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드디어 Bar가 문을 열다

커피 한 잔으로 되찾는 일상

by bellavita


두 달만에 Bar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아침에 장을 보러 갔는데,

그동안 꾹 닫혀있던 바가 훤히 열려있고 바리스타 두 명이 파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눈을 깜빡 거리며 서 있는 게 아닌가.

평소 같으면 선반 (bancone)에 서서 커피 마시는 이들로 북적일 텐데, 오늘은 손님 하나 없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커피부터 홀짝 들이켜고 수퍼로 향했을 텐데, 아무도 없는 바에 선뜻 발걸음이 가지 않는다.

일단 장을 보고 나왔다.

그냥 가자니 뭔가 아쉬워, 카터를 끌고 Bar를 천천히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 수퍼마켓 조끼를 입은 여성이 커피를 시키고 있다.

바리스타는 작은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담아, 뚜껑을 덮고 설탕과 플라스틱 막대를 건네준다. 여인은 그 자리에서 마시지 못하고, 커피를 받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탈리아는 3월 9일 외출 제한령을 발표하고 5월 3일까지, 수퍼와 약국 등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두 달 가까이 모두들 집에 갇혀있었고 외출할 땐 외출 사유서를 작성해 신분증과 함께 들고나가야 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닌데 외출했을 경우, 경찰에게 걸리면 바로 벌금을 문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가장 먼저 시작된 셈이고, 감염자 사망자수가 폭등하면서 뉴스에 가장 많이 거론됐다. 그 후 다른 나라들, 결국 전 세계로 번져나가자, 사망자 감염자 수가 얼마든 이제는 그러려니, 놀라울 것도 없는 지경까지 됐다.

처음엔, 아무 대책 없이 그저 집에 있으라,는 지시가 황당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나라는 lock down만이 최선책인 셈이다. 첨단 시스템과 시민의식을 동시에 갖춘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니..


다행히 외출제한이 효과를 보았는지 이탈리아는 처음과 비교하면 많이 잠잠해져서, 5월 4일부터 2단계로 접어들었다.

사실 큰 차이는 없다.

여전히 외출증이 필요한데, 직계가족만 모일 수 있던 거에서 이제는 친척을 방문하거나 여자 친구 혹 남자 친구(애인)를 만나러 가는 건 허락이 된다. 단, 같은 지방(regione)에서만 가능하다. 여자 친구가 다른 지방에 살고 있다면 여전히 만날 수 없다.

맥도널드 같은 음식점과 Bar도 문을 여는데 portar via (take out) 즉, 배달만 가능하다.

공원에서 산책도 할 수 있다. 대신 여러 명이 모이는 건 안된다.. 등

이런 식으로 조금씩 풀었는데도 별문제 없이 감염자 수가 계속 줄어든다면 6월에는 드디어 미용실도 열고, 쇼핑센터도 문을 연다.


참 사람 마음이란 게 우습다.

12월 31일에 뜨는 태양과 1월 1일에 뜨는 태양은 1도 차이가 없는 똑같은 태양인데,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보겠노라 굳이 멀리까지 해돋이를 간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실으니 새해 첫날의 태양은 어느 태양보다 눈 부시고 희망차게 느껴진다.

어제인 2020년 5월 3일과 오늘 2020년 5월 4일 이탈리아는 아무 차이가 없다. 감염자,사망자 수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 제한령이 조금 풀린 첫날, 5월 4일, 오늘은 공기부터가 다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조깅하는 이들도 꽤 늘었고, 차들도 좀 다니고, 수퍼 밖에 길게 늘어선 줄도 없다. 그만큼 전보다는 자주 장을 보러 나온다는 뜻이다. 장을 보는 이들 표정도 전보다는 훨씬 가벼워 보인다.

무엇보다 Bar가 문을 열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짓하며 "어떡할까, 한 잔 마실까?" 묻는다. "일회용 찻잔에 담아주는데 괜찮지 않을까..?" 한국말로 떠드는 사이 Bar주인이 Ciao ragazzi...!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아무도 없는데 우리마저 그냥 가버리기엔 미안해 용기를 내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아, 이제 보니 바 주인 앞에는 플라스틱 투명 판막이가 길게 세워져 있다. 작은 틈으로 돈을 내밀고, 그 틈으로 커피와 설탕을 받는다.


주차장까지 들고 와 차 보닛에 커피를 올려놓고 설탕을 타고 한 모금 마셨다.

그래, 이거지..


집에선 아무리 에스프레소를 뽑아도 bar에서 마시는 맛은 흉내 낼 수 없다.

하루에 몇 차례씩 무심코 마시던 커피, 장 보러 가다가 산책하다가 주머니에 1유로짜리 하나만 있으면, Bar에 들러 홀짝 마시던 커피를 못 마실 날이 오리라 상상이나 해봤나.

달콤 쌉쌀한 커피는 오랫동안 입안에 여운을 남기고, 온몸으로 번진다. 마치 수혈을 받은 듯, 죽어가던 나의 일상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땐 어땠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헌데 오늘의 커피는 언제, 어디서 마셨는지 커피 맛과 향이 어땠는지...선명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막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내게 작은 일상을 회복시켜주었기에.


Bar, 미용실, 옷가게 점차 가게 문이 하나씩 열리고, 집안에 갇혔던 이들이 생기있게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그렇게 하늘 길도 열리고 눈으로만 이탈리아를 그리던 이들은 여행을 날아오고, 남편은 이들을 만나 다시 즐겁게 일을 하고, 아이들은 명랑하게 학교를 다니고 친구 집을 들락거리고, 막둥이는 놀이터에서 다른 아기들과 모래 놀이를 하고... 멈춰진 일상이 다시 한 걸음씩 움직이길 꿈꿔본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bar에서 달그락달그락 사기 찻잔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붙어 서서 커피 한 모금 홀짝대고 큰소리로 수다를 떨어댄다면, 이탈리아는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부디, 그날까지 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버텨내길.

Forza, Ital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