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그 냄새.
코끝에 자욱했던 향
머금어 삼키고자 하면 사라지고 마니
향수가 되어 코끝만 맴돌더라
첫사랑의 그 향처럼
그시절 맡고야 말았던 그 향기가
향수가 되어버린 것마냥
이제는 그 향기
향수로 남겨 소중히 품었다
그리울때 맡고 싶다
지하철 역사 안, 누구나 한번쯤 맡아보았을 그 향이 있다. 주로 그 냄새는 뱃속 위장이 출출한 그 시각에 유독 코끝을 맴돌고야 마는데, 막상 그 향에 못 이겨 기어코 사 먹을 때면 언제나 상상하던 그 맛에 못 미쳤다. 상상만으로는 정말로 맛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내가 너무 늦게 사 먹은 걸까? 추운 겨울날, 날이 너무 추워 금새 다 식어버린 덕에 맛이 덜한 걸까?
내게 델리만쥬는 시절인연이다. ‘시절인연’이란,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다만 내가 이 단어를 접했던 그 계기는 본 뜻보다 더욱 내밀한 느낌이었다. 유치원 시절 선생님이 시켜서 한 같은 반 남자애와의 손잡기, 초등생 시절 제일 단짝이던 친구와 싸워서 했던 절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두루 어울렸지만 거의 연락하지 않는 철 지난 연락처들까지. 한때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모든 인연이 내게는 시절인연이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로 소중했고, 평생을 가고야 말 것 같았던 인연은 이제금 향수(鄕愁)가 되었다. 어릴 적에는 그것이 너무도 싫었다. 정말로 좋아했던 마음들이 흩어져 사라지고, 한때 즐거웠던 기억들이 이제는 나만의 추억으로만 남겨졌다. 그래서 한때는 소꿉친구가 있는 이들을 부러워했고, 오래된 인연들을 시기하며 나 자신의 사교성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졌던 계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델리만쥬였다.
냄새만으로도 코와 침샘을 자극하던, 뜨거운 커드타드 크림에 허, 입김을 불며 먹었던 그 델리만쥬. 그러나 이제 그 맛은 다시는 맛보지 못한다. 역사 안 어디서나 맛볼 수 있지만 이제는 식어 미지근한 크림만이 나를 반길 따름이다. 덕분에 나이들은 지금은 그 그리운 향에도 그저 향수(鄕愁)를 즐기며 향수(香水)마냥 그 향을 즐기는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먹었던 델리만쥬는 배가 너무 고픈 시절 먹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시절 같이 나눠먹던 어린 시절의 즐거운 감정 때문에 맛있다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배가 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지금은 그 시절 인연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인연들이 내 옆에 있다.
시절인연은 나의 실패한 인연들이 아닌, 나에게 그저 추억이 되어 만들어진 향수(鄕愁)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그 향수(鄕愁)를 단순히 그리워하는 마음만으로 남겨두지 않고, 향수(香水)로 만들어 그저 문득 기억날 때 꺼내어 추억하고 싶다.
마치, 코끝을 유난히 맴돌던 델리만쥬처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