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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아버지

by 프라임 핏

소피스트들이 등장함으로써 아테네의 법정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으며, 진리가 객관적인 근거를 갖추지 못하고 모든 가치판단이 개인의 주관에 달렸다는 주장들이 활발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군인이자 석공이자 한량이었던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죄목은 불경죄였습니다.

아테네 법정에서는 죄인이 직접 자신이 받을 형벌을 제안할 수 있었으나,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처벌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법정의 판결이 애초에 부당하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법정에서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탈옥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당시 소피스트들의 사상에 깊이 물든 지식인들은 “모든 것은 주관에 달렸다”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선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만약 가치판단이 오직 ‘자신의 견해나 감각’에만 의존한다면, 무엇을 과연 ‘자신보다 더 가치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탈옥이라는 자기보호의 방식을 택하지 않고 사형을 수용함으로써, 주관만으로는 해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시사하는 듯 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소크라테스는 이후 엄청난 명성을 얻었음에도 알려진 업적이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철학 체계를 직접 정리하지도 않았고, 역사에 남길 만한 저술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명확한 ‘주장’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빈자리’가 오히려 후대 철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 대한 신비로움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가 공존하던 아테네는 ‘진리’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습니 다. 모든 것이 주관에 달렸다는 말이 일면 타당할 수 있겠으나, 법정에서 그리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그러한 생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절대적 요소를 암시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암시는 훗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거대한 흐름을 시작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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