로 오기 위해 마음도 몸도 미친듯한 힘듦을 지나왔지만 여행길에 오르는 순간엔 늘 새로운 상황과 인연을 내게 선물해 준다.


환대와 응원을 동반하니 20시간이 넘는 이동이 지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벌써 남아공에 도착하였구나. 나 정말 펭귄이랑 테이블마운틴이 보고싶었억!!!!!!!

20시간의 비행 끄읏-

이번 아프리카 여행 원래 생각했던 나라들이 아니었다. 작년 말부터 올해 2월 내로는 여행을 가야지 계획하였지만, 그곳이 아프리카일 줄 과거의 나도 몰랐다. 코로나 전후로 중남미를 오가니 이번엔 새로운 대륙을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넓디넓은 지구본 속 내 손이 멈춰진 곳은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 대륙은 목적인 단 하나였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어린왕자 테마 여행을 위해 대륙의 1/3을 차지하는 사하라 사막과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를 보는 것. 그리고 여행 뉴스레터를 운영하며 호기심이 생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에 가는 것. 어릴 적부터 아쿠아리아움을 갈 때마다 부모님께 사달라고 한 펭귄 외에서 야생으로 보러 가는 것.


조르는 나를 보고 ㄹㅇ 직원에게 얼마냐고 찐으로 물어보는 울오마니


명확한 이유로 마다가스카르와 탄자니아, 남아공이 1순위였으나, 마다가스카르는 여행시기가 2월과는 적합하지 않아 바로 포기하였다. 여행은 다음에도 기회가 많으니깐. 탄자니아랑 남아공을 위해 어디로 입국해야할지 골머리가 터지려 하였다. 두 나라가 이어지지 않았기에 육로이동을 거쳐갈 나라를 찾아봤지만, 빅토리아 폭포는 도무지 구미가 댕기지 않고 정보도 너무 없고.. 당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빅폴을 제외하면 어떠한 나라든 다 궁금하고 좋으니 동행을 구하고 동행 일정에 맞춰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구하기 힘들다던 아프리카 동행... 이게 웬걸 역시 나는 럭키girl인가??? 바로 마음 맞는 사람을 구해 케냐 IN 티켓을 구매하려는 순간~ 바로 일정이 무산되었다.


그래 이렇게 쉽게 될 리가 없찌...

동행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가장 1순위인 마다가스카르도 못가기에 아싸리 다른 대륙으로 시선이 돌려졌다. 남미대륙을 밟아본 적이 없으니 가장 가고 싶은 아르헨티나에 들어갈까..? 아님 요즘 꽂혀있는 인도를 혼자 확 가버릴까..?


스카이스캐너에 차례로 검색을 하다 아르헨티나 가격에 뒤집어질 뻔했다. 작년에 멕시코도 왕복 170만 원이었는데 편도가 150만 원이요???????


아르헨티나야 저렴하지도 않으면서 날 유혹하지 마~~~~

이번엔 인도를 쳐보았다. 가격부터 심신이 안정된다.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눈이 뒤짚혀 당장 인도를 가고 싶다는 충동이 미친 듯이 들었다. 근데 또 좀만 아껴두다 한 달이상은 머물고 싶은데... 마음속 변덕이란 친구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홀로 호돌갑을 떨며 난리가 났다.


혼자 생난리를 치다가 화면에 띄어진 곳은 결국 아프리카였다.


그래 이번 여행의 운명은 아프리카야!!!

어차피 사파리를 저렴하게 가려면 부분동행이라도 구해야 하였기에 매일같이 아프리카 카페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동행을 아 헤매었다.


아프리카 동행 구하기 힘들다는 게 정말이었군하.. 동행 글자체도 잘 안 올라고 대륙이 워낙 크다 보니 루트도 가지각색이였다. 그렇게 이번엔 구해지는가 싶더니만... 또다시 무산으로 끝맺을 뻔했을 때, 대화를 하고 있던 여행자의 말에 예상치 못한 나라로 향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미비아였다. 여행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여행자들의 이야기 속 나미비아를 향한 감탄과 애정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저렴하게 여행을 하려면 무조건 렌터카 빌려하는데.. 지금과 같이 기회가 있을 때 아니면 언제 나미비아를 갈 수 있을까 싶어 드디어 여정을 확정 짓게 되었다.


