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에서
나 체크인 언제 해줘...? 비행기 놓칠까 봐 너무 불안해!!
정오밖에 안 된 시간, 나미비아 빈트후크 공항의 체크인 대 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서 있기까지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가. 비행기에 몸만 실은 다면 하루가 다 끝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불과 6시간 전이다. 나미비아의 사막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스와콥문트에서 해와 함께 기지개를 펴며 새벽부터 빈트후크를 향해 출발하였다. 오는 4시간 동안 광활한 오지를 누비며 동행자 언니의 공군시절 썰(이 언니는 직업 군인 출신이었다.)과 여행의 가치관을 서로 나누기도 하다가, 잠시 한국에서의 온라인 회의도 하다가, 캠핑 장비를 모조리 반납한 후 시간이 촉박함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오릭스 고기 만찬을 입에 물고 나서야 허겁지겁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이 땅에서 그토록 바라왔던 아프리카 비트의 음악이 커다란 벤에 울려 퍼지었다. 거대한 체급은 강렬한 리듬의 공명만을 위해 준비된 듯, 나와 택시기사뿐이었다. 인자한 미소를 가진 택시기사는 '오늘 날 불러주어서 너무나 고마워'라는 진심이 담긴 말을 건네며 음악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아프리카 노래야!!!!
신난 말투와 함께 엄지를 치켜세우며 흥이 난 나의 모습을 보고 볼륨을 더 키워 1시간이나 떨어진 공항을 위한 속도를 밟았다. 모잠비크 출신인 운전기사는 이번 한 주 승객이 없어 힘들었다고 한다. 그에게 귀한 손님이었던 것만큼 대화서부터 음악 그리고 이 택시에서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친절함을 내게 묻어주며 비행기 시간에 쪼들려진 나의 마음을 편안히 잠재워주었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부리나케 달려 체크인대 앞에 숨을 헐떡거리며 여권을 들이밀었다.
아니 근데 이게 웬걸, 지금 1시간 채 똑같은 자리에서 멍- 만 때리고 있다.
걱정하지 마, 너의 비행기는 떠나지 않을 거니깐.
내가 환장하는 깨끗하고 정결한 손톱에 앙칼진 손끝을 지닌 남자 승무원은 핸드폰으로 나의 여권을 찍으며 다른 직원에게 답이 오기를 기다리는듯 컴퓨터 속 업무를 이어 보고있었다. 우리나라 기준 이집트 비자의 경우, 이집트 착륙 후 입국심사 전 도착비자를 구매하면 되지만, 비자 방식이 나라마다 달라 승무원이 이를 몰라 오래 걸리는 듯하였다. (내게 비자와 이집트 out 티켓이 왜 없냐고 재차 확인한 것을 보면 아프리카 대륙은 비자를 미리 신청해야 하는 듯하다.)
아씨 큰일 났다.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1시간밖에 안 남았다. 보딩 시간까지는 30분도 안 남았다.
불안해서 마음이 미쳐 날뛰고 있을 때 승무원은 새침한 고개를 나에게 돌리며 카이로에서 무엇을 할 예정이냐 물었다. '피라미드는 갈 거지?'에 당연하다고 대답하자, 다시금 앙칼진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핸드폰 속 사진첩에 들어가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 헤매었다.
사진 봐바 완전 잘 찍혔지? 부킹닷컴 피라미드 투어 추천해.
너도 피라미드 가면 이거 이용해 봐. 호객행위로부터 떨어져서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구.
새침한 그대인 줄 알았더니만... 세상 친절하고 겉만 도도한 boy... 였다. 피라미드를 뒤로 화려한 천 패턴을 머리에 두른 채 낙타를 탄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집트에 1도 안 알아보고 와서 이건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땡큐다 이 말입니다. 근데, 잠깐. 우리 좀 삼천포로 빠진 거 같지 않나요? 그래서 전 대체 언제 들어가냐고요!!!!!
포르투갈에서 비행기 시간이 전날로 뜬금없이 바뀌어 떠나보낸 경력 1회.
쿠바행 비행기 타기도 전 비행기값을 날린 경력 1회.
제주도행 비행기 타려다 신분증 없는 걸 공항에서 발견하여 다시 지하철로 뛰면서 비행기 표 취소하고 집으로 부리나케 가는 길에 재티켓팅 했던 경력 1회.
시간 약속을 매번 철저하게 지켰으나 무려 여행에서 새롭게 창조해내는 비행기 이슈만 3회째인 나는 똥줄이 타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대체 언제 티켓팅과 수하물이 완료되냐는 말이 빈번해지기 시작할 때쯤, 위탁수하물을 드디어 올릴 수 있었다. 이제 보딩시간까지 10분밖에 안 남은 시간, 남자 직원은 티켓과 여권을 내게 돌려주면서 한 단어를 읊었다.
뛰어.
뛰라는 말에 냅다 뛰었는데, 순간 기분이 묘하면서도 킹받기도 하였다. 제기랄. 기내로 들어가기 전 또 자그마한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치안 혹은 인프라가 불안정한 나라를 갈 때면 늘 생각지도 못한 중간 절차가 너무 많다. 글씨를 세발네발 초스피드로 쓴 다음, 기내로 딱- 들어가는 순간 바로 코 앞에 경유지인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게이트가 반겨주었다.
와, 보딩시간 5분 전에 도착이라니...
숨을 고르자마자, 다시 한번 게이트 보딩시간을 보는데.. 응..? 왜 비행기 출발시간이 보딩시간으로 바뀌었지..? 비행기 티켓과 화면을 번갈아보다 남자 승무원이 내게 '괜찮아~ 너의 비행기 안 떠나~'하며 여유를 부린 이유를 깨달았다. 이렇게 감사한 비행기 연착은 없을 것이다. 후
30분이 연착이 되어 숨을 고른 채,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승무원이 비행기 탑승 전, 이집트 out 티켓을 꼭 끊으라고 당부를 줘서 이제야 한국 갈 비행기 표를 끊고, 비행기로 들어가기 직전에서야 이집트에서 첫날 묵을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다시 나 홀로가 되었다. 한국의 설날 연휴가 지나가버린 이집트에서의 시간, 새벽에 도착하자마자 업무를 마친 뒤 보내야 할 메일이 있었기에 1박에 7,000원짜리 호스텔은 입맛만 다시다 공항 근처 저렴한 호텔로 예약하였다. 여행 이전부터 나미비아에 너무 신경쓰느냐 남아공과 이집트에 쏟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 이집트에서 뭐 할지 그리고 피라미드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일단은 이곳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타 다시 이전처럼 모든 것 이곳의 상황에 맡기도록 한다.
약 8시간의 비행 끝에 경유지인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였다. 나미비아에서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값이 한국에서 남아공으로 왔던 편도 티켓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기에 경유시간이 40분밖에 안되어도 가장 싼 티켓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에티오피아 공항에서 1시간 경유면, 커피 한 잔도 가능하다.'라는 어느 여행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걱정이 없이 도착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내가 탄 비행기는 연착되었지 않았나...?
하 오늘 정말 몇 번을 뛰는 거야...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부리나케 뛰었다. 내가 에티오피아를 왔어야 말이지. 아프리카의 최대 경유 Hub인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넘 얕잡아 본 내 오만함이 죄이다. 연착으로 보딩 마감 시간까지 20분이 남은 상태였다. 경유지에 설마 기내 수하물 검사는 없겠지..? 지금껏 여행하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걸?!
으악각략ㄱㄱ 이제 사람 잡아먹는 '설마'라는 단어따위 입도 올리지 않으리-
이 세상 저리 가라 할 오두방정으로 신발을 벗고 가방을 바구니에 올린 다음 그 누구보다 빠르게 기내 수하물 검사를 마치고 나와 함께 뛰고 있는 여행객을 따라 크나큰 공항의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헉-헉- 하.. 비행기 문닫히기 5분 전 도챡….