나미비아 비자는 한국에 대사관이 없어 발급받을 수 없기에, 나미비아 대사관이 있는 남아공을 먼저 들리고, 나미비아를 가는 완벽한 루트에 흡족하며 한시름 맘을 놓을 수 있었다. 다음 문제는 탄자니아였다. 2순위였던 탄자니아를 가려면 며칠의 육로이동을 하거나 비행기가 답인데, 물가도 아프리카 내에 엄청 싼 편도 아니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바다가 있는 곳에 꼭 가고 싶은데 어쩌지.. 할 때 불현듯 떠오른 곳은 바로 이집트 다합이었다. 탄자니아는 마다가스카르 갈 때 들릴 수 있으니, 물가가 훨씬 저렴하고 [여행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그 타이틀을 나도 경험하고 싶었다. 여행자들이 좋다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공간이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중동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집트가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다.


내 멋대로 완성된 특이한 여행 경로를 머릿속에 확정 지으며, 남아공을 제외하곤 선택안에도 전혀 없던 국가들을 향하게 되었다.

여행은 계획대로 안되어야 제맛

처음 맛보는 아프리카 대륙. 처음 보는 새로운 인종. 모든 것들이 처음인 케이프타운 공항에 가로질러 지나간다. 생판 처음인 대륙과 문화 속에서, 마치 이전에 온듯냥 헤매고 있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혼란틈에서 출발한, 예견하지도 못했던 이 국가가 운명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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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작년 멕시코 여행에 이어 이번 아프리카 여행 또한 조용하게 문을 열었다. 가족 그리고 몇몇의 지인을 제외하곤, 어디로 향하는지 며칠에 떠나는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주변 사람들 곁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모두가 그렇듯 낯선 공간은 이름만 들어도 생소함의 신비로움과 우리의 상상을 넘나드는 무서움이 공존한다. 새로운 곳을 향한 염려는 인간의 당연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이 호기심이자 취향인 사람도 때론 우리의 관심 밖을 넘어서는 또 다른 새로운 곳에서는 똑같이 염려의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염려의 말속에서 숨겨진 상대의 따뜻한 걱정을 분명히 알지만, 기나긴 기다림 끝에 준비를 다 마치고 듣는 소리가 근심이라는 한가득 짐을 선사해 줄 때 그 무게에 짓눌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번 여정을 작년 말부터 마음먹으면서 이번만큼은 바람 빠지는 소리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과 갈증이 침묵으로 이어졌다. 그 침묵은 정신없던 나날 속, 마음 한편 여행에 정신 팔려있는 나의 마음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만들어주는 큰 역할을 하였다.


질책과 염려의 말이 두려워, 오로지 응원만을 해줄 수 있는 이들에게만 말하고 떠난 여행의 시작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들과의 접촉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으로부터는 이전부터 원해하고 기대하였지만 막상 들어보지 못하였던, 응원의 메시지로 가득 차있었다.


스쳐지나 지는 인연이 가장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 힘으로 지쳤던 심신이 일어서기도 한다. 상대방은 전혀 의도한 바가 없을지라도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이 누군가에게는 의도와 전혀 다른 모양으로 마음에 안착되기도 한다.