이집션 승무원이 보이자마자 모든 긴장의 끈이 팍 풀어진 듯 너덜너덜한 채로 승객 하나 없는 고요한 탑승 검사를 마치고 입성할 수 있었다. 연착만 아니었으면 후기 그대로 에티오피아 커피는 맛보고 갈 수 있었는데.. 후 일단 탔으니 됐다.
비행기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자리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길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하였다. 그리고 자리로 향하는 내내 이집션으로 보이는 승객들이 남자여자 할 것 없이 반딱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환영을 당하였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한 환영당함에 어쩔 줄을 몰라 빨리 엉덩이를 붙였다. 근데 이 환영이 기분 나쁘지 않고 설렌다. 치안으로 인해 몸을 사렸던 남아공과 대자연으로 인해 두 발로 자유히 걷지 못하였던 나미비아를 지나, 그리웠던 사람과 부딪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미 시작이 돼버린 이집트 비행기 안에서 다가올 여정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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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내에서 매 이동은 지연되지 않은 적이, 분주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새벽 2시가 넘는 어두컴컴한 새벽 드디어 도착지에 발을 디뎠다. 이 새벽에 유심칩이 판매할련지, 택시가 잡힐련지 의문이다만 여긴 이집트이니 이곳의 분위기처럼 어떻게든 되겠지 않나?
도착비자를 산 뒤, 입국 심사대를 기다리며 빠르게 줄어드는 줄에도 적어도 out 티켓만큼은 확인하겠지 싶었는데, 인사 한마디 외 아무런 질문도 없이 30초 만에 입국 도장이 찍히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out 티켓을 다합에서 끊으려했지....흡...(다합이 너무 좋으면 하루라도 더 늦게 가거나, 에티오피아 혹은 터키에서 레이오버하고 여행을 끝마치려 했다.)
속전속결 입국에 어벙벙하게 위탁수하물로 향하니 유심칩이 이 새벽에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공항은 밤 10시 넘으면 은행도, 유심도 모두 얄짤없이 퇴근인데 이것만큼은 좋구나-
호객행위에 벗어나 우버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맘 편히 등딱지(베낭)를 다시 장착하고 이집트의 땅으로 나아갔다. 사하라 사막을 떠오르는 더운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새벽 공기와 조용한 밤거리가 반겨주었다. 으음- 생각보다 조용한 이집트라니 실망스러운데 생각하다, 아 맞다 지금 새벽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 이마를 탁 쳤다.
신호등을 건널 때, 희미하게 택시- 택시? 외마디에 괜한 서운함이 떠나갔다. 이렇게 오늘의 하루가 종지부를 찍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버가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거 완전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우버에는 익숙한 숫자 번호판이 아닌, 아랍어 번호판이 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랍어를 한 자도 모르는 자에게 이게 무슨 일이야???
이집트에 무지한 것이 이집트 공기를 들이마시자마자 다 들통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직 순수했다. 우버에 비치는 자동차 색깔과 비슷한 차가 내 눈앞에 보이자마자 '너 우버기사야?'를 외쳤다.
나 너의 우버기사 맞아!
순하디 순한 나의 영혼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차에 탑승하자마자 핸드폰에는 우버 기사 승인의 메시지가 아닌, 취소 메시지가 떴다.(우버는 차에 타면 바로 승인 메시지와 함께 경로 이동 창으로 바뀐다.)
뭐야 너 우버기사라매!!!!!!!! 우버가 취소됐잖악!!!!!
새벽 5시에 일어나, 시리얼을 말며 아침을 깨우고 비행기 2번 다 아슬아슬하게 똥꼬쇼를 펼쳐가며 드디어 새벽 3시에 이곳으로 와 온몸이 피곤에 절어있는데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끝이 아니라니.
아니야 나 우버 기사 맞다니까? 기다려봐!
무언가 뚝딱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핸드폰 속 어플을 찾아 들어가는 꼴부터 범상치가 않다. 그러고 나서 내게 우버라고 보여준 App은 딱 봐도 우버랑 비슷한, 근데 우버는 아닌 플랫폼을 보여주었다.(마치 한국에서 카카오택시, UT가 아닌 마카롱 택시를 보여주는 것 같은 바이브이다.)
아니 우버는 이렇게 생겼다고!!!! 차 당장 세워!!!!!!!!
짭우버를 보여주는 동안 이미 슬금슬금 운전을 하고 있어 공항을 벗어난 도로변에서 나랑 택시기사의 한바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1라운드, <우버 기사 맞다 vs 아니다>가 펼쳐졌다. 첫 번째 게임은 내가 이겨 택시 기사가 우버 기사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2라운드가 바로 이어졌다. <15달러를 내라 vs 싫다 그럴 거면 당장 내려달라> 이는 차 한 번을 멈춰 세우고 택시기사가 '이 도로에서 내려줄 수 없다며' 진정과 회유 그 사이에서 말재간으로 따돌린 후에 다시 싸움은 이어졌다. 말싸움을 이어갈수록 호텔과 가까워져 갔고, 택시 기사가 부르는 가격도 내려갔다. 어라라...? 내려간 게 10달러라..? 절대 그럴 순 없다. 이미 우버로 가격을 다 봐버렸고, 현재 이집트 파운드가 없고 달러밖에 없는데 이게 웬 말인가. 그리고 오히려 이집션들은 달러를 원해하지 않는가?(2024년 2월 당시 이집트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파운드 화폐가치가 엄청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달러가 더 취급받았고, 달러로 암환전 할시 기본 환전액의 1.5배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내리기 직전부터 내게 이렇게 애원했다.
제발 8달러로 해줘 제발!!!!!
쿠바에서, 멕시코에서 잔돈으로 500원, 1,000원.. 사기꾼으로부터 잘만 뜯겼던 호구 여행객이 경험치가 쌓여 기존쎄가 되어버렸다. 8달러가 웬 말이냐. 2라운드 시작부터 4달라만 외쳤던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4달러를 택시 기사에게 쥐어지고 'Bye-' 하며 이집트의 고요한 새벽, 가장 열불 나서 뜨겁고 화려했던 환영을 마치었다.
비행기 탑승부터 호텔 입성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조용할 것 없었던 이집트의 시작은 정신없기도 하면서, 기대한 만큼 현지인과의 부딪힘이 좋듯 좋지 않는듯 흥미를 돋우게 해주기 충만하였다.
새벽에 도착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업무에, 밀린 빨래 세탁에, 환전에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시내와 공항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곳을 떠나, 이제부터 저녁 시간만큼은 일에 전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값싼 호스텔 대신 독방이 있는 구시가지 센트롤 쪽의 호스텔로 이동하였다. 이 저렴한 물가를 지닌 나라에서 '하루에 만 원으로 살아남기'를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선 도저히 안될 것 같다.
이집트는 우리가 미디어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람과 환경 그대로였다. 거리를 나설 때마다, 이유 없는 차의 클락션 소리, 그 위에 얹히는 노래와 라디오 소리, 그 좁은 공백마저도 채우는 현지인들의 대화와 여행자를 잡는 소리. 택시와 길거리를 오가며 이들에게 클락셴의 의미는 큰 뜻 없이 '그냥-'임을 알 수 있었다.
음, 여행자*가 지나가네 빵-
음, 차가 왜 이렇게 막혀? 빵-
음, 내 손이 클라셴에 걸쳐있네? 빵-
(*이집트 택시는 겉모양만 봐서 택시임을 인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외국인이 지나가면 빵빵 거리며 창문을 내리고 '택시?' 거리는데, 이는 캣콜링, 인종차별이 아니라 그저 '택시 탈래?'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여행 시 참고 바란다.)