최근 나에게도, 내가 전혀 의도한 바 없이 일상 속 누군가를 환대해 주어 기억에 남는 이가 되었다는 것을 건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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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여행을 가기 직전, 100만 원이라는 비행기값을 대차게 날리고 한 푼이라도 여행경비를 늘리기 위해 떠나기 직전까지 알바를 지속하였다. 당장 빠르게 할 수 있는 거라곤 단기 알바 밖에 없어 선택한 동네의 한 알바장에서 갓 성인이 된 귀여운 동생들과 일을 함께 하였었다. 20살 이레로 4년간 놀이공원부터 디럭스토어, 백화점, 베이비시터, 빵집, 공연장, 학원... 별의별 알바를 다 체험해 본 나로선 일 경험이 능했기에 동생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선뜻 알려주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나서서 대신할 때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주일간 하루종일 붙어있으면서 부쩍이나 친해진 우리는 마지막 날 다 함께 회식으로 알바를 끝맺으려고 하였다. 1n시간 후, 쿠바로 당장 몸을 실어야 하는데 아무 준비도 못한 나는 아쉽지만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 캐리어에 짐을 옮기는 선택을 하였다. 그리고 어엿 5년이 지난 뒤, 우연히 동네 지인이 내게 무언가 익숙한 이름을 아냐고 건네었다.

언니! OO이 알아요??

함께 알바를 했던 동생들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엄청 좋아하였는데 회식 때 함께 하지 못해 눈물을 보였다는 걸 5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지인이 닿지도 않았다면 평생 모를 뻔한 이야기였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그들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그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돈을 벌겠다고 알바를 하는 마음이 너무나 예뻐 귀여워해준 것과 필요할 때 조금 도와준 것뿐인데, 아이들 입장에서 첫 알바가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되어 다행일 뿐이다.



과거 학창 시절의 기억도 덩달아 떠올라졌다. 중학교 시절 영어학원에서 만난 선생님이었다. 요일마다 수업이 달라지면서 그에 따라 선생님도 달랐었는데, 학원의 맨 끝에 있던 강의실에서 배운 선생님의 첫인상은 어린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고급스러운 레이어드 컷에 샛검은 머리, 얼굴은 하얗시고, 얼굴까지 예쁘신. 패션까지도 완벽해 펜을 돌리는 거 마저 멋있게 느껴졌던, 내가 상상한 커리어 우먼 그 자체셨다. 어린 내게 너무 멋지시고 따뜻했던 분이셔서 유난히 이 선생님을 좋아하였다. 같은 반 남자친구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힘들어 하실 때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늘 따뜻하게 맞이해주시고, 손에 돌리고 계신 펜이 예쁘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내주시는 선생님이셨다. 그러다 잠시 나는 학원을 다른 곳으로 바꾸고 몇 개월 뒤에 다시 이 학원으로 돌아와 맨 끝 강의실을 열었을 땐 이 선생님도 다른 학원으로 떠난 후였다. 어느덧 그 자리를 대신한 선생님이 더 익숙해 져버린 2년 뒤, 학교의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내게로 와 말을 건넸다.

필자야 너 OO선생님 알아?

OO선생님? 그게 누구였지? 이름을 기억하기엔 그 시간 동안 많은 선생님들을 거쳐갔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 선생님이 이전에 있었던 학원명을 말해주며, 흐릿했던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나 그 선생님 엄청 좋아했는데! 완전 예쁘고 멋있는 선생님이야
그 선생님이 지금 내가 다니는 학원 선생님인데, 이전에 있던 학원 다니는 동안 말 안 듣는 남자애들 때문에 많이 힘드셨데. 근데 잘 따라주고 유난히 자신을 좋아해 주는 너 덕분에 힘이 났었다고, 네가 잘 지내고 있는지 근황을 물어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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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환대는 한 사람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겨질 수 있다. 환대는 단순히 누군가에 물질적인 무언가를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짧은 만남일지라도, 강렬한 행동을 남기지 않아도, 작은 말 한마디를 건넬지어도, 늘 그랬듯이 평소처럼 행동할지어도.


삶 속에서 묻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이야기와 여행의 길 위에서 그리고 뉴스레터를 인연으로 알게 된 여행자들을 보며, 올 한 해 유난히 이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여행을 통해 이렇게 작고 큰 도움들을 받았었고,
너무나 큰 삶의 깨달음을 매번 얻어가는데
나는 대체 여행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환영과 관심이 나의 여정에 힘을 주었던 것처럼,

반대로 나의 환영과 관심이 누군가에게 힘을 주었던 것처럼,

이 아프리카 땅에서 크나큰 액션이 아닐지어도 분명히 내가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 같다.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p147, <책 여행의 이유-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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