정신없는 도로 속 쌩쌩 달리는 차를 비집고 무단횡단은 속히 들은 소문보다 더하였다. 횡단보도가 있음에도 그는 아무런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시간 맞춰 불이 켜지고, 불이 꺼지면 망정이다. 불조차 켜지지 않는 것이 수두룩이었다. 자동차들은 이를 무시하고 질주하였고, 사람들은 익숙한 듯 무념무상한 표정을 지은 채 그 빠른 차들을 잘 피해 길을 건너갔다. 이집트와 첫 만남을 새벽에 입장하였음에도 치안이 전혀 안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오히려 이전 나라들에 비해 엄청 안전하다 생각했다.), 여행자 사이에서 극악으로 유명한 '국립박물관' 앞 차선, 그리고 '고버스' 정류장 앞 차선을 건널 때 죽음의 공포가 몰려올 정도였으니..
악명 높은 호객행위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상한 만큼 어딜 가나 빠지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사기가 탑재되어 있었다. 늘 어딜 가면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말을 붙였고(사진 촬영 요구거나 플러팅이거나 사기이거나 아님 정말 친근감에서 오는 대화 거나 이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예절로는 살짝 무례할 수 있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 볼 때면, 이곳이 역시 이집트구나!!!! 하며 기대한 이집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웃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기했다. 이곳에 있는 내내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길을 걷을 때마다 신이 났고, 말을 걸 때마다 이들의 의도가 나쁜 의도가 아님이 전해졌다. 여행 유튜버들이 담겨낸 자극적인 모습들이 어느 정도 사실임을 인정하지만, 다합으로 가기 전 고작 이곳에 있는 3일 동안 스테레오 타입에 가려진 이집트의 매력이 내 눈엔 더 선명하게 닿았었다.
정신없는 도로 속 쌩쌩 달리는 차를 비집고 무단횡단 에피소드 중, 극악인 '고버스'로 향하는 길에서는 유난히 몇 번을 주춤주춤 하였다. 야밤에 홀로 싸움터 같은 도로를 뚫고 갈까 말까 발을 옮겨가고 있을 때, 옆에서 담배를 물고 있던 이집션 할아버지가 아무런 말도 없이 따라오라는 손짓만 하였다. 드넓은 차선을 함께 걸어준 뒤, 내가 원하는 길에 닿자마자 주저함 없이 다시 담배를 이어 피며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었다.
너무 고마워요!!!!!!!!!!!!
뒤돌아 길을 건너고 있는 할아버지께 조용한 밤거리를 메울 정도의 큰 소리로 고맙다고 손을 모아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20분이 넘게 등딱지를 들쳐메고 정신없는 도로들을 수없이 지나쳐 고버스 앞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정류장이 맞는 것인지 확인 차 수 놓인 매점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고버스 정류장이 이곳이 맞나요?
이곳이 아니라, 버스정류장은 저기야-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멈출 생각 없이 생생 달리는 차들이 둘러싸인 동그란 도로 정중앙에 나열된 버스들을 가리켰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기라도 한 것인지 이번에도 역시 자기를 따라오라며, 카이로에서 경험한 가장 험악한 도로변을 함께 뚫고 가주었다. 그리고 내가 안전히 고버스 정류장으로 안착하자마자 쿨하게 인사하고 가버렸다.
극악무도한 교통편에도 이집션들 덕택에 가장 위험한 무단횡단을 할 때마다 함께 걸어주었다.
그 흔한 사기 행위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매번 자연스러운 언변으로 '역시 이집트-!'라며 고단수임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여행하기도 전에 여행 유튜버가 떠오른 말을 떠올라 기습적으로 다가오는 언별술에도 별 큰 타격감도 스트레스도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이집션들은 사기를 치는 게, 장사를 '잘'하는 것으로 보는 거예요.
사기를 친 가격에 팔았다? 그럼 언변을 '잘' 했다고 보고,
제 가격에 팔았다? 그럼 그냥 평소대로 판 것인 거죠.
이 관점으로 보면 호객행위의 여행 난이도가 생각보다 어려워지지 않는다. 칼릴리 시장에서도 상인들의 값의 2/3 값으로 회답하면, '나 이럼 장사 못해~~~' 하다가도 '그럼 안 사지 뭐~'이런 텐션(이라 말하고 기싸움이라 한다)을 취하니 그럼 '이 가격으로 협상하자'로 의결이 맺어진다. 이것도 한두 번 하다 보니 적응이 되어서 '나 여러 개 사니까 개당 1달라씩 해줘~'라는 뻔뻔함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여행객 또한 사기에 걸려들지 않으면, 장사꾼에 지지 않으면 '성공'했다고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칼릴리 시장에서는 입성부터 이곳을 빠져나오기까지 재미의 연속이었다. 귀찮아서 침대에 널브러져 갈까 말까 머리를 쥐어뜯다가 용케 일어나 발을 뗀 곳에서 도파민 폭발이라니-
기념품 쇼핑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의 밤거리에 내앉아 따뜻한 차와 피자를 시켰다. 자리에서 홀로 셀카를 찍자마자 여자들은 쪼르륵 달려와서는 '한국인이지?'하며 '귀여워!!'하며 사진 요청을 줄지었고, 앞에선 이집션 남자들이 손키스와 윙크를 난리기 시작하였다. 양옆의 질주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이번엔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다시 홀로가 나를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같이 브이-를 하며 자연스레 앉았다.
할로? 너 아라비어할 줄 알아?
나랑 이어 영상과 사진도 찍고, 테이블 앞에 있는 넛츠를 인생 n년차의 자태로 먹다가 갑자기 내 핸드폰을 가져다 유튜브 숏츠를 보았다. 연속되는 난잡한 이 상황이 싫지 않고 너무 어이없고 웃겼다.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가 이렇게 내 옆에 어색함도 없이 달라붙어있다니.. 심지어 숏츠를 심취해서 보길래 피자 한조각도 내어주었다. 이 아이랑 대화를 해보니 시장에 일하는 어머니를 따라 나온 아이였다. 돌아다니다가 자기 따름엔 재미난 타깃을 발견한 듯 모양이다. 식당 주인이 자꾸 내 옆에 달싹 꼼짝 붙어 있는 아이에게 '엄마한테 돌아가-!'하며 혼내어 잠시 사라졌지만, 5분 뒤 친한 동생을 데리고 와 이번엔 양 옆에 꼬마아이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이러한 곳에서 아이들이 부모님의 지시를 받아 돈이나 물건을 소매치기하는 경우가 있어서, 나의 지갑과 힙색을 중간중간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그런 의도가 있던 아이들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일어서려 하자 아이들이 내 뒤꽁무니를 계속 졸졸 따라왔다. 나를 좋아해 주는 게 귀엽기도 하고, 나 또한 밥 먹는 내내 심심하지 않게 해 주어 재밌기도 하였다. 이집트의 시끌벅적한 재미난 분위기에 양팔에 아이들과 팔짱을 끼고 '랄랄라라랄라-' 스머프 노래를 부르면서 택시가 줄 세워진 곳까지 가며 이날의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물론 택시에서 흥정하느냐, 그리고 택시기사가 길을 너무 못 찾아서 골이 아팠던 건 비밀이다.)
그다음 날 피라미드에서도 그리고 바로 다음에 이동했던 예수님 피난처 교회에서도 이집션과의 만남은 계속 특별했다.
세계 여행지에서 호객행위 탑티어 순위에 드는 피라미드를 조금이라도 자유하게 즐기고자 오픈런을 택하였더니만, 이집션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어디서든 몇 시에든 존재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사기를 치려 할 때마다 고맙게도 정보를 하나씩 얻어가는 요상한 상황이 이어 펼쳐졌다. 내게 '입장료를 따로 나에게 사라!' 했던 녀석이 내가 안 넘어오자 '너 학생 같아 보이는데 티켓부스에서 정식으로 티켓 살 거면 id카드 꼭 제출해. 반값이나 할인된다구'하며 내가 생각도 안 하던 걸 집어주었다. 이곳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지난 학생증도 할인이 되었다는 블로그 내영이 번뜩 생각나서 설마 하고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는데 학생할인을 받아 값싸게 입장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에 피라미드로 들어가니 확실히 한산하긴 했다. 그러함에도 '할로-' '할로-'하면서 몇 번을 붙잡히고 튕기다가 어떤 아저씨를 만났는데 아저씨 손에 쥔 수첩 안에는 한국인이 직접 써놓은 후기가 있어서 반값을 흥정하여 생각하지도 않았던 낙타투어를 재미나게 즐길 수 있었다.
(아저씨가 친구들에게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사진 요청해서 모자이크 안했습니다..ㅎㅎ 열어뿐 200파운드에 협상보세유,,,)
기분이 째져서 피라미드와 함께 사진도 홀로 찍고, 부모님과 영상통화도 하다 핸드폰 배터리를 20%만 남긴 채 차로 10분 거리인 '예수 피난처 교회'로 이동하였다. 배터리가 조마조마하였다만, 설마 나가겠어~ 하며 안일하게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회에 입성하자마자 배터리가 빠잉~ 하고 바로 생을 다해버렸다. 교회에 보이는 사무실, 관광품을 파는 직원에게 충전기를 염원해 보았지만 다들 C타입 충전기가 없어 일단 거리로 나왔다.(대부분 현지인들 핸드폰 기종이 5~7년 전 핸드폰들이었다.)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다들 관광버스를 타고 와 택시가 일절 보이지 않았고 현지인에게 부탁해도 택시를 잡으려면 우버밖에 답이 없는 대답 뿐이었다. 밑져야 본진이다 싶어 직원이 젊은 청년들로 꾸려진 허름한 카페로 가 충전기를 빌려줄 수 있냐고 부탁을 하였다. 바로 따라 들어오라는 말에 기대감을 가졌지만, 이런 또 C타입이 아니였다. C타입을 간곡히 외치는 나의 말과 눈빛이 통했는지 열심히 서랍을 뒤져 고귀한 C타입 충전기를 내게 갖다주었다. 그냥 있긴 민망하니 음료라도 시켜 기다리고 있을 때쯤, 이거.. 충전이 되는 것 같지가 않다..?
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니 다시 와서 확인하고 또 지나가다 내 핸드폰을 들춰보다가 다른 가게에 가서 새로운 C타입 충전기를 가져와주었다.
진짜 이들이 아니었으면 이곳에 몇 시간 동안 지박령 내릴 뻔했는데.. 너무 고마웠다. 거스롬돈도 큰 단위밖에 없어 애를 많이 먹었는데 1,000~2,000원 정도 10원짜리 동전으로 때우는 걸 보았지만 이 정도는 사례비로 치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낯가리지 않는 친밀함으로 나의 옆자리를 채워주고,
여자들은 길거리를 거닐 때마다 나를 귀엽다고 해주고,
남자들은 가끔 귀찮기도 하고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가장 도움이 되어주었다.
생각보다 도움을 아낌없이 주었던 이집션,
생각보다 그저 장사를 잘하고 싶은 거뿐었던 장사꾼인 이집션,
생각보다 프렌들리하고 장난기가 넘친 거뿐이었던 이집션.
이곳에 있는 3일 동안 사람 간의 부딪히는 여행을 함에 때론 화를 돋우게 할 때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나름 아프리카에서 도시라고 불리는 남아공, 나미비아에서도 다채러운 이야기를 써내려갔지만 그간 치안에 움츠렸던 긴장을 이제서야 놓으며 있는 그대로의 이집트를 편견 없이 즐길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예정에도 없었던 이집트,
갑작스레 떠올라서 찾아오게 된 이집트,
시선을 멈추게 하는 강렬한 영상의 프레임 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리어진 신기루와 같은 환영이 아닌, 그 모습이 진짜임을 보여주며 심심할 틈없이 화려한 환영(welcome)으로 채워준 이집트를 향해 소리친다.
이집트 카이로야 너~~~~~~~무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